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달과 함께 떠나고 싶은 순간-

by 제이티

박재영




평범한 중산층이자 은행원이었던 찰스 스트릭랜드는 평소 주변사람에게 무심하고 말이 없는 재미없고 무뚝뚝한 사내로 여겨졌다. 그의 아내는 교양있지만 속물적인 구석이 있는 여자로 나타난다. 작중 ‘나’ 조차도 처음엔 그를 특별할 것 없는 전형적인 중년이라고 평가했고, 아내 조차 그를 예술 따위엔 관심 없는 교양없는 인간이라 평한다. 찰스 스트릭랜드는 전형적인 남자들처럼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서 파리로 훌쩍 떠나버린게 아니었다. 그는 그저 예술이 하고 싶다며, 돈도 통장이고 은행원 일을 하면서 모은 모든 재산을 놔두고 혈혈단신으로 파리로 떠난다. 그리고 그는 그를 도왔던 착한 네덜란드 인의 아내를 빼앗고 결국 더크와 그 아내 모두에게 상처만 준 채 또다시 파리를 떠, 타히티로 향한다. 그리고 그는 타히티에서 그의 마지막 남은 모든 삶의 기운을 쥐어짜내 명작들 탄생시키고 숨을 거둔다. 찰스 스트릭랜드는 왜 안정적인 삶을 포기하고 자기 혼자서 모두에게 상처를 주는 외로운 삶을 선택한 것일까? 나는 그 이유가 그가 어릴 적 애매한 재능을 태우지 못한채 가슴에 담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재능은 신의 축복이다. 하지만 애매한 재능은 신의 저주로 돌변한다. 내 친구는 복싱을 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잘한다. 아마추어 대회에서 동메달까지 딴 친구인데, 얘는 맨날 자기가 세계 최고의 복서가 될거라고 말한다. 자기는 무함마드 알리처럼 마이클 타이슨처럼 센 펀치보단 날랜 스탭으로 다 씹어먹을 것이라고 말한다. 얼마전 이 친구가 울상이 되어서 왔다. 준프로와 아마추어는 괴리가 크다고 말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준프로와 스파링을 떴는데 뼈도 못추리고 얻어 맏다가 다운 됬다고 한다. 얘는 내가 봤을 때 분명 재능이 있다. 학교에서 재미로 한번 같이 싸워봤는데 주먹이 진짜 빠르다 그리고 그래플링을 하거나 엎으려고 해도 애가 원래 빠르다 보니까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졌다. 내가 주짓수나 유도를 배운 건 아니지만 그걸 하는 친구에게 들은 기술은 많은데, 얘는 그걸 다 뚫어버렸다. 분명 재능은 있는 친구다. 하지만 포기하고 공부를 하는게 맞을까? 내 친구 뿐 아니라 이런 애들은 전국에 수두룩하다. 애매한 재능은 저주라고 한다. 포기하자기엔 잘하는거 같고, 매진하자기엔 부족한 것 같은 상황에서 사람들은 괴로워한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자신감과 자존감 모두 잃게 된다. 현실과 처지 모두 공부를 강요한다. 하지만 내 이상은 저기에 가있으니 우리는 그 사이에서 무너지기 마련이다.


교육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 인간을 사람답게 만들기 위해서다. 하지만 대한민국 교육이 인간을 사람답게 만들고 있는가? 오히려 사람을 인간 이하로 만들고 있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한 과정이라는 이유로 애매한 재능은 모두 묵살당한체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강제로 목을 꺾어버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또 엄청난 돈을 들이붇는다. 돈이 들어가면 교화가 되고 좋은 교육이 될 것이라는 허상을 믿으며 말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교육은 돈과 거리가 멀다. 하지만 대체로 교육은 돈과 가깝다. 내 인생에서 살아가면서 가장 큰 깨달음을 얻은 것은 수학여행 때 몰래 발코니로 넘어가 친구들과 모인 숙소에서 나눈 철학적 대화, 그리고 운동장이었다. 넓게 봐라. 등가교환. 인생을 사는 이유. 이걸 모두 토론으로, 책으로 나는 이 수업에서 들어봤고 이야기를 나눠봤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나눴던 대화처럼 삶이 정리대는 대화는 나눠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이게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왜 대각선의 비를 알아야 하고 작은 삼각형과 큰 삼각형이 비율이 맞고 각이 같다는 이유로 닮음이라고 정의해야하며, 일이 일어났으면 그냥 신의 뜻에 따라 일어난 것이지 왜 경우의 수를 통해서 확률을 구해야하는가? 나는 이런 내용을 돈 주고 샀다. 그렇지만 내가 진짜로 배웠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냥 친구들과 나눈 4시간 동안 나눈 대화였다. 공을 차는 순간들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낭만적이고 이상적이지 않다. 그런 것들은 순전히 '시간 낭비'다.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위험한 짓에 해당하며, 공부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이다. 아빠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더니, 구구절절 신세한탄을 하면서 늘어놓는 내 친구들과는 다르게 그냥 태어났으니 사는거지 별 일 있냐고 공부나 하라고 대답하셨다. 결국 공부와 돈은 가장 멀리 있는 것 아닐까? 돈이 있어야 공부를 한다고 하지만 결국 돈은 진짜 의미에서의 공부를 모두 지우고 있었다. 스쿨 오브 락에서 아이들은 그 배운 역사와 라틴어, 수학과 물리보다 듀이와 함께 음악을 한 시간을 더욱 소중히 여길 것이다. 그렇지만 돈은 듀이를 체포하려하고 듀이를 끌어내리려고한다. 이것이 이상과 현실의 괴리다. 어쩌면 돈은, 교육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멀리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니, 가장 먼 것이라고 생각한다. 돈은 정보를 사오는 것이지만, 진짜 교육은 경험에서 나오니 말이다. 경험만이 애매한 재능을 죽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하지만 실패를 맛보지도 않고, 철학적인 대화를 통해서 설령 그게 친구들과 별 시답지 않은 잡답을 나누는 것처럼 보이는 대화이더라도 경험을 하게 된다면 우리는 애매한 재능을 밟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돈에 의해서 성공이라는 허상을 향해 목이 꺾인다면 우리 가슴 안에는 항상 그 애매한 재능이 불타고 있다.


내 친구는 적어도 공부를 안하고 맨날 나랑 축구만 하고 복싱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열심히 해서, 지금 비록 공부 안한다고 하더라도, 4050 먹고 훌쩍 떠나버리는 것보다는 더 나은 선택 아닐까?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서 수능 수학 29번은 절대 풀 수 없다. 그리고 수능 수학 29번을 제외한 모든 문제를 다 맞아도, 그렇게 일군 것들을 모두 내려두고 훌쩍 떠나버리는 삶을 선택하면 그게 행복한 삶일까? 나는 차라리 지금 그 애매한 재능을 모두 불태우며 사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도 애매한 재능이라고 하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바로 이 글쓰는게 나에게 있어서 애매한 재능이다. 나는 학교에서 글을 잘 쓴다고 자부할 수 있다. 하지만 전국으로 가도 그게 통할까? 나는 솔직히 말해서 글을 좀 잘쓰는 거 같다. 빨리 쓰기도 하고, 내 생각을 빨리 글로 치환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손 끝에서 눈물이 줄줄 흐르고 감동으로 가슴이 벅차오르는 글이 탄생하는가? 또 그렇게 보면 내 글은 영 아니올시다다. 그렇지만 몇주에 한번, 몇 달에 한번 나에게도 그런 글이 뽑아져 나오는 순간이 있다. 나는 그런 순간을 포기하지 못하겠다. 말로는 내가 이렇게 포기해야 한다, 젊을 때 놀아야한다라고 주장해도 막상 공부를 안하고 놀자니 불안감은 찾아온다. 내 친구처럼 복싱을 해서 몸이라도 힘들면 그냥 자버리면 되는데 글은 정신이 피로해지니 잠은 못들고 여러 생각들이 나를 괴롭히니, 그게 딜레마다. 우리 모두에게 이런 애매한 재능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와 내 친구들 모두 그렇게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 아닐까.


나는 내 친구에게 굳이 진지한 목소리로 이 책 이야기를 하면서 복싱만 파보라는 이야기를 해줬다. 하지만 내 자신은 그걸 못하고 있다. 그래도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생각이 조금 정리된 것 같다. 나는 찰스 스트릭랜드처럼, 나이들고 이상한 바람이들어 산속으로 훌쩍 도망가고 싶지 않다. 차라리 지금 할만 큼 해보고, 그게 글쓰기든 축구든 헬스든 그냥 하고싶은만큼 해보고 싶다. 찰스 스트릭랜드처럼 달이라는 이상을 쫓아 낡아버린 로켓에 타들어가는 애매한 재능이라는 불씨로 불을 붙인체 무모한 이륙을 하고 싶진 않다. 적어도 내가 배웠던 삶의 가치인 등가교환에 따라, 잃는게 있으면 얻는 것도 반드시 있다. 인생을 사는 이유. 복잡해보이지만 그저 하루하루 눈을 떴으니까 살아가는 것이다라는 그 깨달음에 따르면, 내 인생은 그렇게 늙은 나이에 추한 도전을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오늘 하고 싶은게 있으면 오늘 해보고 싶다. 그래야 내가 나중에 찰스 스트릭랜드처럼 무모하게 달을 찾아 낡은 로켓같은 육신에 애매한 재능이라는 성냥불을 붙이지 않을 것 같다. 달과 함께 떠나고 싶은 순간은 달을 향해 발사할 로켓. 내 육신이 조금이라도 젊을 때 달을 향해 떠나는게 좋을 것 같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스쿨 오브 락 2025 10 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