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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기범 May 17. 2020

[D+327] 매일의 육아가 고통인 당신께

행복만 가득한 육아라는 게 있을 수가 없잖아요?


1년째 기록을 남겨 오면서 본의 아니게 일기가 일기가 아닌 후기가 되곤 한다.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은 5월 17일. 그림을 그린 것은 5월 초. 저 모습을 찍어둔 것은 4월 15일. 한 달이나 차이가 난다. 그날 즈음의 기억은 저 어드메로 사라졌다. 무척 힘들었던 것 같은데, 어렴풋해 잘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 때의 나에게 돌아가 "야 한 달 뒤면 기억도 나지 않을 힘듦이야. 신경 쓰지 마"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니가 뭘 알아' 한 소리 들었을 것 같다. 그런데 어쩌리, 한 달만에 마음이 그리 바뀐 것을.



행복만 가득할 리가

없잖아?


요즘 "아기를 키워보니 어떻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아직 아기를 갖지 않았거나, 곧 아기를 낳을 예정인 후배들에게서 많이 듣는다. 그때마다 나는 양 손을 테이블 위로 스윽 들어 상대방의 눈높이로 올린다. 그리고 양 손을 저울질 하듯, 그러나 거의 차이가 없게 오르락내리락한다.


"행복은 이만큼, 스트레스도 이만큼."


51대 49 정도라는 거다. 물론 평균이 그렇다는 것이고, 어떤 날은 행복이 90인 날도 있다. 또 어떤 날은 불행이 90인 날도 있고. '행복' '고통' 두 개로 딱 나누기 힘든 마음, 솔직히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면 그렇다.


세상 어떤 일인들 행복한 순간만 있을까. 전쟁터에서도 가끔 행복한 순간은 찾아오지 않을까. 아기로 인해 얻은 것, 느끼는 것이 너무나 많지만 잃은 것도 많다. 어쩌겠는가. 세상에 대가 없는 소득은 없다.


그래서 '아기야 너 때문에 하루하루 행복해. 인생을 다시 살아( 여기에 쓰는 대사가 아닌가?)' 같은 글에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 내 생각에는 이렇게 적어야 맞다. '아기야 너 때문에 하루 걸러 하루씩 온탕과 냉탕을 오가. 엄마랑 단둘이 저녁 데이트한게 언제인지 모르겠어. 그런데 또 너랑 같이 나가면 즐겁더라고. 일상은 어떠냐고?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살고는 있는데 내 인생 처음 느끼는 축복 같다가도 가끔은 현타가 오기도 한단다' 정도가 되겠다.


딸이 혹 나중에 이 글을 읽고 서운해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매일이 순전한 행복이었다면 거짓말이니까. 내 딸이 나중에 커서 SNS를 보며 '왜 남들은 하루하루 행복해 보이는데 나는 이 모양일까' 걱정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행복한 순간만 남는 찰나를 항상으로 오해할 필요는 없다. 한 장의 사진을 찍어 올리는 10분은 행복하겠지만 나머지 23시간 50분의 그 사람이 어떤지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다.



'사막 속의 오아시스' 같은

기쁨의 순간


스트레스는 사막이다. 행복은 오아시스고.


한 달 전부터 요즘까지 많이 드는 생각이다. 스트레스는 도처에 깔려 있다. 빨래가 쌓여 있고, 아기가 새벽에 깨고, 엄마의 기분을 달래줄 수 없고, 야밤의 혼술로 인한 숙취는 다음날 오전 내내 짜증을 유발한다.


그러나 아기의 웃음, 처음으로 잡고 선 순간, 또렷한 발음으로 엄마를 부른 순간, 거실에 쳐놓은 가드 틈새로 아빠와 눈이 마주쳤을 때 개구쟁이처럼 웃어줬던 순간, 엄마에게 폭 안겨 있던 순간, 아빠 입술을 손가락으로 퉁기면서 세상 즐거운 듯이 웃던 순간, 그 찰나의 순간이 긴 고통을 상쇄한다. 행복한 시간은 짧지만 나머지 고통의 시간을 충분히 지워줄만큼 강렬하고 달콤한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아기를 키우며 매일이 고통이라 생각하는 당신에게 감히 조언한다. 언젠가 오아시스가 온다. 물론 그 다음은 또 끝이 안 보이는 사막일 수도 있지만.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냥 그런 것이다 해야 한다. 오죽하면 아동 심리학자인 신의진 교수가 넋두리하듯 책(아이심리백과 0~1세편)에 적었을까. "3년만 죽었다 생각하라. 나도 이런 답밖에 할 수 없는게 황당하다"고.


그러니 '행복'을 담은 다른 엄마들의 해피해피 육아 SNS를 보며 부러워하거나, 또는 비아냥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 분들도 사실은 짧은 행복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나와 별 다를 바 없는 사람일 것일 가능성이 높으니까.(라고 생각하며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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