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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May 19. 2024

모든 게 가짜.
의미 없는 인생 역전 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드라마 <더 에이트 쇼> 리뷰 해석

주요 내용

- 넷플릭스 시리즈 <더 에이트 쇼> 소개, 줄거리

- 현실 사회의 축소판 <더 에이트 쇼>

- <더 에이트 쇼>의 수위와 가학성

- <오징어 게임>과 비슷하거나 다른 부분

- 스튜디오의 음식, 빛, 물이 가짜인 이유. 쇼의 룰이 가진 의미

더 에이트 쇼 (The 8 Show, 2024)

모든 게 가짜, 의미 없는 인생 역전 쇼

개봉일 : 2024.05.17. (NETFLIX 공개)

관람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장르 : 스릴러, 드라마, 블랙 코미디, 서스펜스

러닝타임 : 8부작 총 415분

감독 : 한재림

출연 : 류준열, 천우희, 박정민, 이열음, 박해준, 이주영, 문정희, 배성우

개인적인 평점 : 3.5 / 5

쿠키 영상 : 8화 엔딩크레딧 중간에 하나


<더 에이트 쇼> 8편을 전부 보기로 결정한 건 잘못된 선택이었다. 보는 내내 불쾌하고 짜증 나고 답답했다. 보고 나서도 똑같았다. 그런데 내가 불쾌함과 답답함을 품고서도 <더 에이트 쇼>를 전부 봤다는 건, 지금 내 기분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는 상관없이 어쨌든 이 쇼는 성공적이었다는 뜻이다.

<더 에이트 쇼>는 네이버 웹툰 <머니게임>과 후속작 <파이게임>을 각색해 만든 시리즈물이다. 원작 <머니게임>과 <더 에이트 쇼>에 나오는 메인 주제인 이 게임은 참가자들을 밀폐된 공간에 가둬두고 진행된다. 기본적인 룰은 이 안에서 정해진 시간(<머니 게임>은 100시간)동안 버티거나, 최대한 오래 버틴 만큼(<더 에이트 쇼>는 능력에 따라 시간 추가) 엄청난 상금을 준다는 것이다. 쇼의 주최 측은 보통의 사람이라면 평생 온몸을 갈아가며 일해도 벌 수 없는 막대한 금액을 제시하며 보통의 사람에도 미치지 못하는 참가자들을 현혹한다.


<더 에이트 쇼>의 화자인 3층은 죽음을 생각하고 있던 30대 남성이다. 그는 나름 열심히 살아왔지만 사람을 너무 믿는 커다란 실수를 하는 바람에 엄청난 빚을 얻은 상태다. 온갖 장기를 다 떼다 팔아도, 확 죽어버려도 절대 갚을 수 없는 거액. 3층은 그 돈 앞에서 미약한 발길질을 반복하지만 빚은 계속 늘어가기만 한다.

어느 날, 온몸을 벌벌 떨면서도 '죽는 것 외엔 답이 없다.'라는 생각에 이끌려 한강 다리 위에 오른 그에게 혹할만한 제안이 들어온다. 버티는 만큼 돈을 준다, 참가자끼리 서로 죽이는 건 금지(안전한 일?). 3층은 뭘 하는진 몰라도 이미 한강에 죽으러 간 놈에게 더 이상 두려울 게 뭐가 있겠냐는 심정으로 더 에이트 쇼에 참가한다.

불쾌함이 가득 남는 현실 사회의 축소판
<더 에이트 쇼> 수위, 청소년 관람불가인 이유는 선정성보다는 폭력성


<더 에이트 쇼>는 '죽으려고도 해봤는데 뭐가 두렵냐?'라는 3층의 가벼운 물음처럼 아주 가볍게 시작된다. 한편의 복고 코미디 쇼를 보는듯한 익살스러운 연출, 원작에 비해 훨씬 알록달록하게 꾸며진 스튜디오, 배우의 연기력과 내레이션으로 채워낸 빡센 원맨쇼. 마치 '이 쇼 은근 재밌을지도 모른다. 다 죽어야 끝나는 <오징어 게임>과 다르게 오히려 아무도 죽어선 안되는 이 쇼 끝엔 희망이 있을지도 모른다. '고 말하는 듯한 잠깐의 밝은 시간이 지나고 쇼는 우리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그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 쇼가 어떻게 흘러갈지,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인간성과 양심을 버리고 나면 남는 건 이기심, 본능, 욕심, 폭력성뿐이다. 쇼는 처음엔 모든 참가자가 동등한 상태인 것처럼 시작되지만 여러 조건들이 공개되며 참가자들 사이에 묘한 계급이 형성되고 높은 계급을 가져간 사람들은 자연히 상대를 착취하고 짜내며 이득을 얻는다.

극단적으로 표현되긴 했지만 우리들이 살아가는 사회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직장 생활만 해도 고용주와 고용인이라는 갑을 관계가 있고 고용주는 최소한의 돈으로 최대한의 노동력과 이득을 뽑고 싶어 한다. 이로 인해 일어나는 과로사, 사고사 뉴스는 이제 낯설지 않은 것이 되었고 갑을 관계로 엮이지 않았음에도 일어나는 도를 넘는 갑질과 약자 혐오, 범죄는 이제 놀랍지도 않을 지경에 왔다.

<더 에이트 쇼>는 이제 사회의 일부를 넘어 사회 그 자체가 되어버린 계급제와 그에 따라오는 착취, 인권 유린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블랙 코미디다. 나쁜 뜻으로 만든 시리즈가 아니란 건 알지만 너무 적나라해서 보고 있으면 속이 뒤집히는 느낌이 든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가학적이다. 많이 잔인한 편은 아니라 고어 무비 장르라 하긴 애매할 정도고 선정성도 심한 편은 아니지만 참가자들이 뱉는 말과 행동, 폭력. 거기서 오는 역겨움과 불쾌함이 있다. 후반부에 가면 말 그대로 정말 미쳐버린 듯한 인물의 행동과 연출을 보여주는데, 내일치 입맛까지 싹 달아날 지경이다.


개인적으로 <더 에이트 쇼>를 꼭 보라고 추천할 순 없을 것 같다. 자극적인 콘텐츠가 주는 묘한 중독성과 배우들을 보는 재미는 있었으나 이 재미를 가볍게 눌러버릴 만큼 굉장히 불쾌하고 가학적인 쇼다. 

사람은 무엇이든 빠르게 적응, 순응을 할 수 있는 존재다. 극 중에서 3층은 "당하는 것에 익숙해지면 정말 익숙해진다"라고 말한다. 불합리하고 이상한 일이어도 그것에 익숙해지면 그대로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게 된다는 거다. 가학성, 폭력성이 그렇다. 이러한 콘텐츠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것은 절대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없다. 미성년자나 사리분별이 안되는 어른의 경우는 특히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8회차라는 적지 않은 회차의 드라마다 보니 건강한 어른이라 해도 굳이 추천하진 않겠다.


추가로 <더 에이트 쇼>보다 앞서 제작된 비슷한 주제의 드라마 <오징어 게임>과 비교하자면 개인적으로 <더 에이트 쇼>가 폭력 부분에선 수위가 더 높다고 느껴졌다.

<오징어 게임>과 <더 에이트 쇼>


<오징어 게임>과 <더 에이트 쇼>는 비슷한 부분이 있다. 특히 가장 먼저 눈이 가는 건 전체적인 미감이다. 알록달록한 색감의 스튜디오와 답지 않게 귀여운 소품(리본 달린 관, 영희 등..) 들로 화제가 됐던 <오징어 게임>처럼 <더 에이트 쇼>의 스튜디오도 알록달록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져있다. 원작 <머니게임>의 배경은 칙칙하고 텅 빈 공간이었지만 각색을 거쳐 탄생한 <더 에이트 쇼>의 배경은 <오징어 게임>처럼 귀엽게 꾸며진 모습이다. 그래서 딱 보자마자 <오징어 게임>을 떠올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알록달록한 스튜디오의 색감, 막대한 상금을 주는 미스터리한 게임, 폐쇄된 곳에서 드러나는 이기심과 생존 본능, 그걸 보며 즐기는 누군가. 그리고 한국이 만든 드라마라는 점까지. 비슷한 점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도 둘 사이에 차별점이 있긴 있다. <오징어 게임>은 주최 측이 매번 개인을 실험하는 느낌이 있었다면 <더 에이트 쇼>는 전체적인 사회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실험하는 느낌이다. <오징어 게임>을 제외하고도 <더 에이트 쇼>를 보다 보면 약간의 기시감이 들긴 하지만 크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모든 게 가짜, 의미 없는 인생 역전 쇼. 넘을 수 없는 계급의 벽
스튜디오의 모든 게 가짜인 이유, 룰의 의미


이 쇼의 모든 것은 가짜다. 아름다운 진짜처럼 보이지만 스튜디오 안 음식, 빛, 물은 모두 가짜다. 쇼는 모두에게 공평한 듯 보이지만 공평하지 않다. 빔프로젝터 빛이 수영장 물인척하는 것처럼 이 쇼도 공평한 척만 하는 것이다. 또한 참가자들을 안전하게 지켜줄 것 같은 쇼의 룰은 존재하지만 그 룰을 변형하거나 피해 가는덴 한계가 없어 사실상 의미가 없다. 맛있어 보이는 음식과 음료수가 있지만 자세히 보면 가짜여서 아무 의미가 없는 것처럼.


쇼는 참가자들이 도착한 후 가장 먼저 그들의 개인 소지품을 전부 걷어가고 약간의 디자인만 다를 뿐 기능과 품질은 동일한 유니폼을 입힌다. 참가자들은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주최 측도 이를 공개하지 않는다. 모두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공용 공간을 나눠쓰는 참가자들은 동등한 관계처럼 보인다. 표면적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닫혀있던 각자의 방문을 연 순간 이 쇼가 공평한 게 아닌 공평한 척만 했다는 것이 바로 드러난다.

더 에이트 쇼에는 '참가자가 죽으면 바로 종료'라는 룰이 있다. 3층은 이렇게 생각한다. '버틸수록 상금이 올라가니까 쇼가 빠르게 종료되길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화나도 누가 누굴 죽이지 않을 거고 이 쇼의 참가자들은 안전할 것이다.' 하지만 이 룰도 얼마 안 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된다.

쇼가 진행될수록 피어오르는 괴리감과 모순은 참가자들의 정상적인 사고를 마비시킨다. 여긴 상식적으로, 인간적으로라는 말 대신 주최 측이 정해놓은 최고의 가치인 돈과 계급만이 통하는 곳이다. 쇼가 진행되는 스튜디오 안의 참가자들은 돈과 계급에 속절없이 휘둘린다. 그리고 "당하는 데 익숙해지면 정말 익숙해진다."는 3층의 말처럼 불합리한 상황에도 윗계급에게 굴복하고 적응한다. 어쩔 수 없이, 최대한  빠르게.

그래도 어쩌다 붙여진 혁명의 불꽃 덕분에 아래층 사람들은 우여곡절 끝에 겨우 두 번의 반란에 성공한다. 쇼가 시작될 때 방을 바꾸는 방법을 가장 먼저 물어본 1층은 10억을 모아 방을 바꾸고 더 많은 상금을 가져갈 큰 그림을 그린다. 하지만 주최 측은 1층의 돈과 희망을 전부 빼앗고 그를 한 번 더 지옥으로 떨어트린다. 주최자는 노력하고 버티고 기다리면 언젠가 기회를 줄 것처럼 약간의 희망을 준다. 하지만 이 희망도 가짜였다.

우리 사회엔 계급이 있고 쉽게 넘지 못할 벽이 있다. 직업엔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3층의 말대로 직업엔 귀천이 있다. 없다고 우겨보고 인식을 바꿔봐도 경제적인 부분에선 분명히 귀천이 있다. 빈익빈 부익부, 돈이 돈을 부른다는 말이 왜 있고 사람들은 왜 신데렐라 스토리, 인생 역전 스토리에 관심을 가질까? 현실에선 이 계급을 쉽게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1층이 죽음의 기로에 서있을 때 아래층 사람들은 그를 살리기 위해 주최 측의 눈인 CCTV를 전부 부수려 한다. 그들이 CCTV를 부수는 건 저 위에서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는 주최 측, 즉 윗사람들에 대한 최후의 반항이었지만 그 반항은 윗사람들에게 딱히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들에게 쇼가 끝난다는 건 재밋거리가 하나 사라진다는 의미일 뿐이다. 그리고 3층은 반항한 죄로 목숨 바쳐 얻어낸 상금 절반을 잃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1층은 죽고 참가자들은 큰 상금을 들고 사회로 나온다. 하지만 그 상금으로 호의호식을 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인다. 8층은 미친 짓을 하다 재산을 몰수당했고 3층은 통장에 찍힌 돈을 바라만 볼 뿐이다. 장례식장에 모인 아래층 사람들도 그다지 행복해 보이진 않는다. 6층은 화환 외의 소식이 없어 어떻게 살고 있을지 확실하지 않지만 개인적으론 6층은 예전에 했던 도박을 끊지 못해 언젠가 돈을 다 잃을 것 같다. 7층은 가장 멀쩡해 보이는 모습으로 투자자에게 각본을 내밀고 있지만 그 또한 상금을 제대로 사용하거나 인생을 제대로 즐기고 있는 모습은 아니다. 그는 자신도 참여해 봤다는 농담을 날리는 투자자에게 "다 가짜죠. 그래야죠"라고 말한다. 7층에게도 이 경험이 단순한 인생역전의 순간으로 기억될 것 같진 않다.

그 끔찍한 쇼를 끝냈는데도 참가자들의 삶은 극적으로 바뀌지 않는다. 참가자들은 부자로 태어나지 못했고 서민의 신분으로 살아왔다. 결국 어떤 짓을해도 처음에 고른 방을 바꿀 수 없었던 것처럼  이들은 많은 상금을 받긴 했지만 그토록 원했던 타고난 부자, 돈을 맘 편히 갖고 노는 행복한 부자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8화 마지막 쿠키영상에서 7층은 이 쇼에 참여한 경험을 각본으로 완성하고 투자자와 이야기를 나눈다. 이 장면은 상당히 묘한 느낌을 준다. 정말 어디선가 The8Show라는 이름의 괴상한 쇼가 벌어지고 있을 것만 같고, 내가 이 쇼를 지켜본 윗사람 중 한 명이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정도만 다를 뿐 우리 사회는 이 쇼와 크게 다르지 않다.

8층처럼 가질 대로 가졌는데 더하는 사람, 4층처럼 잘 빌붙는 사람, 1층처럼 계속 없는 사람, 2층처럼 의리를 지키지만 인정 못 받는 사람, 6층처럼 힘을 믿고 막 나가는 사람, 5층처럼 너무 착해 이용당하는 사람, 7층처럼 이성적으로 이득과 최소한의 양심을 챙겨가는 사람, 3층처럼 무색무취 안전 주의인 사람. 현실에서 내 포지션을 골라보자면 아마도 무색무취, 안전주의 3층쯤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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