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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보정

by 제이티

류호림


나는 꽤 통제된 환경에서 자라온지라, 남들이 당연히 경험해봤던 것들을 경험해보지 못한 경우가 많다. 어릴 때는 그 맛있다는 지렁이젤리도 못 먹어봤었고, 내 친구 모두가 본다는 장난감 소개 유튜브 채널, ebs에 항상 방송하고 있었던 애니메이션을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항상 통제되며 살아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 통제가 당연하게 느껴졌고, 불편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통제받는 것이 내 삶이 되어버렸지만, 유치원이라던가, 초등학교 등 점점 더 큰 사회로 진입하며 나는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껴왔었다. 어린 나이 때부터 나는 사교적이고 수다떠는 것을 좋아하는 그런 밝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하는 그런 아이였는데, 남들이 하나같이 즐겁게 하는 얘기를 나만 못 알아들으니 잘 낄 수도 없고, 많이 속상해하고 그랬던 것이 새록새록 기억이 난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내게 무엇보다도 가장 속상했던 것은 부모님의 지나친 통제가 아니라, 변해져가는 내 친구들이었다. 중학생 현재의 나로 따지면 바로 sns로 예시를 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예전처럼 친구들이랑 함께하는 것이 그리 재미있지가 않다. 이는 내가 인스타를 안하는 입장이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아이들의 수다 속엔 온통 자신의 인맥과시, 자신의 자랑밖에 들리지 않으며 남의 시선을 너무 과도히 인식하는 그들과 나누는 대화가 가끔은 역겹기까지 할 정도다. 모두가 기괴한 가식덩어리가 되어버린 기분이고 점점 아파지는 느낌이 들었다. 예를 들어 이런 거다. 평소에 꾸미지 않던 친구가 sns를 하고 나서 앞머리도 자르고, 점점 자기 자신을 꾸미기 시작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친구가 점점 예뻐지는 것을 보며 좀 신기하기도 하고, 날 잘 꾸밀 줄 안다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라고 생각해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친구는 충분히 예쁜데도 남들에게 못생겼다는 소리를 장난식이라도 들으면 너무 불안해했으며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둘러보는 그 친구가 점점 멀게만 느껴졌다. 예전의 내 친구가 그렇게 변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다들 인생네컷만 찍으면 그 인생네컷을 또다시 카메라로 찍은 후 턱도 깎고, 코도 얇게, 눈도 크게 하며 보정을 한 후 인스타에 올린다. 그저 다들 너무 보여주기식 인간이 되어버린 느낌이라, 그들과 함께하는 나도 지치고 내 친구들을 앗아간 sns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예전에는 자신이 범접할 수 없는 선의 연예인들만을 텔레비전 등으로 보기만 하였지만 이제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11년생 #중학생 등 나와 같은 또래의, 나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가 자신들의 가장 행복하고 예쁜 순간을 누구에게나 손쉽게 접근하도록 하니 우리의 평균은 높아지기만 하고, 남들과 나를 비교하며 나는 너무 못났다는 생각에 우리는 흔하게 불안에 빠지며, 불행 속으로 빠지곤 한다. sns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보다도 좋은 삶, 행복한 삶의 기준을 만들어버린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게시물이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았고, 우리는 그 게시물의 삶을 따라하며 모두가 인정하는 삶이 행복한 삶이 되어버렸다. 사실은 꼭 그것만이 아닐 수는 있는데도 말이다. 알고리즘도 계속해서 비슷한 내용만을 노출시키니, 우리는 자연스럽게 sns가 알려주는 행복한 삶의 기준에 맞춰질 수 밖에 없고, 요리 조리 sns가 원하는 대로 나를 조각하다보니 그 모양은 처음보다도 앙상하고, 초라해지고 말았다.

언젠가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그 까마득한 기억 속 친구들이 많이 그립다. 그 친구들과 서로의 진짜 본모습을 드러내며 놀았던 그때가 그립고 너희들을 sns라는 악마가 망쳐놓았다는 것을 바라보는 나만 안다는 사실이 속상하고 여전히 변하지 않는 친구들에 나도 가끔은 흔들리곤 한다. sns는, 보여주기식 삶은 우리의 화목하고 행복했던 삶을 휘저어놓고, 멋대로 보정해버리면서 우리는 불안해졌다. 나에게 sns는 원망스러우면서도, 미친 듯이 궁금하면서도, 범접하면 안될 것 같은 금단의 사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나는 앞으로도 sns를 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나를 사랑하는 내가 sns를 통해 나 자신을 미워하게 될까 두렵고, 내 친구들처럼 나도 변해버릴까 무섭기 때문이다. 거의 허탈 상태라고 해야 할까, 우리의 청춘이 가식적인 웃음과 검은 뒷담화로 덕지덕지 덮여가는 것이 그저 많이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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