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정말 반일까?
카페를 하려고 부푼 마음이 사그라들고 나니 원래 있던 삶의 의욕마저 소멸되었다. 삶에 카페를 여는 이벤트가 생기기 전 세웠던 세웠던 계획들도 전혀 당기지 않았다. 그냥 삶에 대한 의욕이 사라졌다는 말이 딱 맞는 시기를 보냈다. 당시의 나는 그냥 모든 것이 한없이 덧없게 느껴지던 그런 상태였고,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며칠을 흘려보냈다.
그렇게 쓸모없이 매일을 허비하는 중에 전 직장 동료에게서 연락이 왔다. 일전에 엄마의 제안으로 카페를 하게 될 것 같아 조심스레 그 소식을 먼저 알렸던 동료였다. 당시 동료는 반년 전쯤 동네에 마카롱 가게를 차렸고 나름 순항 중이었다. 나는 카페를 열게 될 것 같다는 소식을 알리는 자리에서 디저트나 베이커리를 만들 줄 모르니 납품을 해줘라 등의 장담할 수 없는 이야기도 했던 기억이 있는데 (아, 과거의 나야...) 동료는 카페 오픈 준비가 어떻게 되어가는지 궁금해서 연락을 줬던 것이었다. 나는 동료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카페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슬픈 소식을 전했는데 동료가 내게 의외의 제안을 했다.
그 의외의 제안은 마카롱 가게 옆 가게가 임대를 내놓았으니 그 자리에서 카페를 하면 어떻냐는 거였다. 카페를 하려던 마음이 아주 다 사라진 줄로만 알았는데 한편에 아직 남아있었던 것인지 나는 앞뒤재지 않고 바로 가게를 보러 갔다. 다른 것보다도 옆 집에 아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함께 도우며 잘해보자는 말에 더욱 힘이 나 한 달음에 달려갔던 것 같다. 무엇보다 보증금과 월세가 꽤 저렴해 부담도 크지 않을 것 같았고.
하지만 가게를 둘러본 나는 생각보다 좁은 공간에 다시 한번 좌절에 빠졌다. 당시 그곳은 마사지 가게였는데, 마사지 침대 2개와 약간의 집기들을 제외하곤 사람 1명이 지나다니기에만 넉넉한 그런 공간이었다. 될 것 같으면서도 또 어려울 것 같았다. 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건 나 스스로가 하고 싶어서 자꾸 그렇게 긍정회로를 돌리는 것이라는 의심이 드는 그런 공간이었다. 냉철하게 봤을 때 카페가 되기엔 어려움이 많을 것 같았다. 아마 전면에 위치한 유리창들을 모두 색지로 덮어둬서(마사지 가게다 보니) 그 답답한 공간 구성에 더욱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한번 좌절을 맛보곤, 쓸쓸한 발걸음으로 귀가했다.
그렇게 귀가해 거실에 멍하니 누워있는데, 힘없이 지내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엄마는 가게가 어땠느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나는 아무래도 좁아서 카페를 할 순 없을 것 같다고 얘기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엄마는 그래도 같이 한 번 가게를 보러 가자고 했다. 엄마가 카페를 해본 것은 아니지만 가게를 해봤으니 같이 봐줄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래서 다시 일정을 잡고 엄마와 함께 가게를 보러 갔다. 여전히 안될 거라는 생각을 했던 나는 가게에 들어서서 엄마의 얼굴만 살폈다. 가게를 얼른 내놓고 이사하고 싶었던 마사지 가게 아줌마는 이런저런 말들을 마구 쏟아냈는데 그 말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고 나는 눈으로 엄마만 좇고 있었다. 가게를 보고 나온 엄마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가게를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고 얘기해 주며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내심 기쁘면서도 의심도 되고 또 당황한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지만 결국 해보겠다고, 해보고 싶다고 얘기했다.
정말 신기했던 건, 그렇게 말하고 나니 절대 할 수 없을 것 같던 일들이 꼭 할 수 있을 것 같이 머릿속에 그려졌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에서 결국 의지에 달린 일들이 참 많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어쨌든 하고자 마음을 먹은 내 머릿속에는 어디에 바(bar)를 둘지, 메뉴는 어떤 것으로 할지, 가게 이름은 무엇으로 할지, 마치 누군가 물꼬를 틔워주길 기다렸던 것처럼 계획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설레는 마음이 된 나는 서둘러 가게 계약을 하고, 머릿속에 쏟아지는 많은 생각들을 정리했다. 가장 먼저는 공간 구성에 대해 정리했고 인테리어 업체를 2~3곳을 찾아 미팅을 진행했다.
이제는 정말 가게를 여는 일만 남았다. 큰 산은 넘었으니 이제 조금만 더 지나가면 괜찮을 거라고 그저 의욕만 가득했던 과거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