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노그림 Feb 12. 2024

첫 번째 책을 읽기는 했는데

아이와 함께 경제공부-3

하아. 책 한 권을 읽는데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마감일로부터 하루를 남겨놓은 저녁, 퇴근하는 나에게 스윽 A4 한 장을 내민다. 약속한 책 리뷰이다. 역시 마감시간은 글쓰기를 하는 누구에게나 동력원으로 작용하는가 보다.


경제 관련 책 중 아무거나 마음에 드는 것 골라서 읽으면 된다는 조건이었지만, 마케팅에 관한 책을 찾아올 줄은 몰랐다. 책 읽기의 목적에 대해 두리뭉실하게 이야기해 준 아비의 잘못이다. 다음번 책은 좀 더 우리의 목적에 근접한 책을 골라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어릴 때부터 방목으로 키워서 그런지, 고분고분한 아이가 아니다. 학교 공부를 하면서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해서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어이구 이런 말은 또 어디서 보고 하는 것인지. 말은 청산유수라서 이겨낼 재간이 없다.


설날연휴라서 집에서 얼굴 보고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이, 이번 책 읽기는 잘 되어가고 있나?"

자본주의라는 책을 보고 있는데 어렵단다. 모르는 용어도 많고 지루하고 또 지루하고.

"원래 기초를 만드는 일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표시도 잘 안나. 50층 건물을 지으려면 지하로 아주 깊게 땅을 파고, 단단한 암반까지 파일을 박고 나서야 공사를 시작할 수 있거든.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 건물을 지으려면 많이 시간이 필요한 거지. 이렇게 지하공사가 끝나고 1층이 마무리되면 그다음부터는 카피 앤 페이스트처럼 건물이 쭉쭉 올라가는 거야."

"그런 알겠는데, 암튼 이런 책은 왜 읽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


위기신호다. "왜 읽어야 하는지"를 빨리 찾아주어야 중도에 포기하지 않는다.

"그렇지. 이런 책을 읽는 게 무슨 도움이 될지 잘 모르겠지. 너 혹시 기억나. 예전에 아빠가 누구한테 이야기를 듣고 xxxx회사 주식을 샀다가 얼마 벌었다고 자랑한 적 있던 거"

......(곰곰 생각해 보더니) 응.

"이번에 잔뜩 올라갔던 그 회사 주식이 크게 떨어져서, 또 냉큼 사 두었잖아. 근데 이번엔 계속 떨어지는 거야. 이제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추락해 버렸어. 손실률이 50%가 넘어서 처분도 못하고 있어"

"쯔읍. 왜 그랬어"

"그러게, 주식을 잘 모르는 상태에 누군가의 말을 듣고 사고팔고를 하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는 말을 들었으면서도 내가 그러고 있네. 하하하. 경제공부를 하려는 이유는 이런 일을 피하려고 하는 거야"

"아하, 나보고 경제공부하고 나서 주식을 사라고 하는 거야"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내 말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물속으로 뛰어드는 일은 피하자는 말이야. 나처럼 xxxx에 물려있으면 안 되지"

"말이 나왔으니, 주식을 어디서 사고파는지 알아?"


......(자신 없는 목소리로) 글쎄, 어디선가 팔겠지.


"증권거래소가 있지. 말하자면 주식을 사고파는 시장 같은. 하지만 이곳에 직접 가서 주식을 사고파는 건 아니구. 증권회사에서 사고 팔지. 그것도 모바일로. 너무 쉽게 사고팔 수 있지."

"주식이 뭔 지 알아?"

"주식회사의 그 주식? 글쎄"

"네가 회사를 만든다고 생각해 봐. 근데 돈이 부족해. 그래서 여러 사람한테 이런 사업을 할 거다. 내가 몇 년내에 수익을 내서 갚을 테니 돈을 빌려달라 설득을 하러 다녀. 근데 이 친구가 빌려주는 대신 투자를 하겠다고 해. 들어보니 아이디어가 좋았던 거지. 이렇게 해서 모은 돈을 '자본금'이라고 해. 이 자본금을 일정하게 나누어 놓은 증서가 주식이야. 네 돈 삼천만 원, 친구 돈 이천만 원. 오천만 원을 주식 5000장으로 하면, 한 주식당 가격은 얼마겠어?"

"...... 만원?"

"그렇지. 한 주의 가격은 만원이고, 너의 지분은 60%, 친구의 지분은 40% 가 되는 거지"

......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회사가 어딘지 알아"

"삼성전자"

"오오. 그렇지. 삼성전자의 총 주식수는 몇 개쯤 될까?"

"......겁나 많겠지"

"정답. 겁나 많아. ㅎㅎㅎ. 네 노트북 들고 이리로 와 봐. 검색창에 dart.fss라고 쳐봐. 뭐가 나오니?"

"전자 공시 시스템이라고 나오네"

"이곳에 가면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주식회사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아빠네 회사도 여기에 나와"

"아니, 아빠 회사는 상장된 회사가 아니라서 여기에서는 찾을 수 없을 걸"

"아하, 너무 작아서 이곳에 못 들어 가는 거구나"

"그렇지. 너무 작기도 하고, 또 다른 이유가 있기도 하고. 그건 나중에 설명해 줄게."

"거기 네모 박스에 삼성전자라고 쳐 봐. 뭐가 잔뜩 뜨지. 회사가 커서 주식을 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다고 했지? 근데 그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 어떻게 알 수 있지?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는 직접 만져보고 이리저리 살펴보고 사지만, 주식은 눈에 보이거나 만질 수가 없잖아."


"......"

"그래서 이런 사이트가 있는 거야. 여기에 삼성전자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일들을 알리고 있는 거야. 나라에서 의무적으로 하라고 하는 거야. 그래야 사람들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고 이 회사 좋아질까 나빠질까를 알 수 있지. 다음 페이지, 그다음 페이지 열어봐. 그래 거기. 분기보고서라고 있지. 그거 클릭해 봐"

"뭐가 잔뜩 나오는데"

"그중에 재무제표라고 되어 있는 곳을 보자. 연결 손익계산서가 있네. 그거 클릭."

"우와. 이게 뭐야."

"3분기 매출액이 얼마니?"

"일, 십, 백, 천.... 육천 칠백만 원? 겨우?"

"ㅎㅎㅎ. 아니지 표 옆에 있는 단위를 봐야지. 뭐라고 되어 있어?"

"백만 원. 에엑. 그럼 이게 얼마야? (한참을 헤아린 후) 67조네! 세상에 내 눈으로 이렇게 큰 숫자는 처음 보는 거 같아. 오. 삼성전자 간지 나는데."

"나 다른 곳도 찾아볼래. 흠흠, 내가 좋아하는 게임회사 찾아봐야지. 하하 여기는 단위가 그냥 원이야. 역시 삼성이네"

.......


의도치 않게 삼성전자 추종자를 하나 만들고 말았다.


- 다음 이야기로 계속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