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빨간펜 선생님

by 은지

출근하는 길에 지나오는 낡은 동네가 있다. 좁은 2차선 도로 건너에서는 열심히 아파트를 올리고 있지만 건너편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 세계의 일이니 그냥 두라는 양 이쪽 골목은 한가롭고 정감 어려있는 풍경이다.


오늘 나의 출근시간이 초등학교 저학년들의 하교 시간과 딱 겹친 모양이었다. 페인트칠이 대부분 지워진 횡단보도 위를 장난치며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아이의 손을 잡은 보호자들이 우르르 섞였다.


2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투피스 치마 정장을 입은 엄마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아이가 엄마라고 부르며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조잘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뭉클해졌다. 문방구로 향하는 듯했다. 엄마의 다른 손에는 커다란 가방이 들려있었고, 가방 안엔 학습지처럼 보이는 작고 얇은 책들이 가득했다.

IMG_5891.heic 가챠가 유행이라던데, 이 동네엔 아직 500원짜리 뽑기 기계다.

낡은 동네에 학습지 가방을 든 엄마와 엄마 손 잡은 명랑한 초등학생이라니.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내가 초등학생에서 고등학생으로 자라기까지 우리 엄마는 빨간펜선생님으로 불렸다. 엄마는 태생적으로 명랑하고 씩씩한 데다 낙천적인 사람이라 집안 형편이 갑자기 기울었을 때에도 조금만 울고 탁 털고 일어나 일을 하러 나갔다. 그쯤 나는 밥 하는 법을 배웠고, 놀이터에는 꼭 동생을 데리고 나갔다.


바지에 생리혈이 다 묻어서 다른 아이들이 모두 집에 돌아갈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던 날, 할머니랑 산다고 따돌림당하던 친구를 대신해 돌에 맞았던 날, 꽃다발이 없어서 친구 꽃다발을 빌려 사진을 찍었던 졸업식까지. 나는 엄마가 오는 상상을 다른 추억으로 바꾸는 연습을 열심히 했다. 오늘은 엄마가 올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보다 주말에 엄마랑 마트에서 장을 보고 근처 떡볶이 집에 가서 같이 떡볶이 먹었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아주 서글픈 일도 아니었다. 엄마를 미워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엔가 엄마가 해줬던 얘기가 생각났다. "막내 낳았을 때 엄마 많이 울었어. 너희 할머니는 또 딸 낳아서 울었던 거라고 이야기하시는데, 그런 거 아냐. 너도 아직 일곱 살인데, 엄마랑 놀아야 되는데. 울지도 않고 할머니 손 잡고 병실 나가던 네가 너무 안쓰러워서."


앞서 가던 두 사람이 문방구 문을 열고 들어가고, 다음 골목즘 도착했을 때 울음이 터졌다. 엄마는 나를 얼마나 보러 오고 싶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