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enect Apr 04. 2021

제주에 삽니다 - 외로움에 대하여

홀로 지내는 제주의 삶


"혼자 지내면 외롭지 않아?"

제주에서 혼자 지내게 된 내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다. 나는 재택근무로 일을 하고 있으니 사람을 마주칠 일은 어딘가로 떠나는 버스 안이나 생필품을 사러 갈 때뿐이다. 그런데 6개월이 지난 이 시점에도 나는 외로움을 많이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게 잘못된 거란 얘기는 아니지만)


사실 이런 질문을 처음 받을 땐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외로운지 모르겠어. 오히려 난 지금이 좋은 것 같아"라고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질문이 쌓여가자 '혹시 나 외로운데 괜찮은 척하는 건가', '자기 암시를 하는 건가', '나 괜찮지 않으면서 혹시 이상한 자존심을 부리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로 거의 외로움을 느끼지 못했다. 때때로 정적이 싫어 음악을 틀어두곤 해왔는데 그 빈도수가 제주에 오기 전에 비해 많이 늘긴 했지만 여전히 정적의 순간을 즐기는 때도 있는 걸 보면 이걸로 판단하기엔 어려움이 있는 듯하다.


예전에, 한 4년 전쯤 커피를 판매하는 동네 카페를 운영했던 적이 있다. 그때는 혼자 카페를 운영하게 되면서 외로움을 많이 느꼈다. 그 전에는 내가 누군갈 만나고 싶으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고 어딘가 가고 싶으면 시간을 내어 얼마든지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카페에 발이 묶이게 되면서 나는 그 자유들을 박탈당했다. 손님분들이 계시면 그분들과 때때로 이야기도 나누고 신경 쓰느라 외로움에 대해 초점을 맞출 겨를이 없었지만 카페에 아무도 없을 때 (아주 잘 나가는 카페가 아니고서야 이런 순간은 꼭 존재한다) 외로움이 물밀듯 밀려오곤 했다.


그때도 사정이 있어 나는 거의 반독립의 수준으로 평일엔 집에서 혼자 지냈었고 오히려 친구들이 카페에 자주 찾아왔었다. 당시만 해도 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깊고 짙은 외로움을 느꼈었는데,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의 지금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게 신기하다.


혹 팬데믹으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아진 것은 아닐까, 그때는 반독립이었지만 지금은 얼떨결에 독립을 해서 내가 해야 할 것이 많아져서는 아닐까, 여러 가지 경우를 생각해본다. 내가 생각한 하나의 이유는 '어쩔 수 없다'는 점이다. 서울에서 지낼 때는 맘만 먹으면 누구든 만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금세 연락하고 금세 약속을 잡는다. 그리고 약속 장소에서 친구를 만나 신나게 놀다가 집에 오는 일이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제주에서는 누구든 만나는 일이 어렵다. 카페를 운영할 때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 제주에 와서 시간을 또 내줘야만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애초에 기대하는 마음이 없는 듯하다. 서울에서만큼 쉽게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인정한 것이다. 내가 혼자 있는 것이 나의 고정 값이 된 것이다.


생각해보면 지역 네트워킹 같은 것에 참여할 법도 한데 코로나란 좋은 핑계로 참여하지 않고 있다. 재밌을 것 같단 생각이 들다가도 굳이? 하는 생각과 알 수 없는 귀찮음이 강력하게 몰려와 이내 포기해버리고 만다. 시간을 맞추고 활동을 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나가고. 왠지 아직은 피곤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 서울에서 모르는 사이에 사람들에게 치이며 지내왔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제주에서의 이 삶이 이토록 적당하고 좋다고 여기는 것은 아닐까.


또 하나의 이유는 언제나 내가 좋아해 마지않는 '자연'이다. 친구들을 만나면 우린 감정을 나눈다. 기쁨을 나누고 슬픔을 나누고 생각과 일상을 나눈다. 그 형태나 방법은 다르지만 나는 제주의 자연에서 일종의 비슷한 넉넉함을 얻는다. 주중에 일이 잘 풀리지 않았거나 스스로 조금은 힘든 일이 있었다면 (혹은 그런 일이 없었더라도) 주말에 바다나 숲을 보러 간다. 제주에서는 조금만 이동해도 너른 광경을 볼 수 있는데 그 광경 앞에 가만히 서있다 보면 내가 했던 걱정들이나 생각들이 참 작은 것들이란 기분이 든다. 언젠간 지나갈 거라는 믿음과 잘 해내지 않아도 된다는 위로를 얻는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작은 차이도 큰 차이처럼 보이지만 자연 앞에서 우린 모두 비슷한 규모를 가지고 살아간다. 들여다보면 물론 다르기야 하겠지만 또 저마다의 삶이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 생각한다. 누구나 괴롬이 있고 슬픔이 있고 기쁨이 있다. 그런 삶의 희로애락은 너, 나 할 것 없이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감정들은 서로 비교할 수 있는 값이 아니기에 나는 그것들이 대체로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아마 시간이 더 흐르면 외로움을 크게 느낄 수도 있다. 내가 언제까지 제주에 있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여전히 새롭고 좋은 것들이 많아서 외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시간이 더 흐르고 가보고 싶었던 곳들이 줄어들고 가봤던 곳들이 더 많아지면 그때엔 새로운 자극이 없어 사람을 찾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이렇게 쓰다 보니 내게 자연은 언제 봐도 새롭고, 감탄을 자아내기에 제주의 자연이 있어준다면 나는 언제나 풍성한 매일을 누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