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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요구

by 제이티

<올인원 글쓰기>

백지원

- 시의 요구


이제 또래들과 만났을 때 하는 이야기가 오직 ‘커서 뭐 해먹고 살지‘ 라는 게 뼈저리게 느껴진다. 오늘도 가볍게 던진 꿈의 키워드로 친구들과 진지한 대화를 해버렸다. 아이들의 꿈이 다 똑같다거나, 다들 꿈이 없어 남들을 따라하는 것 같다거나 하는 이야기 말이다. 심지어는 서로 꿈을 이야기하며 이 꿈이 현실세계에서 얼마나 많이 대우를 받고 얼마나 많은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는지 까지 논의한다. 나는 여전히 이 주제로 이야기하는 모습들이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낀다. 나는 아직 내 미래를 정할 만큼 성숙해지지 않은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는 것 자체에서 말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것은 나의 감각일 뿐이 아니라 정말 이른 것일지도 모른다. 현재는,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고용조차하지 않는 그런 단호한 시스템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점점 어린 나이에 직업을 정하기를 요구하는 분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영향 탓인지는 몰라도, 나는 남들 앞에서 내 꿈을 이야기 하고 싶다가도 무언가의 압박과 불길한 느낌 때문에 이야기하고 싶어지지 않는다. 이제 직업을 묻는 모든 수행평가에는 작가라는 것이 자리잡았고, 사람들 앞에서도 외국까지 퍼져나갈 작가가 되고 싶다며 내 진로 방향을 설명한다. 그렇게 아무도 명확한 진로를 가지고 있지 않은 상황 속에서 구체적이게 설명하는 나는 모두의 환호를 받는다. 허나, 알아두어야 할 점이 있다면, 내 원래 꿈은 작가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글을 쓰는 것도 그닥 좋아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잘 튀지 않는 직업인데다가, 안정적이지 못한 직업이라는 점에서 매우 큰 갈등을 겪었다. 만약 나에게 조금의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모두의 시선을 받을 수도 있었던 연예계에 발을 들이려 시도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연예인을 관심받기 쉬운 직업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니며, 그저 직업 특성상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만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내가 말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점점 우리들의 일자리의 입구는 점점 좁아져만 가고, 선택의 시간은 더 짧아져만 간다는 뜻이다.


정말 요즘 사회 시장이 안 좋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는 듯한 나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인들이 대거로 우리나라에 출국하여 인신매매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수원외고 중국어과 지망생인 나는 어떤 심정일지 다들 생각해 보셨을지 싶다. 갑자기 꿈을 정하게 되면서 생기는 문제점이 바로 이것이다. 갑자기 닥쳐오는 위기와 갈등에 어떻게 대처할지 갈피도 잡지 못한 체 그저 엉뚱하게 그 자리만을 고집한다. 다른 곳으로 떠나더라도 내가 제시간에 평생 꿈을 찾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이 가득 차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너무나 다급하고, 점점 더 생각할 시간을 좁혀오는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젊은이들을 사회에서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고용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또 진심으로 그 꿈을 꾸던 아이들만 뽑으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정말 모든 종류의 사람들, 예를 들면 그 꿈을 진정으로 가지고 있지는 않은데 많은 투자를 받고 있는 사람이라던가, 관심도가 애매한 사람이라던가, 진정으로 그 꿈을 이루고 싶어하는 사람들 등등을 전부 섞어모아 한 통로에 집어넣은 후에, 마지막 입구 쪽만 아주 얇게 파놓는다. 공부하며 태운 칼로리로 그들을 평가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정말 당황스럽기만 한 이 상황은, 진정으로 꿈을 이루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정작 그 통로를 통과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발생시킨다. 실력도 없고 진정성도 없는 직원들이 점점 물을 흐리다보니 더 고용을 줄이고, 그렇게 우리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고, 경쟁심과 질투와 시기와 오만과 비난과 기만만으로 가득 채워졌다.


나는 이러한 점에서 오히려 노인들의 필요성이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는, 원하고 노력하면 그 진로를 얻을 수 있었던 시대였을 것이다. 물론 그 통로도 현재와 비스무리한 크기의 구멍으로 파여있었겠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사회는 심각한 비리가 없었고, 노력하면 웬만한 것들은 전부 가능했다고 보아도 된다. 왜냐하면 그들의 시대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 ai가 없는 시대에 살았고, 막대한 재산과 가난의 격차가 땅과 하늘로 벌려져있기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내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당시에는 시간의 강요가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른 이들의 꿈을 따라가거나, 사회에서 원하는 직업에 맞추지 않았다.

현실에서는 평범한 회사원조차 되기 힘들정도로 많은 인력이 불필요해졌고, 점점 더 많은 일자리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옛날에는 마을의 한 아이가 좋은대학교에 가면 잔치를 열듯 축하해주었다면, 문턱이 너무나도 높아진 현재는 모두가 진심으로 축하해주지 못하고 전부 뒤에서는 그 사건 속에서 나름의 욕할 이유를 찾아 자신을 정당화하기 바쁘다.

2025년의 노인과 젊은이의 문화격차가 굉장히 벌어져 있는 것은, 오히려 우리가 그 옛 시절, 즉 정이 많고 서로 축하해주던 그 모습들을 배울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뜻과 비슷하다. 현재는 노인이 아니더라도, 이미 자신과 비슷한 나이대와 심한 경쟁과 싸움을 벌이고 있다. 만약 이러한 환경 속에서 영화 ‘인턴’ 에서 나온 더러운 책상과, 끌기 힘든 리어카 등등의 문제를 해결해줄 사람이 나타날 수 있을까? 오히려 힘들어 끙끙앓는 그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기뻐할 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러한 차가운 사회 속에서 오히려 영화 인턴에서의 벤처럼, 노인들에게 많은 것을 배워야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의 일자리를 부여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에서는 경력을 쌓을 시간도 없는 20대에게 경력을 요구하고, 서투름에 실수하는 사람들을 보며 이것도 못하냐며 구박한다. 처음인 그들에게 가르쳐 줄 사람 하나 없다면, 우리들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배우는가. 영화 인턴에서의 젊은 여성 ceo이던 줄스가 큰 성공을 이뤘음에도 더 성장할 수 없다는 평가를 받은 이유에는, 물론 그 어린 나이에 쌓은 성과가 너무 커서 더이상 성장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또 내 방식대로 해석하자면, 그녀는 너무나 부족한 경험을 밑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저 결과가 크다는 이유만이 아닌, 젊은 사람의 한계를 토대로 그녀를 평가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참을 줄 알고, 눈치볼 줄 알며, 도와줄 줄 아는 사람이 진정으로 우리 삶에 필요한 사람이고, 그 사람이 바로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었던,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더 열심히 하던 2025년의 노인들이지는 않을까 싶었다. 우리들이 지금 그들에게 이 지혜를 배워야, 우리들도 우리가 노인이 되었을 때 다시금 쉽게 직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많은 학생들이 고교학점제의 5등급제에 큰 좌절감을 겪어 자퇴를 결심하는 상황. 이 상황 속에서 만들어진 소극적 수동적 성격을 고치기 위해 나는 노인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친 삶의 끝에 우리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는 뜨뜻한 할머니의 많은 것들이 담긴 손길이 바로 나에게 있어 노인들의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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