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리뷰 후기 해석 / 킬리언 머피 신작 영화
개봉일 : 2024.12.11.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러닝타임 : 98분
감독 : 팀 밀란츠
출연 : 킬리언 머피, 에밀리 왓슨, 아일린 월시, 미셸 페어리, 클레어 던, 헬렌 비언
개인적인 평점 : 3.5 / 5
쿠키 영상 : 없음
겨울은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차가운 계절이다. 하지만 잘 찾아보면 겨울에도 따스함이 있다. 한낮에 머리 위로 내려앉는 햇빛, 빠르게 지는 해를 대신해 집안을 밝히는 전등의 색, 두꺼운 옷의 포근함과 유난히 반가운 누군가의 온기. 이렇게 차가워 보이는 계절에도 작은 따스함이 깃들어 있듯이 어둠만 가득해 보이는 현실에도 잘 찾아보면 작은 희망과 온기가 존재한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그 작고 소중한 온기를 조명한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작가 클레이 키건의 동명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아일랜드 출신 배우인 킬리언 머피가 주연과 제작을 맡았다. 원작의 내용을 몰랐을 땐 그가 왜 이 소설을 선택한 걸까? 궁금했는데 소설을 읽고 나니 딱, 과연 킬리언 머피 다운 선택이었다 싶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난 후엔 킬리언 머피였기에 가능했고, 완벽히 킬리언 머피라는 배우를 위해 만들어진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985년 아일랜드의 소도시. 석탄 장수 빌 펄롱은 아내, 다섯 딸과 함께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돈 나갈 구석에 대한 고민을 놓을 순 없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빌은 생각한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며 부쩍 추워진 날씨 덕에 석탄 주문이 밀려오고 빌은 해가 뜨기 전부터 해가 질 때까지 쉬지 않고 석탄을 배달한다. 그는 불평 한 마디 없이 가족과 직원들을 위해 성실하게 몸을 움직인다. 그리고 그 바쁜 와중에도 주머니에서 짤락거리는 동전을 어린 이웃과 나누는 작은 선행도 잊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간 빌은 한 모녀의 심상치 않은 실랑이를 목격한다. 그래도 남의 가정일에 함부로 뛰어들 수는 없는 일이니 그는 우선 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그 순간이 남긴 불편함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빌은 석탄가루로 까매진 손을 씻듯이 자신의 마음도 거칠게 벅벅 긁어내보지만 마음 깊이 낀 불편함이 사라지긴커녕 검은 물만 죽죽 흐를 뿐이다.
그렇게 불편함이 덕지덕지 낀 마음을 안고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던 빌은 결국 용기를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다. 그의 선택과 행동은 당장 세상을 바꿀 만큼 거대한 힘을 가지진 못했지만 그것이 주는 울림은 결코 작지 않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시간적 배경만 크리스마스인 영화가 아닌 크리스마스에 담긴 은총과 사랑의 의미를 다시 한번 떠올려 볼 수 있었던 진정한 크리스마스 영화였다.
이야기의 소재가 된 막달레나 수용소는 18세기-20세기 말까지 아일랜드에서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은밀하게 운영되었던 여성 수용소다. 사람들은 교정 시설, 여성에게 거처를 제공한다는 겉포장에 속거나 수용소의 실체를 알면서도 쉬쉬했다. 그 때문에 막달레나 수용소는 다른 국가들의 유사 시설들 중 가장 오랜 시간 살았다고 한다. (마지막 수용소는 1996년까지 운영됐다.)
극 중에서도 마을 사람들이 수녀원(수용소) 이야기를 회피하는 듯한 미운 모습이 나오는데 사실 이게 보통 사람의 모습이다. 그냥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세탁소구나~하고 모르는 척 믿으면 모든 게 평소와 같이 평탄하게 흘러갈 텐데 굳이 그걸 파헤치려 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사람들은 수녀원을 애써 아무 의심 없이 믿고, 아름답게 바라보려 한다. 그들이 종교를 방패 삼아 어떤 일을 행하고 있는지, 그 뒤에 어떤 그늘이 따라붙어있는지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빌은 성실하고 선한 사람이다. 그는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가장이자 고용인들을 배려하는 고용주고 굶주린 아이들을 지나치지 못하는 어른이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1985년 아일랜드다. 그 당시 아일랜드는 역대 최악의 실업률을 기록하는 등 엄청난 경제 공황을 겪고 있었는데 그런 와중에도 빌이 선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혼자가 된 어린 빌을 거두어준 윌슨 부인과 네드의 사랑 덕분이었다. 빌은 두 사람에게 받은 사랑을 그대로 품고 자라 어려운 아이들을 지나치지 못하는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빌도 처음엔 마을 사람들처럼 수녀원을 모르는 척하려 했다. 그런데 계속해서 떠오르는 유년의 기억과 말간 얼굴로 식탁에 앉아있는 딸들을 보고 있으니 도저히 수녀원에서 본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빌은 어린 빌 펄롱과 소녀를 생각하며 수녀원으로 돌아간다.
빌이 막 수녀원에 들어갔을 때까지만 해도 ‘수녀원에 갇힌 불행한 소녀’는 대략 옅은 그림자 정도로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는 그런 것. 그런데 저 건너편 어두운 방안에 있던 그림자가 슬슬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빌 앞으로 튀어나와 눈을 맞추며 말한다.
“저희 좀 도와주세요. 강까지 데려다주세요. 집으로 데려가 주면 뭐든 할게요.”. 이때 빌은 ‘수녀원에 갇힌 불행한 소녀’가 실존함을 알게 된다.
이때 소녀를 보며 느낀 놀라움과 불편함은 빌의 오래된 기억까지 헤집어 놓고, 그는 또 다른 진실을 보게 된다.
빌이 아내 아일린에게 수녀원에서 본 것을 털어놓으며 우리 딸이었다면 어땠을지 물었을 때 아일린은 “우리 딸이 아니잖아.”,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르는척 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라는 차가운 답을 내놓는다. 이때 빌은 “윌슨 부인이 당신 같지 않아서 다행”이라며 윌슨 부인의 따뜻함을 한 번 더 상기한다.
빌은 소녀를 구해주고 싶다. 윌슨 부인과 네드처럼. 빌은 새벽에 수녀원으로 돌아가 소녀에게 자신의 코트를 입혀주고 함께 수녀원의 문을 두드린다. 빌의 의도를 눈치챈 원장수녀는 안은 따뜻하다며 빌을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들인다. 그는 빌을 저지하기 위해 은근한 협박과 멸시의 눈초리를 보낸다. 빌은 원장수녀가 내민 돈과 카드를 들고 겨우 사무실을 나오면서도 끝까지 소녀에게 말을 걸고 서로의 이름을 남긴다.
그런데 이후 빌은 잠시 흔들린다. 너무 갑작스레 새로운 진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빌이 아내의 지적을 받으면서까지 주머니를 털어 아이들에게 동전을 나눠주고 수녀원과 척을 질 각오를 하면서도 소녀를 구하려고 했던 건 모두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이었다.
빌은 지금껏 윌슨 부인과 네드가 조건 없이 100% 선의로 자신을 보살펴 준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기억을 차근차근 되짚어가다보니 당시엔 느끼지 못했던 미묘하게 어색한 지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누가 봐도 네드와 닮은 빌의 얼굴, 창 너머로 봤던 어른들의 모습과 자신을 바라보던 네드의 눈빛. 빌은 어릴 적 어머니에게 물었던 아버지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낸다.
무조건적인 선의라고 믿어왔던 것이 알고 보니 아들이었기에 받을 수 있었던 부정(父情)이었다니. 빌은 잠시 고민한다. 그리고 머리카락과 함께 소녀를 향한 의지를 잘라내기라도 하려는 듯 미용실에 앉아 검은 미용 가운을 두른다. 한순간 빌의 얼굴에 모든 시선이 집중되고, 빌의 입술이 떨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눈물 한줄기가 흘러내린다.
그는 결국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미용실을 나와 다시 어머니와 같은 이름의 소녀, 세라에게로 향한다. 네드에게 받은 것이 아버지의 사랑이었든 타인의 무조건적인 선의였든 상관없이 어쨌든 그의 사랑이 빌을 키워냈으니 빌 또한 사랑을 나눠주는 어른이 되기로 한 듯 보인다.
빌은 세라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깨끗이 씻은 손을 세라에게 내민다. 이제 그의 손엔 검은 가루가, 그의 마음엔 불편한 때가 남아있지 않다.
원래 타인의 불행과 사회의 어둠은 잘 보이지 않는다. 빌이 아내를 위해 샀던 네이비 구두, 가방, 크리스마스 케이크같이 행복을 상징하는 것들은 남에게도 잘 보이는 유리 쇼케이스에 진열되는 게 보통이지만 소녀들을 향한 학대와 막달레나 수용소라는 사회의 어둠은 빛이 만든 그늘 어딘가에, 불투명한 유리 뒤(극 중 수녀원 입구의 유리도 불투명하게 표현된다)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입체적인 물체를 하나 두고 빛을 한줄기 쏘면 명과 암, 밝은 곳과 그늘진 곳이 생긴다. 이때 시선은 자연히 광원과 빛을 받은 곳을 향하게 된다. 이 현상은 우리 사회에서도 그대로 일어난다. 항상 밝은 곳만 주목받고 그늘진 곳은 소외되고, 어둠은 우리 몰래 조용히 그늘진 곳을 노려 내려앉는다 이럴 때 그늘을 바라보고 다른 각도에서 새로운 빛을 비춰준다면 그늘을 없애는 것은 물론 그 안에 숨은 어둠도 찾아낼 수 있다.
빌 펄롱은 사회에 새로운 빛을 비춰주는 사람이다. 빌의 선택이 당장 마을과 사회를 모두 바꿔놓을 수 있을진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세라의 인생은 변했으니 그만큼의 그늘이 줄어든 것이다. 사회엔 빌 펄롱 같은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 어둠이 내려앉은 곳에 빛을 비추고 작은 온기와 용기를 모아줄 사람.
혼란한 정세 속에서 이런 영화를 만나고 이런 글을 쓰고 있으니 괜스레 마음이 일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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