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쓰레기 없는 여행을 하려면
2019년 여름, 20년도 넘은 중학교때 친구와 함께 7박 8일의 제주도 여행을 가게 되었다. 방 두개에 주방 겸 거실, 그리고 마당이 있는 제주도 해안 마을의 전원주택이었다. 당시 4살 딸을 키우던 친구가 단 둘이 여행을 가겠다고 에어비앤비로 예약을 한 뒤 나를 호출한 것이었다. 나는 늘 그렇듯 별 고민없이 “그래? 오케이”. 재밌을 것 같은 일에 별다른 고민을 하지는 않는 편이다. 남편없이 아이들과 떠나는 첫 여행이었다.
나는 이번 여행을 쓰레기 없는 여행으로 하고 싶었다. 이번엔 꼭 이뤄야지 하는 그런 목표가 있다기 보다, 그런 삶을 여행에서도 이어나가고 싶었다. 여행이라는 것이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도 모른 채 자신의 습관대로 여행을 하는 것 같다. 책과 쓰레기와 커피가 중요한 나는 그런 것들을 챙겨 왔고 안전, 예의바름이 중요한 아이는 그런 것들을 잘 챙겨왔다.
늘 함께 살던 남편과의 여행(물론 그 여행도 순탄하지만은 않다) 이 아닌 서로 다른 두 삶이 만나는 여행이라 첫날부터 ‘다름’을 느끼며 시작했다. 중학교 때부터 알아왔지만 대학교 시절부터는 서로 다른 지역에서 지냈기 때문에 아이를 키우는 방식에서는 전혀 모르는 것과 다름이 없어서 그런 발견을 할 때마다 신기하게 느껴졌다. 내가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삶은 그저 ‘여러 종류의 삶의 방식 가운데 하나’이구나. 당연한 말이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여행할 때 생기는 쓰레기들은 음식과 큰 관련이 있다. 점심, 저녁은 사먹는다하더라도 아침에 먹을 햇반, 생수, 간편조리식품을 사지 않기 위해 밥, 물, 간단한 반찬 정도는 해먹어야했으므로 쌀과 보리차, 요리 조리 쓸모 있을 채소들을 좀 담았다. 숙소에 정수기가 있으면 조금 편했을 텐데 매일 같이 물을 끓이고 식혀서 담아 냉장고에 옮겨 놓았다가 아침 출발전에 큰 텀블러에 옮겨 담아서 가지고 다니면서 먹었다. 텀블러는 2리터짜리 1개, 500ml 짜리 두개, 내 커피용 텀블러 하나 총 네개를 챙겨서 매일 들고 다녔다. 챙기는 건 번거롭지만 차에 두고 다니기에 사실 큰 불편은 없다. 아이가 갑자기 목이 마르다고 할 때 편의점을 찾아다니는 수고로움을 생각하면 오히려 편한 일이기도 하다.
제일 핫 아이템은 별 생각없이 챙겼던 밀폐용기였다. 쓰레기 없는 여행을 하겠다면 가장 필수품일 것이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간단한 요리를 해먹더라도 다 먹을 것이아니라면 어딘가 옮겨 담을 곳이 필요한데 어떤 숙소에도 밀폐용기는 없다. 만든 채로 냄비에 넣어둘 수도 있지만 숙소에 냄비가 부족하다면 옮겨담을 밀폐용기는 꼭 필요하다. 또 아이가 어리다면 하루종일 돌아다니다가 어른의 식사시간에 확 곯아 떨어져비리는 경우도 생기는데 그 때 밀폐용기에 밥이나 반찬 조금을 담아오면 아이들이 낮잠에서 깨더라도 숙소에서 챙겨 먹일 수 있는 밥이 생긴다.
아무리 여행이라고 평소에 먹지 않던 맛없는 '3분땡땡'같은 레토르트식품들을 먹을 필요는 없다. 매우 불편할 것 같지만 조금만 준비하면 훨씬 맛있고 편리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도 많다. 일단 채소들 여행지에 가서 대량으로 사지 않고 미리 종류별로 조금씩 챙겨가는 것이 좋다. 채소가 있으면 카레, 볶음밥, 간단한 찌개는 금방 끓일 수 있다. 내가 간 숙소는 웬만한 소스들이 다 준비되어 있었고 혹시 남더라도 두고 올수 있을 만한 곳이었는데, 소스가 전혀 없는 리조트에 1~2박의 짧은 여행이라면 식용유나 소금, 된장 같은 소스들을 작은 통(아이들 약병 활용) 에 담아가는 것도 좋다.
이런 계획을 가지고 여행을 준비하더라도 출발 전에 함께하는 사람과 구체적인 식단 몇개 쯤 짜서 가야했던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나는 친구와 전혀 먹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은 채로 여행을 떠나서 보리차는 너무 많았고, 다른 식재료들은 제법 많이 사야하는 상태가 되었다. 계획없이 도착 한 그날 바로 장을 보다보니 음식물을 너무 많이 사게 되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 무엇을 먹을까, 혹은 사먹을까 해먹을까 하는 것은 쓰레기를 떠나서라도 여행에서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미리 의논을 할 필요가 있다.
남편 없이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에서 제일 고려하지 못했던 것이 ‘나의 여유’였다. ‘둘에 둘’과 ‘하나에 둘’은 천지차이였다. 하다못해 바닷가에 놀러가서 화장실 한번 가려해도 놀고있는 아이들을 불러모아 데리고 가야했다. 눈뜨자마자 시작해서 밤에 눈 감을 때까지 한 순간도 빠짐없이 보호자가 되어야된다는 일은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다. 아이들의 요구사항을 처리하다보면 내가 여행을 와 있는지 아이들의 손과 발이 되러 온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즐거워하고 있는가 집앞 놀이터에서 노는 것과 차이는 무엇인가 하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저녁이면 친구는 가볍게 가지고 놀 수 있는 작은 장난감을 아이들에게 사 주었다. 스티커재질의 비닐에 색을 칠해서 유리에 붙이는 데코글라스 같은 것이었다. 잠시 놀다가도 곧 싸우거나 누가 어떤 행동을 했다고 이르거나 하며 한시도 조용하지 않던 아이들이 갑자기 조용해지면서 작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친구와 나는 맥주 한잔 하며 육아에 대해, 살아가는 일에 대해, 십대와 삼십대를 통과한 우리에 대해 속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 아름다운 제주풍경을 보는 순간이 아니라 바로 그런 순간을 위해 내가 여행을 왔음을 깨달았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이 먼 길을 떠난 것이었다.
내일이면 쓰레기가 될 물건들은 절대로 사지 말아야 하는가, 이 순간 아이들이 ‘신박한 아이템’으로 갈등을 해소하고 사이좋은 관계를 맺고 친구와 내가 잠시나마 휴식을 취하는 것은 필요한가. 그럴 때마다 제로웨이스트를 선택할 것인가 쓰레기는 생기지만 그로 얻는 시간의 여유를 선택할 것인가 '제로쓰레기냐 시간이냐' 하는 내적갈등이 찾아왔다. 정말이지 쓰레기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다시 한번 여행을 떠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