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처럼 읽기> 정희진
재활용 운동을 하는 시민단체의 포스터가 있는데 그 단체를 지지하지만, 볼 때마다 불편하다. “두면 고물, 주면 보물” 매우 잘못된 말이다. 노동, 특히 대개 여성들이 하는 노동을 무시하고, 비가시화하는 말이다. 남에게 줄 선물 고르는 일도 상당한 노동인데 중고품을 나누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대로 기증하는 게 아니다. 정리, 청소, 수선은 필수. 드라이클리닝, 다림질까지. 남은 음식은 그냥 주기 미안해서 새로 음식을 더하기도 한다.
고물이 보물이 되려면 사람의 마음과 일이 필수적이다. 내게 별로 득이 되지 않오면서 ‘주고 욕먹을’ 가능성이 많은 일이다. 그게 귀찮아서 다들 그냥 버리는 것이다. 웬만한 사람들에겐 물건을 새로 사는 게 재활용보다 편하다. 자원을 아끼고 나누는 데는, 노동이 요구된다. 나는 이 노동이 자본주의를 구제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몸은 이미 체제다. 변화는 다른 세상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망가진 세상을 수선하는 일이다.
<정희진처럼읽기> 137쪽
정희진의 글이 재미있어 포스터를 찾아봤다. 아름다운 가게의 포스터이다. 나는 이 포스터가 정희진의 글처럼 ‘매우 잘못되었다’ 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포스터 답게 리듬감을 살려 간단히 적었으나 거기에 드는 노동을 지우려는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고물이 보물이 되는 것이 단순히 ‘주는’ 행동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다름아닌 아름다운 가게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았을까.
새 물건을 만들지 않고 덜 생산되어야 쓰레기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것이기 때문에 중고물품에 대한 관심은 있었지만 한번도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해 본 적은 없다. 정희진의 말처럼 몸과 마음의 ‘노동’이 필요한 귀찮은 일이기 때문이다. 중고가게에 기증하거나 혹은 그저 필요한 이에게 주려고 해도 버리는 일보다 훨씬 더 마음이 쓰인다.
얼마전에 둘째가 안쓰는 카시트를 조카에게 주기 위해 커버를 빨았다. 빨아도 깨끗하게 안 되서 결국 커버를 새로 6만원을 주고 사서 주었다. 커버쓰레기가 나오긴 했지만 버려질 뻔 한 덩치 큰 카시트가 다시 몇 년간은 쓸 만한 물건이 되었다. 작아진 옷이나 장난감 같은 대 다수의 경우에는 빨고 닦고 수선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주고 욕먹을’까봐 마지막까지도 고민될 때가 있다. '그냥 버릴까..?'
하다못해 이면지를 다시 쓰려고 해도 그것을 모아 놓고, 민감한 정보는 없는지 확인하여, 새 종이와 헌 종이가 필요한 상황을 나누어 프린트기에 새 종이를 끼웠다가, 이면지를 끼웠다가 반복하는 정성이 필요하다. 일이 바쁜 날엔 그냥 깨끗한 새 종이를 넣어서 이든 저든 다 뽑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많다.
물건 다시쓰기만 그런가, 사실 쓰레기를 줄이려는 많은 일에 노동이 필요하다. 그냥 한 곳에서 살 수 있는 물건도 구입처를 나누어 구매하는 일이 허다하다. 채소는 시장, 유제품은 한살림, 양념류는 마트.. 게다가 두부같이 물기 있는 것을 사기 위해서는 용기까지 챙겨 나간다. 버릴 때는 최대한의 재사용과 최대한의 재활용을 고려해 분리배출을 철저히 한다. 이 모든 것이 노동이다. 물론 일종의 '집안일'이므로 경제체제 안에는 존재하지 않는 보이지 않는 노동이며 보상도 없다.
처음에는 쓰레기를 줄이고자 하는 것이 내게 새로운 활동이고 스스로 만족감이 있었기 때문에 '기꺼운 노동'이었다. 힘들기는 해도 뿌듯했기 때문에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몇몇 개인의 '노동력' 에 기대서는 전체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현재 여성이 과도하게 담당하고 있는 '집안일'의 일종이므로 그 노동력은 대부분 여성의 노동력이 된다. '환경을 생각하는 여성'이 '편리함을 추구하는 여성'에 비해 마땅히 더 노동해야하는 구조라면 이미 과도한 집안일에 시달리는 데 어느 누가 자진해서 쓰레기를 줄이려 노력할까.
자원을 아끼고 나누는 노동이 자본주의를 구제할 것이다. 라고 정희진은 말한다. 우리는 자원을 아끼고 나누는 노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자원을 착취하는 노동을 하고 있다. 이미 포화가 된 산업을 억지로 끌어올리려고 하다보니 필요없는 물건 까지 만들고 판매하고 홍보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고 더,더,더 노동하고 있다. 학생들은 저성장 사회의 취업난에 조금이라도 더 나은 조건으로 취직하기 위해 또 더, 더, 더 공부(노동)하고 있다. 사는 데 힘이 드니까 더 편리한 물건,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이 극성인지도 모른다.
조금 더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일, 내가 먹을 작은 텃밭을 일구는 일, 포장없이 물건을 사고 파는 일, 사람과 사람이 만나 물건을 교환하는 일, 나아가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 자원을 공유하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일까지 자원을 착취하는 노동이 아니라 자원을 아끼고 나누는 노동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 노동을 '없는 일'인양 치부하고 개인의 희생에만 기댈 일이 아니라 그에 따르는 시스템의 보상 체계도 갖추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