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플루엔자 문제> 조가람
제목 : 입김 서린 투명 가림막
지금도 떠들썩하며 우리나라를 휩쓸었던 전염병, 바로 코로나 바이러스. 이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혁명이 찾아오면서 우리나라의 문화와 생활패턴은 한순간에 바뀌었다. 원래 같으면 사람들로 붐벼야 할 시내는 고요가 찾아왔고, 한창 친구들과 친해지면서 뛰어놀아야할 4학년 친구들에게는 줌 이라는 부술래야 부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겼다. 그리고 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는 마스크 착용을 해야만 했고, 마스크 착용 없이는 아무데도 갈 수 없는 상황까지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우리는 사람을 마주보고 대화하는 구술문화가 희미해지기 시작했으며, 점점 고립되는 사회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급격한 변화로 현대 인류에게는 마르크스의 인간소외 라는 자신을 쓸모없게 느끼는 인간소외가 찾아왔다. 이 마르크스의 인간소외의 근본적 이유는 바로 기계이다. 코로나로 인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되자 배달의 민족과 요기요 같은 음식 주문 서비스들은 더욱 발전하게 되었고, 겨우겨우 음식점에 찾아갔을 때에는 사장님의 얼굴을 보고 주문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지문이 가득한 일회용 비닐로 덮여진 키오스크가 대신하게 되었다. 또한, 노래방을 가지 않고도 화상통화로 친구들과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캐치앱, 이미 10대들의 일상생활의 일부가 된 인스타그램까지 사람과 사람사이에 벽을 형성하는 기계들과 디지털들은 미친듯이 발전하기 시작했고, 음식점과 다양한 가게들은 기계들로 대체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어, 가게를 무인으로 바꾸거나 더이상 사장인 자신이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되어 아까 언급했던 마르크스의 인간소외에 시달리다가 결국 고독사를 맞이하는 외길을 걷게 되었다.
이러한 소통의 부재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기계와 디지털 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뉴스와 유튜브와 같은 영상 미디어를 시청할때 쓰이는 카메라도 그저 사람들에게 보는 것이 사실이다 라는 착각을 심어주는 수단이 되었고,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이 모든 미디어들이 “ 원래 저런거구나! ” 라는 진짜 같은 가짜인 “ 시뮬라시옹 ” 을 심어주었다. 이렇듯이 커메라까지도 우리의 소통의 부재를 불러일으키는 한 요인이 되어버린 지금, 우리는 시뮬라시옹이 대부분인 사실을 믿고 살아가는 사회에서 고립되어 가고 있다.
- 그렇게 사람들은 서로 분리된 채로 각자의 가족들과 아파트 안에서만 지내게 되었어. 만일에 대비해서 말이야. 사람들이 서로 분리돼 있었기 때문에 인플루엔자 D는 더 이상 퍼질 수 없었어. “바깥은요?” “그에 관한 데이터는 없어.
…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클레오.. 건물은..“ ”바로 그거요!“ 클레오가 주장했다. ”우리는 전부 여기 갇혀서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은 문제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고만 하고 있다고요. 그러느라 정작 닥칠 수 있는 진짜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게 되면요? 막을 방법이 없을 거예요. 정말로 나쁜 일이 생겨도 서로에게 다가갈 방법이 없을 거라고요!“ Burt, Jake [인플루엔자 D와 빅 블랙 큐브] 中 -
이들에게 닥칠 진정한 문제는 바로 고립된 자신들에게 들이닥칠 문제. 바로 가짜를 진짜라고 믿는 시뮬라시옹의 문제이다. 소통이 부재된 이들의 세계와 지금의 세계는 밖의 세상과 안의 세상으로 나뉘어져 있다. 밖과 안이라는 뚜렷한 경계선이 생겨버린 우리들은 밖의 세상은 전염병자들이 돌아다니고 있어, 안의 세상은 전염병자들이 모여있는 자들이야 와 같은 소통부재로 인한 가짜 사실을 믿고 있다. 단지 그들에게 감염된 자들은 외출을 자제해주세요 라는 사실과 감염된 증상이 있다면 병원으로 향해주세요 라는 사실의 충돌로 생겨난 오해가 그들에게는 이러한 인식이 되어버려 우리의 소통은 더욱 끊기고 있다. 서로가 서로의 상황이 어떤지도 모른채. 그저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머무르라 와 병원으로 향하라 라는 두 지시적 사실의 충돌로 인해.
밖이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지도 않고 안이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도 않으니, 내 옆집 이가 죽어도 아무도 모른다.이러한 사람들 사이의 무관심으로 변질된 투명한 벽 너머에서 우리는 투명한 가림막 임에도 불구하고 내 옆집이 죽었는지도 모른다. 입김이 서려졌다는 어이없고도 말이 되지 않은 핑계 때문에. 쓸쓸히 고독사를 맞이하는 이들의 수는 점점 많아져가지만 아무도 고독사로 쌓여진 시체들을 알아채지 못한다. 자신들에게 고독사가 찾아왔을때 남들을 욕할거면서 옆집 이가 죽었을때 왜 아무짓도 안했냐 라고 따진다면 밖에는 바이러스들로 가득차있는데 어떻게 나가냐며 적반하장을 하지만,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그들 손에 주어진 무언가를 사고 남은 거스름돈. 고독사를 방지하기 위한 해결방안은 우리 사이에 놓여진 디지털과 기계라는 편리함의 이름 뒤에 숨은 거추장한 벽을 깨고 소통의 힘이 필요하다.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걱정을 해주는 것. 물병을 두개를 샀을때, 옆집에 들려 물병 하나를 내어주고는 몸관리 잘하라는 당부의 메세지. 문자로 주고받는 생존여부의 확인이 아닌 얼굴을 마주보고 살이 빠졌네 라며 음식 하나 쥐어주는 따뜻한 마음. 소통으로 연결되는 공감과 걱정과 관심이라는 인간의 문화의 개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