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저마다의 아픔의 크기가 크고 작음을, 깊고 얕음을 비교하지 않는다. 각자의 정도를 지나서 조금은 더 어른이 된 그 모습을 우리는 마주할 뿐이다. 우리는 겉으로 보이는 모양에 빗대어 타인을 예측하기도 한다. 인간이기에 그런다.
나는 어떤 모양을 가졌길래, 나의 어떤 모습이 심연에 덮여 있기에.
언니라고 부르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자신의 길을 어릴 적부터 개척해 온 멋진 사람. 나는 하나의 키워드를 가진 브랜드를 서울 지역 내에서 열심히 뒤지다가 그녀를 찾았다. 나의 역할은 그녀를 필요로 하는 곳에 이어준 것. 그뿐이다. 그녀가 이뤄낸 모습이 너무도 빛나서, 나도 나로서 존재하고 싶다고 느끼기도 하던 때가 있었다. 선을 잇는 사람이 아닌, 원을 그리는 사람. 언니가 날 고맙게 생각한다는 것을 안다. 나 또한 그녀가 나의 자랑이기도 하다.
비가 올 듯 말 듯이 어둑한 한낮의 여름, 나는 언니를 만나기 위해 이태원 골목으로 들어섰다. 묘하게 특이한 골목에 생뚱맞게 있는 건물의 입구를 지나 좁은 계단으로 이어진 카페. 판매가 50% 이상이 초콜릿에 들어갔을 것 같다며 남는 게 있을지 걱정하는 그녀와 케이크를 가운데 놓고 앉았다. 에어컨 바람이 차가워서 따뜻한 커피와 티를 마시는 여름의 중순에서, 우리의 대화가 이어졌다.
나는 요즘 사람들에게 사랑에 대해 묻곤 한다. 아픔과 사랑은 늘 연결되어 있으니까. 저마다의 사랑 이야기를 가만가만 듣고 있으면 일렁이는 그들의 바다에 서서 나의 얼굴을 비춰보는 기분이 든다. 바다의 빛깔도, 물결의 빠르기도, 바다로 향하는 모래의 입자도 다 달라서 늘 새롭고 좋다.
언니는 자신의 바다를 내게 들려주었다. 남편과 맞지 않았던 이유가 한 문장의 마침표로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긴 마음이 소요되었을까. 그녀는 내게 이런 말을 건네주었다.
"남자는 시아버지를 꼭 봐야 해요. 닮기 싫다면서 똑같이 보고 자라."
나는 표정으로는 웃고 있지만 순간 마음이 무너졌다. 오빠가 떠올랐다. 오빠는 '네 아빠랑 똑같다'며 잔뜩 열이 오른 엄마의 비난을 혐오하곤 했다. 엄마의 그 말이 참지 못해 튀어나올 때는 토해낸 말이 오빠에게 상처를 줄 것을 너무도 잘 알아서 후회하는 눈빛도 늘 섞여 있었다. 아빠 없이 자란 아들, 딸은 누구를 봐야 할까요라고 차마 입 밖으로 물어지지 않았다. 완전 인생의 팁이라고 웃어넘길 뿐이었다.
아빠의 빈자리를 오빠가 진작에 채워주었다. 꼬꼬마 아가일 때 동생을 질투하기는커녕 예뻐하느라 바빴다고 엄마가 말해주셨는데, 오빠는 커서도 늘 나와 엄마를 먼저 챙겼다. 나는 아빠의 무책임함을 비난한 적도, 아빠의 사랑을 그리워한 적도 없던 것 같다. 오빠가 있어줘서. 나에게 그는 그랬다. 그는 어땠을까. 방황과 우울이 유난히 길었던 그가 단단한 어른이 되었다는 건 기적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그는 타인의 아픔을 다른 차원으로 공감한다. 단단한 뿌리의 근원은 상처다.
어떠한 아픔이 있었다고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는 게 서로의 유대를 깊어지게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나는 꽤 오래 그 필요성을, 시기를, 용기를 얻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 걸까. 사람들은 나의 겉모습과 취향을 보고 꽤 고고하게 살아온 사람으로 보는 것도 같다. 어둠이란 게 어떤 의미인지 안다. 대학에 합격했던 19살 끝자락이 그랬다. 등록금이 버거워 보이던 엄마의 표정 끝에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그날. 괜찮다는 미소 뒤에 감춘 헛헛한 눈빛이 이제는 세상을 또렷하게 보는 눈동자로 바뀌었다. 나는 요즘 늦깎이 대학 생활이 재밌다. 직접 학비도 내고 월세도 내면서 격변하는 세상을 또 한 번 배운다. 얼마나 꿋꿋하게 일궈냈는지, 어느샌가 나는 우리 가족의 자랑이 되었다.
어린 시절에 관해 릴케는 이렇게 말했다.
"일찍이 어린아이였을 때 당신에게 주어졌던 저 커다란 사랑이 상실되었다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오늘도 그것에 의해 살고 있는 크고 훌륭한 소망이나 뜻이, 이미 그때 당신의 내면에서 성숙해 있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겠습니까. 그 사랑은 당신의 첫 깊은 고독이었고, 당신이 자신의 삶에 가한 최초의 내면적 작업이었던 것입니다. 당신이 기억 속에 아주 강렬히 남아 있을 줄로 압니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 있는 그대로의 타인의 모습.
숨긴 적은 없지만 드러난 적 조차 없는 낯선 우리의 모습.
릴케의 문장이 끌어안아주는 것은 저마다의 아픔과 사랑. 그는 일찍이 어린 시절에 우리가 존재했음을 말해준다. 우리는 그저 티 내지 않을 뿐이다. 모두가 하나쯤은 있는 별거 아닌 아픔이라고 느껴서, 그려려니 하는 마음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스로를 온전히 꺼내어 서로의 모양을 바라봐줄 날이 올까?
나는 한글의 ㅇ(이응)처럼 원을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모음에 따라 길쭉한 타원이 되기도, 둥그런 원이 되기도 하는 그런 사람. 나는 다양한 원의 모양으로 세상을 살아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