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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예 Apr 17. 2020

1. 어떤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


응급실에서


한 때는 생명을 잉태했던 곳에서 핏덩어리들이 쏟아져 내렸다. 


응급실 인턴을 하면 어지간한 장면에도 정신을 놓지 않을 수 있게 되지만, CR(Critical Room, 응급실 내에 위치한 중환자 치료실)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던 모습은 충격적이다 못해 초현실적이었다.


자궁은 품고 있던 생명을 잃자 모든 것을 포기한 듯이 피를 쏟아냈다. 


여자의 몸 그 어느 곳에서도 맥이 느껴지지 않았고, 사지에 라인을 잡아 수혈을 시작했지만 혈압조차 측정되지 않았다. 


나는 멍하니 주저앉은 산모의 아버지와 괴성을 지르며 오열하는 남편을 마주하고 중환자실 입실 동의서를 받아야 했다. 


산모는 나와 두 살 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예고되었던 CPR(Cardio-pulmonary resuscitation, 심폐 소생술)이 시작되었고, 어쩌면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정말이지 살리고 싶었다. 그녀는 아이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을 것이다. 약 일곱 사이클만의 CPR 후에 순환이 회복되었다.


이후 그녀는 말 그대로 응급하게 수술방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녀는 그곳에서 영원한 이별을 했다. 그녀의 남편과, 부모와, 그리고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한 아이와. 


그녀가 사라진 응급실은 긴박함을 잃고 침전되었다. 하루에도 많은 죽음을 목격하지만, 개개인에 따라 더 무거울 수 있는 죽음도 있는 것이다. 


두 시간 정도 후에 스스로 목을 맨 젊은 여자가 같은 자리로 들어왔다. 나는 몹시도 묘한 기분이 들었다.



중환자실에서


"나는 바깥양반이 그리도 슬픈 표정을 짓는 것은 처음 보았소."


나는 화들짝 놀랐다. 카디오(순환기내과) 인턴이 휴가를 간 일주일 동안 내가 대신하여 매일 아침 그녀의 CVP(Central Venous Pressure, 중심정맥압)를 쟀지만 멀뚱히 나를 볼뿐 내 말에 대답을 한 적도, 인사를 받아준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마치 항상 그런 식으로 대화해왔던 것 마냥 되물었다.


"언제요?"


그녀는 다음날 수술이 예정되어 있었다. PAOD(Peripheral Arterial Occlusive Disease, 말초동맥 폐쇄증)로 이미 그녀는 왼 다리를 잃은 상태였다. 어수룩한 인턴으로서는 참으로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심전도를 찍으려면 집게처럼 생긴 리드로 양팔과 양다리를 집어야 했는데 그녀에게는 그럴 수 있는 다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칭칭 붕대를 감은 그녀의 왼 다리 위로 아주 조금 남은 맨살에 리드를 대고 심전도를 찍어야 했다. 그러나 허벅지 부분이었기에 리드가 자꾸만 삐져나왔고, 그럴 때마다 나는 얼굴이 시뻘게졌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상황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게 어쩌면 그녀에게 더 상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심전도 판독을 받고 가장 최근 찍은 가슴 엑스레이 소견을 써달라고 독촉하는 메일을 수차례 보내고 나는 안심한 채 그 날 잠들었다.


그 날 새벽 내내 그녀는 아마 아주 아주 아주 안 좋은 꿈을 꾸었을 것이다. 아주 어두운 밤바다를, 그 끝도 없고 숨 막히는 심해를 유영하면서 커다랗고 괴상망측한 물고기들도 만났을 것이다. 그런 무서운 것들이 그녀를 한 입에 집어삼키는, 그런 종류의 안 좋은 꿈을 꾸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갑작스럽게 새벽 4시경에 열이 39도까지 치솟을 수는 없었다.


나는 새벽 4시 3분경에 중환자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나는 숙소에서 아주 깊은 잠을 자다가 머리맡에서 묵직하게 울리는 진동 소리에 잠이 깼다. 나는 반쯤 감긴 눈을 하고 터덜터덜 중환자실로 내려갔다. 간호사로부터 주치의 선생님의 오더를 전해 듣자마자 나는 약간 움찔했다. 낮에 내 얼굴을 보며 생경하게 이야기했던 바로 그녀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의 central cath(중심정맥 카테터)와 femoral sheath(대퇴부싸개)와 비교적 온전한 오른팔에서 채혈을 했다.


그녀는 다음 날 수술을 하지 못했다. 그것은 다시 말해 그녀가 계속해서 고통을 느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녀는 다음날 어색한 표정으로 심전도를 찍으러 온 내게 마치 어제 내 물음에 대한 대답이라도 하듯이 이렇게 말했다.


"수술을 못한다고 하니까. 그러자 그 양반이 그런 표정을 지었소. 50년을 살아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어."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는 그녀의 남편이 어떤 표정이었을지 그려졌다. 아마 나는 다 잘될 것이라고 말하며 미소를 지으려 노력했겠지만 그녀는 다시 한번 내 얼굴에서도 참담함을 보았을 것이다.


나는 그날 밤 아주 아주 좋지 않은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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