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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티 Nov 15. 2024

가족이란 그늘 아래

백은서



가족이란 참 묘하다. 어떤 때는 그 이름만으로도, 그 존재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것 같다가도, 또 어떤 때는 그들의 말 한마디, 그들의 행동 하나가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더 큰 아픔을 느끼는 순간이 있는 거다. 가족이란 그렇다. 가까워서 더 아프고, 너무 얽혀 있어서 놓기가 어렵다. 그만큼 더 많이 원하고, 그만큼 더 많이 실망하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가족 간의 갈등 속에서는 늘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말. 가끔은 자기 자신을 먼저 안아주고, 그 속에 숨겨진 아픔을 꺼내어 말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다른 사람의 마음도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다 알고 있지 않나?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그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 다른 사람에게 그 아픔을 되돌려주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걸. 가족 안에서도 그렇다.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부족함도 보이지 않는다. 가족을 이해한다는 건, 나를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부모님은 나를 길러주고, 나는 그들을 사랑한다 믿지만, 우리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을 거다. 서로가 쌓아온 시간을 이해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감정만을 추궁하는 순간이 너무 많았을거다. 엄마가, 아빠가, 형제가, 때로는 친구처럼 다가오지 못할 때, 우리는 자꾸만 그들 속에서 기대하던 답을 찾으려 한다. 그런데 그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족은 완벽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말 이해해야 할 건, 그들이 저마다의 상처와 아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을 이해하고, 그 사람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 그게 진정한 가족의 의미가 아닐까. 때로는 말없이 옆에 있어주는 것, 서로의 눈빛을 읽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주는 것이다.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기 때문에 함께할 수 있는 것.


가족은 상처를 덮어주는 존재라 말하지만, 그 상처를 마주할 수 있게 해주는 존재.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서로의 아픔을 인정하고, 그것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마음속에서 길고 깊은 갈등이 생길 때, 그저 기다려주는 것이 가장 큰 이해일 수 있다. 기다려주는 것, 그것이 가족을 이해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서로의 거리가 너무 멀어져도, 그 끝에서 다시 손을 잡을 수 있게 해주는 것. 그게 우리가 가족이라 불리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가족은 우리의 실수와 상처를 그대로 품어줄 수 있는 사람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이 기대하고, 더 많이 실망하는 존재일 수 있지만, 결국에는 그들이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편한하다. 다소 지친 마음으로 돌아갈 곳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가족은 그렇게 늘 돌아오는 곳이 되어줄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것만이 결국 가족의 의미를 온전히 채울 수 있다는 사실. 우리는 그리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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