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사람들이 가득하게 누리는 것에 관하여
제주에서 살게 되었지만 아직 그 기간이 길지 않아서인지 스스로 제주사람이라는 느낌은 아직 없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부터가 제주사람이 되려면 멀었다는 반증 아닐까. -아주 예전부터 동네에 스타벅스가 있는 친구들은 우리 동네에 스타벅스가 있다고 자랑하지 않는 것처럼. 예전에 경기도 우리 동네에 스타벅스가 생겨서 자랑한 적이 있다- 장난스럽게 친구들과 대화할 때 스스로를 섬사람이라 칭하지만 어쩐지 나는 여전히 서울 사람 같은 기분이 든다. 육지사람에서 섬사람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제주 사람들을 종종 관찰한다. 사실 나는 뭔갈 예의주시하고,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데 요즘은 이따금씩 제주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다.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내가 가지게 된 제주사람들의 느낌이 있는데 오늘은 그중에서 내게만 익숙지 않아서 왠지 질투가 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제주에서 지내며 바라본 제주사람들은 꽤 여유롭고 평온해 보인다. 나는 그 점이 답답하다가도 금세 부러워지곤 하는데 제주 사람들은 본인들이 얼마나 여유로운지(때에 따라서는 답답한지) 모르는 눈치다. 그리고 나는 답답함과 여유가 한 끗 차이라는 것, 게다가 굉장히 주관적인 단어라는 것을 제주에 와서야 깨달았다. 그리고 그 깨달음과 동시에 내가 굉장히 조급한 성격임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 그에 반해 제주 사람들은 참 여유롭고 평온한데 마치 모두가 그 DNA를 나눠가진 듯해서 더 부럽곤 하다. 애초에 그렇게 태어나서든 자라면서 조급할 이유가 없어서든 양쪽 다 부러운 것은 매한가지다.
그들의 넘치는 여유로움 말고도 부러운 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제주의 자연.
어쩌면 이 자연 때문에 이들이 더 여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내게는 매번 놀라운 이 자연을 아무렇지 않게 누리는 제주사람들이 참 부럽다.
이제 너도 누리는데 부러울 것이 뭐가 있냐 물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아직 제주사람의 ㅈ도(욕 아님) 따라잡지 못했다. 제주 사람들은 육지사람들이 돈과 시간을 들여 찾아와야만 볼 수 있는 너른 자연과 풍경을 어렵지 않게 누린다. 제주는 온통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라 도심에 산다고 할지라도 조금만 이동하면 바다 아니면 울창한 숲, 드넓은 밭 등을 볼 수 있다. 가까운 곳에 바다만 있어도 충분한데 그 외에도 자연이 가진 온갖 푸르름을 어렵지 않게 누릴 수 있다. (제주사람들은 특유의 성향으로 지역 간 이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버스를 타고 이동하다 드넓은 목장, 푸른 바다 등을 마주하면 나는 자연스레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는다. 사진에 도저히 담기지 않을 때면 창문에 거의 코가 박힐 정도로 가까이 다가가 풍경을 계속해서 눈에 담으려고 노력한다. 봐도 봐도 너무 멋지고 좋아서 계속 감탄하며 바라본다. 그러다 문득 버스 안을 둘러보면 사람들은 그저 묵묵히 앞만 보며 목적지에 도달하길 기다릴 뿐이다. 때때로 창밖을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처럼 이 풍경이 너무나도 멋지고 좋아서라기 보다는 그저 멍하니 시선을 밖에 두는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특별하게 바라보거나 유심히 보는 사람은 대개 나뿐이다. (물론 그중에는 육지사람들이 있을 수 있지만 사실 제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버스에 오르면 여행객과 제주 사람이 어느 정도 구분이 된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제주의 버스 이야기를 하며 풀어볼 예정이다.)
이렇게 멋진 자연을 아무렇지 않게 누리는 제주사람들을 부러워하다 보니 어쩌면 그들의 아무렇지 않음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이런 풍경들을 주로 봐왔기에 제주사람들에게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풍경인 것이다. 어제도, 그제도, 또는 1년 전, 몇 년 전에도 본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풍경.(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이 시점이 격하게 부럽다) 구름은 대개 저렇게 웅장했을 것이고 숲은 시원하고 울창하기 그지없었을 것이다. 늘. 눈 내리는 겨울 한라산은 멀리서 보아도 충분히 멋졌을 것이고. 곳곳의 오름 풍경도 그랬겠지. 바다가 갑자기 나와도 나처럼 '우와 바다야!!!' 하는 게 아니라 얼마든지 봐왔던 바다이니 이들에게는 그저 평범한 장면일 것이다. 내게는 너무나 웅장한 구름과 숲이 이들에게는 그냥 일상인 것이다. 눈 앞에는 바다, 양 옆으로는 너른 밭 또는 목장 그리고 등 뒤로는 한라산을 두는 것도 이들에게는 당연한 일인 것이다. 그래서 난 제주사람들이 참 부럽다. 이 멋진 자연이 당연할 수 있고, 익숙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부럽다.
굳이 바다를, 숲을, 오름을 찾아다니는 건 어쩌면 내가 아직 여유를 찾아다니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삶 자체가 여유라면 찾아다닐 이유가 없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삶 자체가 여유로 가득한 제주의 사람들이 부럽고 때때로 질투가 나기도 한다. 얼마 전에도 집 근처 오름에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가벼운 차림으로 손을 잡고 산책하는 부부, 아빠와 딸, 가족들을 보며 이 멋진 풍경들을 가볍게 누릴 수 있는 그들이 참 부럽다고 생각했다. 나도 누리고 있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스스로도 웃겼지만. 나도 20분 정도를 걸으면 갈 수 있는 오름인데 나는 그들과는 달리 오름으로 올라가는 길, 오름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 그 모든 것이 특별했다. (그들도 특별했을 수 있으나 누구도 티가 나지 않았다. 제주 사람들은 어쩌면 포커페이스인 것일까?) 이것을 일상으로 누리고 있는 그 삶들이 부러웠다. 이 너른 자연들을 일상으로 누린다면 여유가 가득할 수밖에 없겠구나, 조급할 이유가 없겠구나 생각했다. 큰 자연 앞에서 우린 너무나 작은 존재들이고 안간힘을 써도 커다란 자연을 넘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제주사람들은 무의식 중에 인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여유를 가지게 된 것이 아닐까.
가끔 육지와는 다른 제주의 풍경을 볼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인도의 모습인데(아래에 사진 첨부) 가로수는 그대로 둔 채 인도를 깔아 사람이 걸어가기엔 조금 난처한 모습을 하고 있다. 어떤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어떤 입장에서는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멋진 모습'으로 볼 수 있고 어떤 입장에서는 '굳이 뭔가를 더 해서 일을 벌이지 않으려는 모습'으로 볼 수도 있다. 물론 가로수를 피해 인도를 설치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나에게는 매일 마주하는 이 웅장하고 너른 풍경이 아직 익숙하지 않다. 얼마 전 제주에 눈이 가득 왔다고 했는데 우리 동네엔 눈이 거의 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안전 재난 문자로 도로 통제에 관한 안내가 와서 지역마다 차이가 있나 보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신호를 기다리다 돌아본 도로 끝에서 멋지게 눈 덮인 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너무 신비롭고 멋졌다. 아스팔트 도로 위를 걸으며 그 끝에 우뚝 솟은 중턱부터 꼭대기까지 하얗게 눈 덮인 모습을 볼 수 있다니. 그 모습을 보고 사진을 찍고 신기해하는 건 그 신호등에서 여전히 나뿐이었다. 몇 달 전에 비하면 나는 여유를 꽤 찾은 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아직 멀었다. 그렇지만 조급해하지 않고 나는 아직 여전히 여유를 찾아다녀야 하는 사람이니까, 찾아다닐 수 있을 때 열심히 찾아다니노라 다짐해본다.
내일은 어디로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