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면접에 합격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처우 오퍼에 필요한 자료 요청드립니다."
인생 첫 이직을 결심하고 리멤버에 이력서 등록한 게 7월. 이후 4개월 만에 받은 최종합격 소식. 나는 5군데 회사에 지원해서 3곳 최종면접을 보았고, 2곳에 붙었다.
한 곳은 동종업계의 외국계 기업.
다른 한 곳은 전혀 다른 업종.
그 간 국문, 영문 이력서에 면접 준비로 늘 긴장 상태였는데 고생한 보람이 있구나. 기분은 좋았다.
공채로 입사해 과장까지, 한 회사에서 성장 트랙을 밟고 굵직한 프로젝트에 참여해왔다. 동료, 유관부서 네트워크도 착실히 쌓은 편.
그럼에도 불구, 지금이 마지막 이직 기회일 것 같다는 조바심과, 새로 맡은 업무에 확신이 없다는 이유로 이직시장에 몸을 던졌다. 면접에서 가장 집요하게 받은 질문은 "10년 넘게 한 회사를 다니셨는데, 왜 지금 이직하려고 하세요?" 였다.
마음속 꽁꽁 숨겨둔 이유를 얘기하자 면접위원들도 수긍했지만, 10년 이상 한 회사만 다녔다는 건 뼛속까지 그 조직에 쩔어 있다는 의미였다. 어떤 분은 내게 "현 직장을 정말 사랑하는 게 느껴져요." 라고 하셨다. (What?)
문제는 면접을 보면 볼수록 이직에 확신이 서지 않았다는 점. 최종합격한 2곳은 마지막 면접을 끝내고 후련하기보다는 생각이 많아졌다.
"붙을 거 같은데... 여기로 이동하는 게 맞나?"
이종업계는 그 빠른 속도와 시장 상황을 고려했을 때, 내가 따라갈 수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게다가 대기업 계열이라, 그 회사에 오래 있던 사람들과 경쟁하기 힘들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감사인사와 함께 지원 철회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동종 산업의 외국계 기업.
헤드헌터가 강력 추천한 곳으로, 외국인 상사와 일하며 영어가 강제로 늘겠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며칠간 영문이력서와 영어 면접 준비 끝에 고지에 올랐건만, 당장 모든 일을 영어로 해야 한다니 겁이 났다.
게다가 '경력직 과차장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가?'도 중요했다. 이력서를 쓸 땐, 지금의 무거운 책임과 골치 아픈 현안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이 컸다. 하지만 면접에서 그 회사 사람들을 만나며 3년, 5년, 10년 후를 냉철하게 그려봐야 했다.
외국계의 장점은 능력에 따라 글로벌 시장 기회가 열린다는 것. 나중에 어떤 부서로 이동할 수 있는지, 또 어떤 루트로 성장할 수 있는지 물었을 때 모든 면접위원의 답변은 한결같았다. "본인이 원하면 해외 본사나 글로벌 오피스 기회가 있어요."
과연 그게 나에게도 장점일까? 내가 바라는 미래일까?
만약 글로벌 기회가 끌리지 않는다면, 3-5년 뒤 또 한 번 이직을 시도해야 한다. 그러나 큰 회사에서 작은 회사는 갈 수 있어도 반대의 경우는 드물다. 30대 후반인 지금 대기업 품을 떠나면 현실적으로 다시 돌아오긴 어렵다.
주변에 상담을 요청했다.
(친구) 고민 그만해. 더 고민하면 너 못 옮길거야
(동료A) 처자식 있는 것도 아닌데. 지금 옮겨야 나중에 또 기회가 생기지 않겠어?
(동료B) 이렇게까지 고민하는 걸 보면, 안 가는게 맞아요.
(이직 경험 있는 동료C) 이직은 생각보다 큰 일이에요. 여기서 쌓은 자산 다 놓고 가기엔 좀 아까워요.
(이직 경험 많은 선배D) 고민되면 글로 적어봐. 근데 이직하려는 회사에 명확한 장점 1-2가지는 반드시 있어야 해.
가도 후회, 안 가도 후회, 어느 쪽이든 꼭 후회는 할 거다. 2주간 치열한 고민 끝에 나는 현 직장에 남는 것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여기서 더 많은 기회 누리고 더 높이 올라가야지! 싶고, 합격 연락을 받고도 진심으로 기쁘지 않았던 그 순간이 계속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오퍼 숫자가 궁금한 건 못된 심보일까.
* 이미지 출처 https://www.shutterstock.com/ko/image-photo/you-hired-623590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