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구를 뚫으며 새삼 깨닫게 된... ^^
집을 짓고 들어와 산지 만 6년이 되어가고 있다. 공동 주택단지고 관리주체가 따로 없는 터라 음식물 쓰레기 처리가 항상 골치였던 터라, 음식물분쇄기를 하나 들여놓았다. 불법이란 말도 있었으나 정부인증까지 받은 제품이라는 말을 고지곧대로 믿고 구매해서 써왔다.
몇달 전 하수구로 배수가 잘 안되더니, 음식물분쇄기 모터가 나가버려서 어쩔 수 없이 유상 수리를 했는데 추석연휴 직전 싱크대 배수에 또 문제가 생겼다. 음식물분쇄기 안쪽이 막힌 걸로 판단, 지역 AS담당하는 사장님께 연락을 했다. 이분이 와서는 하수구 문제라며 배수구 입구에다 썩션 몇 번해서 물을 조금 빼내고는 13만원을 받아갔다. 그런데, 이게 그냥 배수로에 있던 물 일부만 빼내고는 그만큼 빈 공간에 물을 흘려보내 뚫렸다고 보여주고는 그냥 돈만 받고 가버린거다. 문자를 보냈더니 회신도 없다. 천하의 사기꾼이다.
어떻게든 해결해보려고 싱크대 안쪽 하수구 입구를 찾아 열어 일부 물을 뽑아 올린 뒤 배수구 용해제를 몇통이나 들이 부었으나 실패. 혹시나 싶어 호스를 밀어 넣었는데 힘겹게 들어는 가나 전혀 뚫리지 않았다. 결국 전문가를 부르기로 결정하고 폭풍검색. 동네 사장님들은 그냥 압축으로 쏘아대는 수준이고 근본적 해결이 잘 안된다는 중론에 전문 장비를 갖춘 업체에 전화를 했더니 2시간만에 기사가 도착했다.
전문가의 진단은 싱크대에서 나가는, 특히 음식물분쇄기에 잔여물이 다 빠져나가지 못해 축적되고 하수구 라인 전체에 슬러지가 차서 결국 막힌 것이었다. 입구쪽만 막힌거면 간단히 해결되나 주택의 경우 배관이 복잡해 작업이 어려울 수 있다. 그렇게되면 사용장비가 늘어나고 비용도 늘어난다는 말을 한다. 사실 간단한 싱크대 막힘은 7만원이라고 해서 부르긴 한건데... 장비를 하나씩 소개하면서 증가하는 비용을 이야기하는데 음식물분쇄기 구입 가격보다 비싼 값을 치러야 하는 상황 ㅜㅠ
배수구 안을 모니터링 하는 내시경과 하수구 슬러지를 제거하는 장비를 함께 투입 힘겹게 막힌 최종 지점까지 도달하고 다시 빼내면서 하수관 스케일링까지 마쳤다. 직접 모니터로 작업이 진행되는 모습과 결과를 보니 비싼 비용을 부르는 것에 토를 달 수가 없었다. 아주 젋은 프랜차이즈 대리점 사장님인데 이렇게 하루에 서너 곳을 다닌다고 하니... 일 매출이 최소 200은 될 듯, 냄새나고 힘든 일이지만 전문성을 가지고 자신감있게 일하는 모습이 대견했다.
총 80만원을 달라는 걸 조금 할인해달라고 하니 난색을 표명. 그래도 내가 옆에서 계속 도와주지 않았냐고 하니까 5만원을 깎아줬다. 나도 나름 고급인력인데 이 분야에서만큼은 5만원짜리였다. 생각지도 않았던 돈을 아픈 마음을 무릎쓰고 송금하고 난 뒤 갑자기 생각이 많아졌다. 7만원에 해결되길 기대했던 나는 두 시간여 사이에 10배에 달하는 금액을 지불해야 했고, 선택의 여지도 없었으며, 가격은투입되는 장비에 따라 그가 부르는 가격이 절대 기준이었다.
그러고 보니 의사, 변호사 등 신체적, 법적 문제를 해결해주는 전문가들의 서비스는 대략 업계 평균가는 있겠지만 솔직히 부르는게 값이다. 게다가 문제가 정확히 규명되고 해결방법을 제기하면서 비용은 엄청나게 불어나고 의뢰인은 발을 빼기 어렵다. 물론 당면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맞겠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있던, 기대했던 비용과는 하늘과 땅 차이인 경우가 많다.
결국 의사, 변호사, 그리고 경조사 관련 서비스 뿐만 아니라 배관 청소 등은 취향이나 기호에 따른 구매가 아니라 문제 해결을, 그것도 급하거나 중대한 문제를 해결해주는 서비스라는 공통점이 있다. 의뢰인에게 어떤 문제가 발생한 뒤 자체적인 해결이 불가능한 상황에 전문성을 가지고 이를 해결해주는 서비스는 구매과 가격 결정의 주도권을 서비스 제공자가 가지게 된다.
사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개인적 만족감을 채우기 위한 것들을 제외한 모든 구매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그 문제가 개인의 삶에 끼치는 영향이 크거나 작을 뿐이다. 그렇다면 마케팅적인 관점에서 어떠한 제품이나 서비스일지라도, B2B나 D2C 여부와도 상관없이 소비자들이 겪는 문제를 명확하게 규명하고 이를 빠르고 정확하게 전문적으로 해결해줄 수 있다는 확신을 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
데이터와 데이터 플랫폼을 B2B 형태로 제공하는 우리 회사의 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데이터 테크 회사, 데이터 부문 유일한 유니콘 기업 등의 수식어가 브랜딩에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결국 영업은 우리 제품의 기능을 자랑하는 것이 아닌 고객들의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 기업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비즈니스의 당면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것이 우리 서비스에 대한 경쟁력과 가격을 결정해주는 핵심 요소다.
그래서 최근 컨설팅 조직을 더 강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3rd party data를 주로 다루는 컨설팅 조직은 이미 경쟁력이 갖춰져 있는 상태이기에, 1st party data를 직접 컨설팅하고 Growth Hacking을 통해 직접 기업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조직을 구성중이다.
분명 대부분의 기업들이 겪고 있지만 그것이 실제 문제인지,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는지 조차 명확하게 규명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디지털 전환의 과정에서 기업이 겪는 여러 이슈들을 정확하게 인지하게 하고, 이를 해결하겠다는 의사결정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문제 인식을 돕고, 문제가 더 커서 손댈 수 없는 상황에 이르기 전에 전문적인 컨설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함을 강조해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써놓고 보니 밥먹으면 소화가 되고 응가로 나온다는 이야기 같다. 하지만 이미 생각했던 것보다 10배가 넘는 비용지불 결정을 배관공의 말에 따라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설득당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비즈니스를 이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에 너무 당연하지만 정리해보고 싶었다.
1. 음식물분쇄기는 반환경적이며, 결국 언젠가는 배관 막힘으로 이어진다(아파트에서는 이로 인한 손배소가 많다고 한다).
2. 단순한 머리카락이나 불순물에 의한 막힘이 아닐 경우 생각보다 엄청난 비용이 든다. 검색되는 비용은 건 내가 할 수 있을만큼 정말 간단한 일인 경우다.
3. 흔히들 사용하는 배수관 용해제는 싱크대 혹은 세면대 S트랩에 머리카락 엉김 같은 데만 사용해야 한다. 하수도 막힘에 용해제를 사용할 경우 오히려 기름 때와 슬러지가 녹은 뒤 배수관 하단에 가라앉아 딱딱하게 굳어져 오히려 막힘을 가중시킨다.
4. 배관 전문가 조언에 따르면 설겆이를 하면서 하수구로 기름때가 남은 팬이나 그릇을 씻으면 결국 하수관에 기름 슬러지가 붙는다. 가능한 휴지로 닦아내고 설겆이를 하라고. 우리나라 식습관에 기름 사용이 생각보다 많음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5. 하수구 막힘 해결엔 생각보다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결국 조금씩 조금씩 몇년에 걸쳐 쌓이므로 어느 한순간 꽉 막히면 바로 고액의 청구서가 날라온다. 이것도 들은 조언인데. 일주일에 한 두번씩은(특히 기름떼 설겆이 후) 온수를 싱크대에 가득 채웠다가 한꺼번에 흘려보내는 작업을 해주면 하수구 내에 슬러지가 쌓이는 걸 조금은 줄일 수 있다고 한다.
6. 음쓰 스트레스 때문에 얼마전 분쇄기 고장수리하면서 큰맘먹고 구매한 음식물 미생물 처리기 Reencle 이 효자인 것 같다. 정말 신기하게 모든 음식물들을 갈색 가루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분해된 가루의 양도 투입된 양에비해 엄청나게 적다. 앞으로 주력멤버가 될 것 같다. 아내는 이녀석을 링클이라고 부르며 인격체처럼 대우해주고 있다. ㅋㅋ
7. 소중한 추석 연휴 중 하루는 배관 전문가를 불러 하수구를 뚫고 직접 음식물분쇄기를 분리 해체하고 다시 일반 싱크대 하수구 배관을 설치하는데 온전히 보내버렸다. YouTube로 음식물분쇄기 설치 영상을 보고 역순으로 분해하고, 블로그 검색을 통해 하수구 배관을 설치 하다보니 은퇴하고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더 생긴 느낌적인 느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