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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이맘 Apr 17. 2020

공포의 폐구균 접종

뇌척수액검사, 네놈이 문제다

소아응급실 전공의 시절 문 밖에서부터 신생아 울음소리가 들리거나 환자 접수 목록 나이 칸에 M(Month, 개월)이나 Y(Year, 세)가 아니라 D(Day, 일)가 딱 뜨는 순간, 난 항상 마음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거기에 주증상이 fever(열)인 경우라면 더욱이.


생후 90일 미만의 아기들은 열이 나면 그 자체로 큰일이다. 엄마들은 '해열제 먹고 열 떨어지면 괜찮겠거니'하고 동네 병원을 찾겠지만, 의사들한테 듣는 이야기는 "혹시 모르니 큰 병원 가보세요"였을 테다. 그렇게 놀란 마음을 부여잡고 큰 병원에 온 엄마들은 또 한 번 마음 아픈 경험을 하게 된다. "뇌척수액 검사를 하셔야 해요"


생후 90일 미만의 아기들에서 38도 넘는 열이 단 한 번이라도 난다는 건 좋지 않은 싸인일 수 있다. 면역력이 약한 아기들한테서 패혈증이나 뇌수막염 같은 중증 감염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보통 병원에서는 피검사, 소변검사, 엑스레이 그리고 필요한 경우에는 뇌척수액 검사까지 진행하게 된다. 아기 손등에 주삿바늘 들어가는 것도 억장이 무너지는데 뇌척수액 검사라니... 응급실에서는 의료진과 보호자와의 실랑이가 벌어지기 일쑤다.

 "검사해야 해요"

"못 해요. 그냥 해열제만 주세요"

백혈구 수치나 염증 수치가 높거나 소변이 지저분하거나 엑스레이가 나쁘다거나, 이런 항생제 치료가 꼭 필요한 상황이라면 사실 엄마, 아빠들의 애타는 마음은 백 번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뇌척수액 검사는 꼭 필요하다. 뇌수막염인지 아닌지에 따라 항생제 선택도 달라지고 용량도 달라지니, 의사들한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셈이다.


그렇게 보호자들을 설득해서 동의를 얻고 나면 이제 그때부터는 아가와 의사와의 고독한 싸움이 시작된다. 뇌척수액 검사는 등허리 척추 사이 공간에 바늘을 넣어서 뇌척수액 일부 뽑아서 검사를 시행하는 꽤나 침습적인 시술이다. 그러려면 몸부림치는 아기의 몸을 둥글게 말아서 움직이지 못하도록 인턴 선생님이 잘 붙잡고 있어줘야 하는데, 그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 약한 인턴 선생님들은 손 안에서 버둥거리는 연약한 아기들을 꽉 잡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그럼 제대로 된 자세가 잘 나오지 않아 결국 시술이 길어지거나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또 시술을 하는 의사들도 한 번에 끝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데 손으로 만져서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좁은 척추 사이 공간에 바늘을 한 번에 딱! 주변 혈관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적당한 깊이로 착! 밀어 넣는 건 사실 굉장한 스킬을 요하는 일이다. 물론 대부분은 안전하게 성공하니 너무 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보호자 설득부터 뇌척수액 검사까지, 열나는 신생아들이 응급실에 오면 전공의들의 새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이유이다. 그런 속사정을 너무도 잘 아는 나였기에 무이를 낳고 나서 90일 동안 열이 날까 봐 얼마나 마 졸였는지 모르겠다. 2개월 예방접종 중에 하나인 폐구균 접종이 가장 큰 복병이었다. 소아 응급실에서도 가장 내 속을 썩였던 것이 바로 폐구균 접종이었다. 폐구균 접종 후 열이 나서 온 아기들, 물론 백신 열일 가능성이 제일 높겠지만 간혹 염증 수치가 오르거나 하면 의사들도 눈물을 머금고 떨리는 마음으로 뇌척수액 검사를 해야 할 수밖에 없다는 그 속사정을... 보호자들이 다 알아줄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 무이는 타고난 건강함 덕분인지 백신 열 없이 생후 90일 고지를 잘 넘겨주었다. 만약 무이가 열이 났더라면, 그래서 뇌척수액 검사까지 필요한 상황이었다면 엄마가 된 나는 쉽게 검사를 결정할 수 있었을까? 사실... 나도 쿨할 자신 없다.  아마 무이를 안고 엉엉 울었을지도.


무이 100일 떡을 돌리면서 난 소아과 동료들과 함께 이렇게 자축하였다.

'열 없이, 뇌척수액 검사 없이 100일을 맞이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아기가 건강하게 자라준다는 것, 그게 엄마에게는 가장 큰 효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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