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결혼, 하겠나?> 리뷰 후기 해석 / 신작 한국영화 이동휘
개봉일 : 2024.10.23.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러닝타임 : 102분
감독 : 김진태
출연 : 이동휘, 한지은, 강산일, 차미경, 박성근, 박소진, 허준석, 유재명
개인적인 평점 : 4 / 5
쿠키 영상 : 없음
청년 ‘선우’는 사랑하는 ‘우정’과 행복한 결혼을 계획하고 있다. 통장 잔고는 넉넉하지 않지만 두 사람은 함께할 미래를 생각하며 열심히 발을 맞춰간다. 그런데 갑자기 선우의 아빠 ‘철구’가 뇌출혈로 쓰러지고 선우의 일상과 미래 계획은 한순간에 어그러진다.
끝없는 재난, 아니 재정난 (財政難)에 빠진 선우는 아빠는 병으로부터, 자신은 돈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열심히 뛰어다닌다. 하지만 아빠의 상태는 쉽사리 호전되지 않고 다른 가족들은 선우와 아빠를 외면한다.
그래도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다는 듯, 겨우 손에 쥔 복지 제도는 잠시 선우의 숨통을 틔워주지만 순식간에 등을 돌려 그의 현실을 더욱 강하게 압박하는 문제로 변한다.
<결혼, 하겠나?>는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모라동>이라는 제목으로 공개되었던 현실 재난 코미디 영화다. 영화 제목과 포스터만 봤을 땐 흔한 양산형 로코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가족의 단절과 회복, 청년의 현실, 복지 제도에 대한 회의 등 삶의 희로애락을 담고 있는 재밌고도 슬픈 이야기다.
주연 선우를 맡은 이동휘 배우는 해결될 듯 해결되지 않는 재난에 끼어버린 청춘의 얼굴을 담백하고 충분하게 표현하며 극의 설득력을 최대로 끌어올린다. 이동휘 배우의 코미디 연기, 가벼운 모습들도 물론 좋아하지만, 나는 이런 무뚝뚝하고 지친 청춘의 얼굴을 한 이동휘 배우의 모습을 보는 걸 더 좋아한다. 의연함과 단단함을 유지하던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참아왔던 감정이 터져 나오는 순간. 그 순간이 주는 감흥은 정말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강력하다.
선우의 삶은 이미 충분히 힘들다. 선우는 우정의 남자친구, 대학의 겸임 교수로서 열심히 역할을 다하고 있지만 그의 삶은 어째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5천만 원을 모아 결혼을 하려고 했으나 겨우 모아둔 돈은 학자금 대출로 쑥 나가버리고 부동산은 점점 올라 이젠 우정과 함께 살 그럴듯한 집을 구하기도 어렵다. 선우의 마음은 연기를 뿜어내는 그의 자동차처럼 펄펄 끓고 있지만 그래도 모두 다 괜찮은 척 웃어 보인다.
그런데 아무리 선우라 해도 갑자기 닥친 아빠의 병과 병원비 앞에선 괜찮은 척하기가 어렵다. 선우의 속에서 슬슬 연기가 피어오르고 그는 ‘도움은 안 돼도 짐은 되지 말아야 할 거 아니냐’며 아빠에 대한 노골적인 적개심을 드러내지만 다시 분노를 가라앉히고 아빠와 나. 모두가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선우는 재활 치료를 시작한 아빠의 얼굴을 잡고 소리친다. “참아라 참아!” 이는 아빠와 현재 상황에 대한 울분을 담은 말이기도, 자신을 향해 하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선우와 철구는 부자 사이지만 약간의 어색함과 거리감이 있다. 선우는 우정이 아버지의 기일은 알고 있지만 우리 아빠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잘하는지는 모른다. 아빠가 왜 삼촌에게 모질게 구는지도 모르고, 아빠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건강 상태는 어떤지. 아무것도 모른다.
큰아빠의 제사 후 밥을 다 먹고 차 옆에 선 두 부자는 데면데면하게 대화를 이어간다. 그 사이 아빠는 자동차 수리를 끝내고 선우는 얼른 차에 올라탄다. 이때 자동차 문과 창문이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다. 선우는 창문을 내려 아빠에게 수리비를 주려고 하지만 고장난 창문은 열리지 않고 두 사람은 문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하다 헤어진다.
선우와 아빠 사이엔 마음의 벽이 있다. 어른들의 일을 모르는 선우의 입장에서 아빠는 집안을 말아먹은 무능력한 사람이기에 선우는 아빠에게 딱히 정을 주지 않는다. 그러다 갑자기 아빠가 쓰러지고 선우는 지금껏 몰랐던 여러 사실을 알게 된다. 아빠가 신용 불량자고, 건강 보험도 없고 빚만 가득하다는 것. 정말 난장판이 따로 없다.
그래도 선우는 아빠가 빼놓은 소변줄 때문에 소변으로 흥건해진 병실 바닥을, 재정난으로 찰랑이는 현실을 찰박-밟으면서도 아들이기에, 우리 아빠이기에. 숨을 삼키고 울분을 참는다.
삼촌은 주소 전입을 부탁하러 온 선우에게 ‘모질게 굴라’며 아빠를 포기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빠와 아빠가 살고 있는 동네 모라동에 양가적 감정을 느끼고 있던 선우는 모질게 아빠를 포기하지 못한다. 웬만하면 가고 싶지 않으면서도 고장난 차를 핑계 삼아서라도 가고 싶은 동네 모라동. 싫어하는 동네이면서도 가장 간절하게 적어내고 싶었던 동네 모라동. 나에게 짐만 남겨준 무능력한 사람이면서도 내 모든 걸 옭아맬 수 있는 소중한 사람 아빠. 선우는 이 관계에 대해 한참을 고민한다.
선우가 고장난 차를 끌고 모라동에 갔을 때 아빠는 이 차를 사준 게 언젠데 아직도 타고 있냐고 묻는다. 선우는 부품만 갈면 괜찮다며 무심하게 답한다. 낡고 고장난 차도, 고장난 아빠와의 관계도 포기하지 못한 선우는 아빠의 병실에 함께 누워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아빠가 그저 무능력한 빚쟁이가 아니었음을, 거칠한 겉모습에 숨겨진 가족을 향한 마음을 알게 되고 고장난 차의 부품을 갈 듯 아빠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새롭게 갈아끼우며 세 가족의 관계를 다시 굴려간다.
아빠의 퇴원 날. 선우는 재활 프로그램이 없는 비교적 저렴한 요양병원에 아빠를 모셔드리고 차로 돌아온다. 이게 옳은 선택일까, 고민하던 선우는 아빠가 자신 모르게 고쳐둔 창문을 발견한다. 재정난 앞에서도 열심히 참아왔던 선우의 설움이, 아빠를 향한 마음이 터져 나오고 선우는 아빠에게로 돌아간다. 선우와 엄마 아빠는 커다란 재난을 함께하며 서로를 향한 마음을 새롭게 다져낸다.
“입장과 동시에 퇴장 각이다.” 천천히 왈츠를 추며 결혼식을 시작하고 싶다는 우정에게 우정의 언니는 단호하게 말한다.
선우와 우정은 춤을 잘 추지 못한다. 두 사람의 스텝은 뻣뻣하고 어정쩡하다. 두 사람은 몇 걸음 떼지 못하고 곧장 바닥으로 넘어지지만 함께하니 그 넘어짐조차도 즐겁다. 선우는 재정난에 부딪히며 이 마음을 잠시 잊어버리지만 우정은 이 마음을 잊지 않고 선우를 기다린다. 우정은 남들이 뭐라 해도 선우와 함께 넘어져 줄 준비가 되어있다.
두 사람의 조합은 불안하고 예뻐 보이지 않는다. 카페 사장은 우정이 만든 컵을 보고 예쁘다고, 솜씨가 있다고 칭찬하다가 선우가 제멋대로 만든 컵을 보고는 "아, 이건 실패작인가 보다.”라고 말한다. 남들 눈에 보이는 선우는 '실패작’ ‘결혼하면 안 될 집안의 아들'이다. 선우도 언제부턴가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고 우정에게 이별을 고한다.
그런데 우정은 무거운 현실 저 밑바닥에 깔린 선우의 진심을 다시 건져올린다. 그는 컵 아래 그려진 핑크 뮬리 그림에서 선우의 사랑을 느끼고,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두 개의 컵을 꼭 붙이며 선우를 생각한다. 그는 추워진 날씨에 앙상해진 나무 앞에서도 선우를 향해 웃어 보인다.
선우는 우정을 포함한 ‘가족이 아닌 사람들’에게 더 많은 온기를 나눠 받는다. 선우가 아빠의 주소를 등록하기 위해 삼촌 앞에서 무릎을 꿇었을 때. 삼촌은 선우를 외면하며 그의 무릎 앞에 돈 봉투를 내려놓는다. 그리고 형을 그 주소에 전입시키면 상속 문제가 생길 거라며 냉정하게 거절한다.
삼촌에게 쫓겨난 선우는 엄마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상상치 못한 이에게 큰 도움을 받는다. 그저 오지랖처럼 보였던 엄마의 따뜻한 나눔이 만든 기적 같은 결과다.
재난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건 피를 나눈 가족도 국가의 복지 제도도 아닌 누군가가 나눠준 작은 온기일지도 모른다. 이를 알게 된 선우는 현금을 탈탈 털어 아빠의 병원비를 내고, 남은 소중한 만 원을 모금함에 넣으며 멀리 있을 누군가에게 따뜻한 마음을 보낸다.
선우는 사용자를 고려하지 않은 건물을 설계해온 학생에게 “사람 사는 곳이 디자인만 번지르르하다고 전부가 아니다.”라고 피드백을 준다. 선우가 건물을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사용자의 편의, 안전이다. 그는 선배의 건축 현장에 가서도 사용자를 생각하지 않은 설계도면을 보며 당장이라도 따지러 갈듯이 설계자가 누구냐고 묻는다.
극 중에서 선우를 괴롭히는 애매한 희망인 복지 제도는 이 ‘사용자를 고려하지 않은 설계도면’과 같다. 집이 디자인만 번지르르하다고 전부가 아닌 것처럼 사회 복지 제도도 겉만 번지르르하다고 전부가 아니다.
‘기초수급자 의료지원’이라는 복지 제도는 선우에게 잠시 숨 쉴 틈을 만들어주지만 그에게 큰 혼란을 주고 결국엔 전임교수 전환이라는 가능성을 꽉 막아버린다. 선우는 아빠의 거주지를 등록하기 위해 온갖 고생을 하다 경비 아저씨의 도움으로 겨우 신청에 성공한다. 이제 좀 숨통이 트인 선우는 자신의 인생을 위해 열심히 전임교수 피티를 준비한다.
그런데 갑자기 알게된 ‘보호자나 본인의 연봉이 3000만 원을 넘어갈 시 자동 취소된다’는 원칙. 눈덩이처럼 불어나 순식간에 연봉에 가까워졌던 아빠의 병원비를 떠올린 선우는 교수직을 무르고 다시 건축 현장으로 돌아간다. 가장 든든한 지원이자 살길이었던 복지 제도는 선우를 가장 단단히 가로막는 벽으로 변한다.
기초수급자를 신청하려면 정해진 거주지가 있어야 하고 보호자나 본인의 연봉이 3000만 원을 넘어갈 시 의료지원이 자동으로 취소된다고 한다. (극 중에서 언급된 기준) 그런데 애초에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는 사람이 번듯한 거주지를 가질 확률이 얼마나 있겠으며, 그를 받아줄 가족이 꼭 존재하리란 보장도 없다. 그리고 연 3000만 원이란 돈은 환자를 부양하고 보호자의 삶을 영위하기엔 무리가 있는 액수다.
현재는 생계급여 기준이 조금 완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의료급여는 여전히 쉽지 않은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한다. (2024년 2인 가족 기준 월 368만 원 이하) 분명 잘 구축되어 있는 것 같지만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는 복지 제도. 이를 칭찬해야 할지 나무라야 할지. 어려운 문제다.
<결혼, 하겠나?>는 이 건들기 어렵지만 한 번쯤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를 코믹하면서 동시에 현실적이고 진중하게 그려낸다. 반전, 드라마틱한 구원 없이 끝나는 상우의 현실은 긴 여운을 남긴다. 과연 상우는 결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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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특하고 애잔한 배우 이동휘의 기막힌 메소드연기를 볼 수 있는 <메소드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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