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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경 May 16. 2020

그 물건, 정말 필요한가요?

쇼핑으로 채우는 허기

 



 

  아침 6시 50분. 맹렬히 울리는 알람 소리에 눈이 반쯤 떠진다. ‘다음 알람은 7시인데 10분만 조금 더 잘까?’ 알람을 끄려 핸드폰을 켠 순간 알림 센터에 다양한 광고 메시지들이 쭉 펼쳐진다. “OO님을 위해 딱 맞는 상품을 준비했어요.” 가끔은 그냥 지나칠 때도 있지만 정말 혹하는 광고가 눈에 뜨이면 조금만 더 자야겠다는 생각도 잠시 잠이 확 달아나 벌써 광고를 클릭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가끔은 휴지나 바디워시 등 당장 필요했던 물건을 싸게 사서 득템한 경우도 있지만 필요하지 않아도 세일한다는 이유로 화장품, 귀걸이 등 살 예정에 없던 물건들을 들여 후회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후회는 곧 ‘언젠가는 이것이 필요할 거야.’라는 합리화로 마무리된다.



   올해 1월 초 코로나가 터지기 전, 여동생과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다. 같이 근무하는 후배도 어쩌다 보니 같은 시기에 스페인을 가게 되어 여행을 가기 전에 서로 짠 여행 계획을 공유했다. 해외여행을 갈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곳에 제일 유명한 맛집을 꼭 알아본다. 그 후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내 여행 계획에서 제일 도드라지는 것은 그 나라에 가서 꼭 구매해야 할 ‘쇼핑 리스트. 그 친구가 나의 계획을 보더니 너무 놀라 여행가서는 잘 챙겨 먹어야 한다며 맛집이 담긴 구글 지도까지 카톡으로 첨부해 보내주었다. 덕분에 스페인에 가서 맛집을 찾아 헤매지 않았다.


  이렇게 맛집 검색은 관광지 검색 다음으로 밀려날 만큼 나는 허기를 쇼핑으로 채운다. 왜냐면 여행을 다녀와서 ‘아, 이 음식은 먹었어야 했는데.’라는 후회보다는 ‘아, 이건 꼭 샀어야 했는데. 한국보다 더 싸니까 꼭 사 올걸.’이라는 후회를 더 많이 했기 때문이다. 뭐 이런 나의 성향이 좋은 쪽으로 빛을 발했던 쪽도 있다. 물건이 떨어지지 않게 항상 채워놓는 습관이 있는 만큼 봄철 황사를 대비해 마스크를 조금은 여유 있게 구비해두었던 것. 그러다 보니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 대란이 있었을 때 다른 사람들에 비해 그나마 덜 조급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분명 난



 ‘물건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물건을 사는 행위’가 중요한 것 같다.



  물건을 잔뜩 시켜 막상 택배 배송이 오면 기분은 좋지만, 택배 박스를 뜯고 포장재를 버리는 일련의 과정들이 참으로 귀찮다. 그러다 보니 가끔은 배송받은 물건이 책상 위에 여러 날동안 방치된 일도 있었다.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하지만 물건을 쌓아두고 사는 문제는 비단 나만이 겪는 것이 아닐 것이다. 가족이 집에 오는 것보다 택배 아저씨가 오는 게 더 반갑다는 말이 있을 만큼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이 문제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한때는 ‘미니멀리즘 라이프’가 각광받던 시절이 있었다. 내 주변에서도 미니멀리즘 생활의 장점을 설파하던 언니가 있었는데 본인 스스로는 매우 만족해하는 눈치였다. 스티브 잡스는 매일 목티에 청바지만 입고, 박진영도 옷을 고르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옷 몇 벌을 정해서 입을 만큼 단순하게 산다는데 왜 우리는 옷을 쌓아두고 사냐며 제일 먼저 옷장부터 정리했다고 한다. 이 옷은 꼭 살 빼면 입어야지, 이 옷은 결혼식 갈 때 입어야지 등등 이렇게 한 두벌이 모여 옷장 하나를 가득 메워 결국 일 년에 한두 번 입을까 말까 한 옷 천지라고 했다. 이런 옷들을 처분하고 딱 일주일에 입을 상의 다섯 벌에 하의 세벌, 가방 세 개, 운동화 세 켤레 정도만 남겨두니 매일매일 어떤 옷을 입을까에 대한 스트레스가 전혀 없다고 했다. 그런 언니의 경험담을 들으니 마음먹은 것을 실천에 옮긴 것에 새삼 대단함을 느끼면서도 나의 생활에 접목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는다고 조금은 불편해도 물건 없이 살 수는 있다. 마치 차를 구매하기 전 뚜벅이 시절을 겪었던 것처럼. 하지만, 이미 차의 편리함을 알아버린 나는 뚜벅이 시절보다 보험료, 기름값 등 유지비를 더 내더라도 편한 차를 버리기가 어렵다. 요새 우스갯소리로 육아도 아이템빨이라던데...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이 모든 물건들을 덜어내라니...  나에게 미니멀리즘이라는 시류는 넘을 수 없는 산이라고 생각해 언니의 경험을 한 귀로 흘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물건에 파묻혀 사는 삶을 버릴 수 없다. 그렇다면 적어도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쉽게 마트에서 5천 원이면 사 먹을 수 있는 바나나는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너무 비싸 평범한 사람들은 먹지 못하는 음식이었다. 점심시간에 내 도시락의 밥이 흰밥인지 보리밥인지, 반찬이 온통 풀로 가득한지 고기라도 한 점 들어가 있는지 친구들이 이런 내 도시락을 보면 어떡하나 전전긍긍하고 부끄러워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우리는 돈을 주고 음식을 먹어 살을 찌우고 또 돈을 주고 살을 빼기 위해 다이어트를 한다. 이렇듯 소비는 이제 사람들에게 생계의 목적을 넘어섰다.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물건들로 넘쳐나는 사회에서 소비는 미덕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소비가 좋다는 것을 끊임없이 주입받고 살고 있다. 티비를 켜기만 해도 프로그램 사이사이에 수천, 수만 개의 광고가 쏟아지고, 다른 프로그램을 보려고 채널을 넘기기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중간중간 홈쇼핑 채널이 튀어나온다. 우리는 이미 많은 물건들을 가지고 있지만 요새의 유행과 트렌드라는 명목하에 새로운 소비를 만들어낸다. 내가 쓰고 있는 아이폰 XS는 내가 사용하는데 큰 불편함이 없다. 하지만, 새로나온 아이폰11의 카메라 기능은 왠지 핸드폰을 바꿔야할 것 같은 충동을 들게한다.


 비단 티비 광고뿐만 아니라 컴퓨터,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브라우저를 켜기만 해도 다양한 광고들이 쏟아진다. 광고를 보고 싶지 않다고 벗어나려 해 봐도 안 볼 수가 없다. 유튜브 영상 중간중간 나오는 광고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심지어 월 만원 정도의 유튜브 프리미엄에 가입해야 한다. 광고를 보지 않기 위해 돈을 써야 한다니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며칠 전에는 곽도원 배우가 나오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화면 앵글이라든지 목소리 톤이라든지 새로 나온 영화인 것 같아 어떤 영화인가하고 마지막까지 지켜보니 결국 광고였다. 얼마나 허무했던지. 이렇듯 광고도 광고가 아닌 것처럼 만들어져 우리 일상생활에 스며든다. 제품의 장점을 일일이 나열하는 광고는 사람들을 따분하고 지루하게 만든다. 이런 광고 대신 이제는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이미지’를 강조하는 광고가 나온다. 이 제품을 사는 순간 너도나도 이런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도록 말이다. 과연 내가 프라엘을 산다고 해서 이나영과 같은 피부를 가질 수 있을까? 내가 삼성의 비스포크를 산다고 해서 광고에 나오는 으리으리한 집 속에 살 수 있을까? 우리는 으레 그 점을 알면서도 속는 셈 치고 구매를 한다. 마치 이런 물건과 제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이미지와 분위기를 풍길 것이다라고 광고 제작자가 교묘하게 잘 짜낸 이 허구의 상상을 다 같이 믿고 소비하는 것이다.


우리는 광고에 길들여지고 있다.



  왜 사람들은 그런 이미지를 갖고 싶은가? 예전에는 가문이나 직업 등으로 그 사람을 나타냈지만, 가문이라는 것이 점차 희미해지고 직업도 다양해진 사회에서는 나를 표현할 수단이 바로 '소비'다. 외모처럼 물건만큼 직관적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멋진 외제차를 타고, 강남 한복판 큰 평수의 집에서 살며 온 몸을 명품으로 휘감으면 부자인 것처럼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왜 사람들이 무리를 하면서까지 여행을 다니고, 분수에 맞지 않는 차와 명품을 구매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먹고 살만큼 구매력을 가진 현대 사람들은 이제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소비한다.


 

   샤넬이 5월 14일 이후로 가격을 인상한다는 뉴스를 보았다. 인상 소식과 더불어 백화점 오픈 시간에 맞춰 샤넬로 달려가는 사람들을 '샤넬 오픈런'이라 이야기하며 그 상황을 찍은 사진도 여럿 올라가 있었다. 샤넬 핸드백 가격이 너무 터무니없이 비싸기도 하고, 경제가 코로나로 인해 위축되어 사치품 소비가 죄악시되는 분위기도 있기에 댓글은 미친 거 아니냐고 다들 혀를 끌끌 찼다. 회사 연차도 불사하고 오픈런에 참여한 사람들은 샤테크에 성공했다며 기뻐했다. 사실, 샤테크는 허구다. 샤넬 가방을 보유하지않고 당장 판매하는 사람은 샤테크가 가능할 수 있겠지만, 샤넬 가방에는 생산년도별로 번호대가 각각 부여되어있어 연식이 오래되면 중고 가격과 신상품의 가격 차가 많이난다. 샤테크를 떠나 앞으로 샤넬 가방을 구매할 예정이었던 사람이라면 천만원에 가까워지는 가격에 구매하는 것보다 이익이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마치 나까진 노아의 방주에  탔다는 안도의 한숨이랄까?

  나는 부정적인 여론보다는 '후광효과'에 주목했다. 샤넬이라는 브랜드 가치가 나의 가치를 높여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을 전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마치 명문대를 졸업한 사람을 보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똑똑하고 유능할 것이다라고 믿고, 책 하나를 구매할 때도 그 내용이 나의 성향과 맞는지는 상관없이 유명한 인사가 추천했다하면 바로 구매하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물건을 사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를 항상 짜인 틀에 수동적으로 살아온 나로서 소비만큼은 내 ‘주체적 선택’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내가 산 물건들을 나열해보면, 그 당시에 유행했던 물건들도 많고 실용성은 없지만 예쁘기만 한 물건들,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물건들도 더러 있다. 나도 그렇다면 ‘주체적 선택’이라는 큰 합리화 밑에 남들이 만든 유행을 따라하며 남들에게 보이는 측면을 중요시 여기는 내 모습을 감춘 게 아닌가 싶다.


소비는 과연 주체적인 선택일까? 아니면 알게 모르게 주입된 걸까?


  글을 쓰는 와중에도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장을 뭐 볼까? 쿠팡으로 뭐 살까? 고민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내가 자연 속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지 않는 한 물건을 사는 생활은 멈춰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남들에게 보여주는 소비는 내가 몸담고 있는 현실과 내가 이상하는 이미지의 괴리를 낳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을 병들게 한다. 허기는 쇼핑으로 절대 채워지지 않는다. 갈증을 느껴 바닷물을 먹으면 더 목이 타듯이 쇼핑을 하면 할수록 더 갈망하게 된다. 내가 무심코 사들이는 물건들이 과연 나를 좀먹지 않는가 고민해봐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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