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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능초보 Jul 11. 2022

표절 사냥꾼들의 오인 사격

유희열 「아주 사적인 밤」 표절 시비, 그 부당함에 덧붙여

이 글은 대중음악웹진 [온음]에 게재한 칼럼으로, 트래픽 이슈로 인해 브런치에도 한시적으로 게재할 예정입니다. 가능하신 한 원문을 우선으로 확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유희열의 연주곡 「아주 사적인 밤」(2021)이 일본 거장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의 「Aqua」(1998)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온라인 상에서 제기됐다. 유희열은 공개 사과문​을 올렸고, 이후 사카모토 류이치 측에서도 테마 유사성은 인정하되 “법적 조치가 필요한 수준으로 볼 수 없”​다는 의견을 표명하였다.

이번 의혹 제기가 이뤄진 과정은 탐탁치 않았다. 나 역시 이슈를 접하고 나서 두 악곡을 직접 비교 청취했고, 초반 테마가 유사하다는 지적에는 수긍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연주 전개는 확연히 갈릴 뿐더러, 애초에 그것이 기반한 장르•스타일부터가 앰비언트 풍 뉴에이지 스코어와 이지 리스닝 연주곡으로서 각자의 질감 및 기대되는 감상 등 여러 면에서 결을 달리 하여 크게 문제 삼을 바는 아니라고 보았다. 이는 사카모토의 입장문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무튼, 한번 불붙은 여론이 쉽게 사그라들지는 않으리라 싶으면서도, 사카모토의 직접 표명이 나온 데서 의혹은 어느 정도 일단락 되리라 생각했다. 다만 얼마 뒤 대중음악 평론 매체 《IZM》의 김도헌 필자는 유희열에 비판적인 기사​를 게재하는데, George Harrison의 「My Sweet Lord」(1970)와 The Chiffons의 「He’s So Fine」(1963) 간 무의식적 표절 판례를 서두에 언급하고서는 유희열의 대응을 문제 삼으며 “표절은 법의 문제가 아니다. 양심의 문제다”라고 맺는다. 물론 「My Sweet Lord」를 둘러싼 역사적 판례는 여타 표절 의혹에 따른 “들은 적 없다”는 치졸한 변명(들)을 일축시키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딱 잘라 기각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하지만 표절을 양심의 문제로 넘기기에는 예시로 든 무의식적 표절 자체가 법 영역에서 비롯된 데다가, 결국 쟁점은 아이디어 유사 정도에 따른 가치 탈취 여부이지, 고의성과는 무관한 만큼 비판 논지에 쉽게 동의하기 힘들다.

이후 같은 매체 소속 임진모 평론가는 음악가 김태원과 진행한 《100분 토론》​ 그리고 YTN 뉴스 인터뷰​ 등에서 논쟁에 더욱 불을 지피는데, 그 과정에서 나온 발언은 — 김태원의 “병, 해악” 발언과 더불어 — 심히 문제적이다. 임진모는 앞선 글과 마찬가지로 무의식적 표절을 예시로 들며, 악보 상으로 다르더라도 얼핏 듣기에 유사하다고 느끼는 감각도 중요하다는 취지로 논하는데, 글쎄다. 앞서 말했듯 쟁점에 있어 고의 여부가 크게 중요한 사안은 아니라고 보고, 그런 면에서 오히려 “도덕적 해이”라는 주장에 「My Sweet Lord」의 사례는 어울리지 않는다. 또한 핵심 아이디어의 유사 정도를 가리기 위해서는 음계, 리듬, 편곡 등 여러 요소를 종합해서 고려해야 하는데, 단순히 청각 유사성을 근거로 삼는 태도는 위험하다. 학술 혹은 문예 등과 달리 음악의 주요 구성 요소는 비언어적인 경우가 대다수로, 그 자체가 공통으로 약속된 의미를 가지는 경우가 많지 않은 만큼 표절 판정은 더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이 지점에서 프레임을 법 바깥으로 끌고 가려고 한다면 논의는 공전(空轉)할 수밖에 없다. 임 평론가도 전제로 짚었듯이 원칙적으로 음악 표절은 지적재산권 분쟁이고, 원고의 고소로 성립되는 문제이다. 그러나 이를 떠나 독창성 여부를 도덕 영역에서 판단하려 한다면 이는 창작론 논쟁이지, 적어도 법리적 판단이 이뤄지는 ‘표절’이라는 단어로 이번 건을 규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를 처음 문제 제기​한 것으로 알려진 도희서 작가는 주장에 덧붙여 “DAW(Digital Audio Workstation, 컴퓨터 작곡 프로그램 – 인용자 주)[…]가 창작자를 망쳐놓았다고 생각한다”​고 서술하며 음악 창작에 있어 참조(reference) 행위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치는데, 설령 백보 양보해 해당 의견에 음악 비평적으로 논의할 여지가 있다 하더라도, 이미 컴퓨터•샘플링 음악의 수혜를 받은 금자탑들이 속속이 세워진 현대 대중음악 장에서 과연 어떤 유효한 논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새삼스럽지만 사카모토는 전자음악 그룹 YMO 출신이다.) “조사와 참고는 절대로 관찰과 사색보다 위대할 수 없다”는 말에 전혀 동의할 수 없을 뿐더러, 그것이 법리적 문제인 표절을 논하는 장이라면 더더욱 무의미한 의견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창작의 양심’을 묻는 주체가 과연 누구인지 궁금하다. 문예•학술계 등에서 표절이 공공의 문제인 것과 마찬가지로 예술계에서도 당사자 간 법리적 분쟁 이전에 당사자 차원을 넘어서 타인의 성취를 찬탈하고 공론을 흐리는 점에서 공공 윤리적 시선을 견지해 마땅하다는 데에 충분히 공감한다. 그렇다고 이를 판단하고 지탄하는 데 있어서 충분히 협의되지 않은 기준을 적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종종 사카모토의 입장문이 거장이 넓은 아량으로 후배를 위해 퇴로를 열어준 것이라고 넘겨짚는 모습을 보는데, 글쎄, 오히려 문면(文面) 그대로 영향 관계와 표절을 구분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게 납득이 가는 글이지 않은가? (물론 의혹 제기 측은 레퍼런스조차도 마뜩찮게 보는 모양인데, 반대로 다른 직무 중에서 레퍼런스를 안 따는 분야가 얼마나 있는지 묻고 싶다.)

자, 어찌 되었건 유희열은 해당 곡이 수록된 『생활음악』 LP 발매를 취소했다. 이와 별개로 그는 피-표절 지목 대상자에 직접 의사를 타진했고, 당사자로부터 문제 없음을 확인 받았다. 여기서 아티스트는 무얼 더 해야 하는가. 표절 여부에 대한 논쟁이 당사자 확인이 끝나자 보란 듯이 창작론 논쟁으로 쟁점을 옮겨 가는 모습이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 오해를 정정하는 것이 평론가의 역할이라고, 아니 적어도 거기에 훼방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를 정정해 마땅찮을 평단에서 오히려 정의(定義;definition)를 흐리며 논란을 부추기는 광경에 실망을 금치 않을 수 없다. 이 논쟁은 처음부터 부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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