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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남우 Jul 24. 2022

후배 여직원과 출장에서 생긴 일 2/2

후배 여직원과의 출장 둘째 날. 호텔 피트니스에서 마주친 그녀의 뒷모습이 머릿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그녀를 데리고 회의실로 이동했다. 푸른 해운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회의실 통유리는 아침 햇볕을 그대로 나에게 쏟아내었다.


 햇볕이 무대 조명이라면 어떨까 싶었지만 임원들의 눈에는 무대조명이 아니라 저격총의 레이저 포인트로 생각하는 듯하다. 내년도 매출 성장률 전망이 올해에 훨씬  미칠 것이라는 그래프가 화면에 나타나자, 재무담당 이사를 시작으로 날카로운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침착하게 준비한 답변을 하나씩 풀어가기 시작했다. 비록 매출 성장률이 올해만큼은 아니지만 경쟁제품의 성장률보다는 높은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그들의 예민함을 누그러뜨리고자 했다. 하지만 그래프의 경쟁제품 성장률 숫자가 하필이면 햇볕에 반사되어 흐릿하게  보이지 않았다.  숫자가 우리 성장률하고 대비되는 것이  슬라이드의 포인트인데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갑자기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서 거두어져 그녀를 향했다. 창가를 마주한 그녀가  팔을 벌리자 눈부신 햇볕이 그녀의 하얀 블라우스를 통과하며 그녀의 허리 라인을 따라 은은하게 길들여졌다. 팔목의 진주  단추가 햇빛을 머금고 영롱하게 빛났고 실크 블라우스  그녀의 살결에 반사되었다. 그녀가 펼친  팔을 당겨 커튼을 닫을 때까지 모두는 숨죽이며  모습을 바라보았다. 십여  동안의 짧은 침묵이었다.


낮은 헛기침으로 그들의 시선을 모아 화면  또렷해진 숫자들을 가리켰다. 내가 준비한 숫자가 효과적이었던 것인지 아니면  짧은 침묵이   없는 힘을 발휘한 것인지, 그들의 눈빛은 온순 해졌고 회의실 가득한 긴장감은 바닥으로 차분히 가라앉았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감옥에 갇힌 주인공 앤디가 교도소 오디오로 음악을 틀었던 장면이 떠올랐다.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이 교도소 확성기를 통해 퍼지자 죄수들은  나간 표정으로  음악에 빠져든다. 교도관들이 앤디를 제압하고 음악을 끄는 1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교도소 안은 평화  자체였다.


햇볕에 드러난 그녀 몸의 곡선을 바라보던  짧은 시간, 회의실 안은 평화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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