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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연희 Jul 13. 2024

섹스의 피드백은 언제나 옳다

어젯밤은 어땠어?

갓 태어난 듯 수줍은 초여름의 바람이 낮동안의 후끈함을 식히려는지 투스칸 스타일의 따뜻함과 세련됨이 묻어나는 정원 여기저기를 터치하고 있었다. 정원의 한쪽 끝에는 투박하면서도 정제된 나무 패널을 기역자 모양으로 높이 쌓아 올린 플라워베드가 몽울진 라벤더를 향기와 함께 쏟아내고 있고 그 한가운데에는 태풍이 와도 끄떡하지 않을 만큼 튼튼한 가제보가 규모 있게 세워져 있었다. 무광의 까만 강철로 빚은 기둥과 나이테가 드러나는 원목 패널이 조화롭게 구성된 실링 아래에는 같은 톤의 철로 주조한 멋스러운 테이블과 의자가 무심한 듯 군데군데 놓여있었다.  


이곳은 수제 햄과 고급 와인을 파는 식료품 고메샵, 레니스가 단골 고객들을 위해 매장 뒤꼍에 조성한, 말하자면 쪽정원이었다. 너무 늦은 시간이 아니라면 금방 구입한 와인을 병째 들고 와 지인과 즐길 수도 있었고, 함께 구입할 수 있는 고급 치즈와 햄 등 와인에 곁들일 치즈 플래터 종류도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었다. 


와인을 즐기지 않는 은혁과 영채는 유기농 과일과 치즈를 구입하러 올 때면 꼭 이 정원에 들려서 커피를 마시곤 한다. 고메샵답게 근방 어떤 커피숍 보다 디카페인 종류가 다양해서 디카페인만 고집하는 영채에게 주옥같은 곳이었다. 지금도 영채는 강하게 로스팅한 디카페인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컵째 잔잔하게 흔들며 은혁의 끈적한 시선을 비껴내고 있었다. 다른 한 손은 그에게 꼭 붙잡혀 테이블 위에 저당 잡힌 채로.    


"그래서..."

 

아까부터 은혁은 어젯밤의 피드백을 달라며 집요하게 조르고 있었다. 대체 무슨 얘기를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결혼하고 정말 오랫동안은 이런 걸 물어 올 때마다 줄기차게 눈을 내리깔며 화제를 돌리기 일쑤였고, 남편이 좋았냐고 한참을 빙글거리다가 알아서 물어오면 마지못해 그랬다고 대답하는 것이 다였는데...

지난봄에 스페인여행을 다녀오고부터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은혁에게 잡힌 손 안이 축축해지기 시작한다.


"어땠어, 어제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 같기는 했는데..."

"응, 좋았어"

"지난번만큼 좋았어?"

"응?"

"왜 있잖아, 며칠 전에... 자기가 내 어깨 물고 그랬던 날..."

"아아..."


그때 얘기인가 보다. 은혁의 어깨에 이빨자국을 크게 만들어 놓은 날.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겠다. 키스를 자주 하긴 하지만 혀를 깊숙이 받아들이는 일은 드물었다. 집요하게 달려드는 그의 두툼한 혀는 아직까지도 어느 정도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 혀를 내 안에 자유롭게 놓아두면 뱀장어가 되어 나를 삼켜버릴 것만 같았달까. 그렇다고 나의 소극적인 반응에 굴해서 키스를 스킵하는 남자는 아니었다. 영채의 남편은. 하루에도 몇 번씩, 눈이 마주칠 때마다 키스하러 달려오는 사람이었으니까. 단지 치열 근처에서만 머물며 입술로 그 뜨거움을 받는 일이 전부였는데. 


그날 밤 문득, 방심한 순간 그의 빠알간 혀끝이 귀엽게 밀고 들어왔고 다급한 나는 이빨로 얼른 깨물어버렸다. 순간, 그의 페니스가 쉴 새 없이 박혀 들어오던 질 깊숙이부터 얼결에 반쯤 앙다문 입술까지를 한 큐에 관통하는 쾌감이 일었다. 번개처럼 짜릿해서 나도 모르게 질구를 움찔거렸다.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사람들이 정사의 흔적을 얘기할 때 키스마크나 이빨자국 또는 여자의 손톱자국을 예로 든다는 것이 어렴풋이 떠오르면서 이게 그중의 하나인가 보다 싶었다. 그전까지는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여자의 손톱 스크래치를 격렬한 정사의 증거로 암시할 때마다 섹스행위의 증거로 대충 갖다 붙이는 과장이라고 여겼었다. 좋으면 좋은 거지 왜 상대방의 몸에 상처를 내는가 싶었던 것이다. 어디까지나 정상적인 섹스의 범주 안에서는 말이다. 


뭐랄까. 즐거움의 영역이 조금 확장된 느낌? 내친김에 지치지도 않고 압박해 오는 남편의 어깨를 꽉 깨물어 보았다. 종 전에 깨문 혓바닥은 더 이상 들어오지 말라는 애교성이었다면,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나의 이빨을 꾹 눌러 박은 것이다. 여전히 가벼운 쾌감이 온몸을 싸고돈다. 남편은 살짝 놀래는 눈치였지만 변태 아니냐고 농을 하며 웃어넘겼다. 너무 아프게만 하지 말라며. 자꾸 깨물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나를 피하는 남편을 붙잡느라 단조로운 체위도 재밌어졌던 것 같다. 남편은 내가 자꾸 왜 깨물려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다만 내가 즐거워한다면 어느 정도까지는 희생하겠다는 마음인 것 같았다.  


"응, 비슷했어."


영채는 얼른 축축해진 손을 남편의 손아귀에서 쓰윽 빼어 스커트 위에 편하게 올려놓았다. 싫다는 듯이 은혁이 아잉거렸지만 땀난 단 말이야 하며 일축했다. 어차피 조금 있으면 다시 달라고 보채겠지만 나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내 몸이 편한 자세를 누려야만 하므로 하는 수 없다. 갑자기 기둥마다 운치 있게 드리운 가제보의 알전구에 불이 반짝 들어오며 작은 정원의 향취가 물씬 깊어졌다. 영채가 가장 좋아하는 이 정원의 한 때.


"당신이 위에서 하는 건 너무 오래 안 했으면 좋겠어... 나쁜 건 아니지만 적당히 하고 다른 체위로 넘어가면 어때? 자기는 위에서 하는 게 그렇게 좋아?"

"난 좋은데 흐읏... 근데 자기가 그렇다면 그것도 좋아"


영채는 좋아 죽겠다는 은혁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다가 내일쯤이면 꽃잎이 터질 것 같은 라벤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스페인의 정원에서도 많이 보던 보랏빛 라벤더. 그곳에서 아침마다 마시던 커피의 향이 코끝에서 떠올랐다. 처음으로 아이들 없이 간 장거리 여행이었다. 작년 가을에 둘째 아들도 대학을 졸업하고 다른 도시에서 직장을 잡아 살기 시작한 이후로는 은혁과 영채의 집은 흔히들 말하는 빈둥지가 되었다. 그렇지만 둘 다 타주에서 대학을 다녔던지라 집이 갑자기 비었다는 느낌은 그다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여행은 여느 때와 많이 달랐다. 


예약부터 비행 끝에 목적지에 도착해서 호텔에 짐을 풀기까지 너무 간편해진 과정에 둘 다 계속해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여행이 이렇게 쉽고 간편한 거였다고? 그동안 가족이 함께 비행기 여행을 할 때마다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아이들한테 오롯이 부어졌었는지를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물론 몸과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 행복의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그 아이들과 보냈던 시간은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그렇지만 몸이 편하고 정신이 혼잡하지 않으니 우리가 서로에게 더 집중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아이처럼 가끔씩 졸라대는 남편의 섹스 피드백 요구를 오랫동안 꺼려왔던 이유 중에는 그런 걸 얘기하자니 겸연쩍은 것도 있었고, 별 불만이 없었던 것도 있었지만 가장 크게는 은혁의 넘치는 정욕을 더 부채질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성생활에 관한 한 결혼 생활 내내 나의 목표는 남편을 즐겁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거였고, 그것은 남편도 익히 잘 알고 있는 내 공식 입장이었다. 다만 머리에 든 것 중에 99프로가 섹스인 은혁을 문화인의 바운더리 안에서 서로 만족하면서 살려면 적당한 수위 조절이 동반되어야 했다. 피드백을 나누다 보면 개선한답시고 집중적인 대화와 액션플랜이 이어질 것이 뻔한데 지금보다 더 시달릴 것이 불 보듯 했다. 내 머릿속은 그와 달리 섹스 말고도 다른 것들이 많이 들어 있단 말이다. 


그랬던 내가 스페인에서 무슨 바람이 어떻게 불었는지, 어느 날 밤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해산물 요리를 먹으면서 조금씩 피드백을 풀어냈던 것이다. 피드백이라는 것이 항상 참 잘했어요, 궁디팡팡으로 돌아오기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원래도 신랄하기로는 둘째가 일 수 없는 내가 딱히 좋은 소리만 늘어놓은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혁은 함지박만 한 웃음을 지으면서 세상 신중하고 진지한 태도로 얄미운 동생 떡 주는 누나처럼 툭툭 던지는 내 말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받아들였다. 


"자기야, 허그~"


은혁은 둘이 있을 때면 시도 때도 없이 이렇게 허그 호출을 한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 거라는 얘기를 무슨 세탁기 사용설명서처럼 보태면서. 앉아 있는 의자가 팔걸이까지 있어 서로의 거리가 만만치 않게 멀었지만 엉덩이를 살짝 들고 양팔을 감아 남편의 몸을 살짝 안는 척하면서 입술을 마주 댔다. 말은 허그라고 하지만 실상은 키스하자는 뜻이기 때문에 입술을 맞대지 않으면 절대 몸을 놔주지 않는다. 분명히 처음에는 허그만 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뽀뽀는 기본이고 이제는 딥키스를 꼭 하려고 들어서 가끔씩은 곤란하다. 그나마 나란히 앉거나 기역자로 앉아 있을 때는 많이 귀찮지 않은데 차 안에 있을 때도 십분 간격으로 허그하자고 할 때면 나도 모르게 짜증이 몰려올 때도 있다.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영채의 앞머리를 시원하게 훑고 지나간다. 고개를 들어 눈웃음치는 은혁의 표정을 보니 곧 무슨 얘기를 할지 알 것만 같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예쁘냐고 하거나 남들이 보면 이십 대라고 해도 믿겠다고 할 것이다. 그도 아니면 요새 들어 피부에 광이 난다고 할지도. 분명한 것은 섹스의 피드백을 주고받는 우리를 남편은 너무나 흡족해한다는 것, 그리고 나 역시 예전보다는 섹스에 마음을 조금 더 내어 주기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몸으로 하는 일이다 보니 둘 다 삼사십 대의 원기왕성한 능력을 발휘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나의 섹스는 그에게 더 다가가고 있다. 피드백을 내어 놓음은 어쩌면 그 첫걸음인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날아들어 철제 난간 위를 밟고 빨간 부리를 쫑긋거리는 노던카디널에게 정신을 팔고 있는 내 팔을 급히 잡은 은혁이 눈동자를 빛내며 내 시선을 집요하게 돌려 온다. 그리고 너무나 궁금하다는 듯이 말했다.  


"근데 자기 요새 왜 이렇게 예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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