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분유가 도대체 뭐길래
영아산통, 걱정 마세요 다 지나갑니다~
평화롭던 2주가 지나고 조리원 퇴소를 앞두고 난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함몰유두 때문에 무이가 직수를 거부하는 탓에 모유를 그때그때 유축해서 먹이고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점차 모유양이 줄고 있어 분유로 보충해주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민은 거기에서 비롯되었다.
'도대체 무슨 분유를 먹여야 하는 거지?'
신생아 중환자실 주치의 시절, 환아들마다 기계처럼 넣던 식이 처방에는 BM/WM q3hr라는 문구가 있었다. 이는 '모유던 분유던 3시간마다 알아서 먹여주세요'라는 뜻이다. 무슨 분유를 먹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전혀 필요 없었다. 어차피 병원에서 일괄적으로 제공되는 분유가 조제되어 나올 것이므로. 간혹 기저질환이나 설사 등의 증상으로 특수분유를 먹여야 하는 아이들이 있기는 했었는데, 그런 경우에도 그저 처방하면 그만일 뿐이었다. 그게 얼마나 맛이 없는지, 분유를 탈 때 물에 잘 녹지 않아 얼마나 고생하는지는 전혀 나의 고민거리가 아니었다.
그러다 막상 우리 무이한테 분유를 먹이려고 하니, 정상 신생아에게 먹일 수 있는 분유의 선택지가 왜 이렇게 많은 건지... 막막하기 짝이 없었다. 인터넷에 검색해봐도 머리만 더 혼란스러워질 뿐. 그래서 결국 퇴소 전날, '에잇 몰라, 그래도 먹던 게 낫겠지' 하는 마음에 조리원 실장님께 슬쩍 여쭤보고는 조리원에서 제공되던 **사의 산양분유 한 통을 겨우 구매했다.
그렇게 2주쯤 먹였을까, 녹변(엄마 마음이 조금 찜찜할 수는 있겠지만 나름 괜찮은 정상변)을 본 무이를 보며 산후도우미 분이 "요새 다른 좋은 분유도 많던데, 엄마가 소아과 의사인데 더 좋은 거 먹여보지 그래요?"라며 나를 자극했고 그 순간 나는 내가 너무 무심한 엄마처럼 보이는 것 같아 부끄러움까지 느껴졌다. 무이한테 사죄하는 마음으로 하루 반나절을 꼬박 열심히 좋은 분유를 찾아 인터넷을 헤맨 끝에, 육아에 관심 있는 많은 인싸 엄마들이 먹인다는 수입 분유로 분유를 바꿔보기로 결정했다. 뭐랄까, '나도 이제 인싸 엄마들 발끝은 따라가는 건가' 하고 뿌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나 이번엔 새로운 복병이 이 무지하고 불쌍한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 분유를 먹기 시작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무이가 그 무섭다는 배앓이를 시작한 것이다. 매일 밤 10시만 되면 무이는 온몸을 비비 꼬면서 집안이 다 떠나가도록 울었다. 나름 소아과 의사라고, 남편한테 "이건 infantile colic(영아산통)이라는 건데, 괜찮아. 성장통 같은 거랄까? 시간 지나면 다 좋아져"라고 자신 있게 말했지만 무이와 함께 고통의 시간을 보내는 건 여간 몸도, 마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손으로 배도 문질러보고, 같이 울어도 봤지만 무이의 배앓이는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소아응급실 전공의 시절 영아산통으로 응급실을 찾는 엄마들을 종종 만날 수 있었는데, 대개 아기들이 오는 동안 좋아져 버려 막상 응급실에 오면 진료실에 있는 나를 보고 방긋방긋 웃는 턱에 민망해하는 엄마들을 참 많이 보았더랬다. 몇 시간이고 아기들이 달래지지 않고 고통에 몸부림을 쳐서 부모 마음을 덜컥 내려앉게 하지만 대부분은 별 탈없이 장운동이 미숙해서 나타나는 증상들로 보통 생후 3-4개월이 넘으면 자연스레 사라진다. 그래서 간단한 검사를 하고는 보호자들에게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말고 집에 가세요. 배 마사지 잘해주시고요. " 하고 말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초보 엄마들이라 그렇지, 별것도 아닌데 응급실까지 오다니 유난이다'하고 무심코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수많은 엄마들은 응급실에 오기까지, 집에서 도저히 달래지지 않는 아이들과 끝없는 고통의 시간을 보냈으리라.
결국 무이는 세 번째 분유로 바꾸고 나서야 배앓이와 이별할 수 있었다. 예방 접종하러 가서 뵌 경험 많으신 소아과 선생님의 "엄마 욕심 때문에 아기가 고생하네! 한국애들은 한국 분유를 먹어야지"라는 꾸중에 나는 그 날로 마트에 가면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국산 분유로 다시 분유를 바꾸었다. 영아산통이 좋아질 때가 되서인지, 정말 이 분유가 잘 맞아서 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무이는 그 후로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나의 이쁜이로 다시 돌아왔다.
분유 유목민과 영아산통을 거치면서, 엄마의 무지함도 위험하지만 때로는 내가 우리 아기에게 이만큼 신경 쓰고 있다는 티를 내고 싶은 엄마의 오만함이 더 나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들 하지만, '진짜 우리 아기한테 좋은 게' 그게 제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