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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워서 울었다

by 제이티

백은서





오늘 수업을 들으며 눈가에 물이 맺혔다. 정확히 어디서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어느 순간 마음 깊은 곳을 툭 건드리는 말들이 있었고, 그 말들이 내 안에 켜켜이 쌓여 있던 감정들을 무너뜨렸다. 과장을 조금 보태 말하자면, 정탄 선생님 덕분에 내 인생의 방향이 완전히 뒤집혔다. 어쩌면 처음으로 내 인생이라는 게 제대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저 그런 애였다. 열정도 없고, 목적도 없고, 게으르고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는 소녀. 공부에 대한 열정이 없는게 아니라 그냥 머릿속엔 공부가 없었다. 계획 같은 건 세워본 적도 없었고, 꿈은 그냥 말할 때 쓰는 말이지 진짜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친구들과 놀고, 자고, 다시 놀고. 그게 내 일상이었고, 특별할 것 없는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난 그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내가 살던 동네, 내가 다니던 학교, 내 주변의 친구들. 다 똑같았다. 우리는 꿈이 없었다. 욕심이 없었다. 인생에 기대하는 게 없었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수업 시간은 그냥 버티는 시간, 선생님의 목소리는 배경음. 어떤 날은 학교에 가기 싫어서 다리가 아프다는 핑계를 댔고, 어떤 날은 학원이 귀찮다는 이유로 감기 기운을 과장했다. 그리고 그런 날에도 우리는 친구들과 만나 신나게 놀았다. 우리는 노는 애들이었고, 그 말에 조금의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았다. 그게 우리 세계의 당연한 공기였다.


그러다 정말 우연히 정탄 선생님의 수업을 듣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그냥 색다르다는 이유로 집중이 됐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수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내 귀에, 내 머리에, 내 가슴에 남았다. 그 중에서도 선생님이 아무렇지 않게 던지신 한 마디가 있었다. "나 지금 몸 안 좋은데도 일하고 있어. 일은 해야지." 그 말에 나는 이상하게 숨이 막혔다. 아프면 쉬는 게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던 나였다. 그런데 선생님은 아픈 몸을 이끌고도 당연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 계셨다. 그 모습이 너무 묵직하게 다가왔다. 멋있어서가 아니라, 부끄러워서 울컥했다. 나는 내가 인생이 처음으로 창피해졌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라, 나 자신이 나를 마주할 수 없었다. 나는 너무 쉽게 피하고, 너무 쉽게 포기하고, 너무 쉽게 흘려보냈다. 나중에 하면 되겠지, 지금은 그냥 쉬고 싶어. 그런 말들이 쌓여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는데, 그건 아무것도 아닌 모습이었다. 선생님의 한 마디가 내게 이렇게 큰 파문을 일으킬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건 확실한 변화의 시작이었다.


지금 나는 달라지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달라지기 위해 매일 발버둥 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목동이라는 불덩이 속에 밀어넣었다. 서울에서도 가장 치열하다고 불리는 이곳, 모든 게 전쟁처럼 돌아가는 이곳에서 나는 혼자 무기 하나 없이 싸우고 있다. 공부는 단지 공부가 아니라 생존이고, 매 순간 비교당하고 시험당한다. 그런데도 나는 이 불안하고 뜨거운 불덩이 속에서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도망치고 싶지 않아졌다. 여기서 살아남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더 강해졌다. 예전처럼 하루하루를 대충 넘기고 싶지 않다. 내일이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게 이제는 무섭다. 과거에는 그저 오늘만 편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당장의 즐거움, 잠깐의 안락함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매일이 쌓여 결국 인생이 된다는 걸, 지금 나는 조금씩 깨닫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완벽하게 바뀌었다는 건 아니다. 여전히 나태한 마음이 올라온다. 예전처럼 도망치고 싶을 때도 많다. 이쯤에서 그만둘까? 라는 생각이 아주 가끔은 아니라 자주 고개를 든다. 그럴 때 나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오늘을 살 것인가, 미래를 살 것인가.


그때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들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지고, 동시에 무거워진다. 나는 그들의 따뜻함과 강인함을 존경한다. 그리고 그 감정을 닮고 싶다. 아직 그들처럼 되지 못했지만, 흉내 내면서라도 나아가고 싶다. 그래서 책을 펴고, 책을 열고, 다시 한 번 더 적어본다. 어제보다 오늘을 조금 더 잘 살아보려고, 흔들리는 발걸음을 억지로 앞으로 디딘다. 지금을 위한 삶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삶을 살고 싶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불안하고, 힘들고, 외롭더라도 언젠가 잘 버텼다는 말을 나 스스로에게 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매 순간 편안함을 택하는 대신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고통을 견디는 길을 선택하고 있다. 그것이 내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단단하고도 진실한 약속이다. 언젠가 누군가가 나를 보고 용기를 낼 수 있기를 바란다. 나도 누군가를 닮고 싶었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닮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 마음 하나로, 나는 오늘도 다시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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