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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가 아프다.

by 스니

제목은 비문이 아니다. 우리 엄마는 다행히 건강하시다.

자식이 부모에게 감히 '아픈 손가락'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지 않아서 저런 식으로 제목을 적었다.

나는 엄마가 아프다.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해 보자면, 애틋하고 안쓰럽다.



우리 엄마는 칭찬에 인색하다.

생일이며 어버이날 등 각종 기념일마다 우리 세자매는 각종 이벤트를 준비한다.

앙금플라워케이크, 용돈 꽃다발, 레터링 케이크, 반전 용돈 케이크, 플라워 용돈박스, 뒤집개로 용돈 뜨기 게임 등등..

이벤트 뿐이겠는가. 해산물 킬러인 엄마를 위해 옆동네인 여수의 각종 횟집과 해산물 맛집은 섭렵하다시피 했다.

그럴때마다 엄마는 그냥 '맛있다', '고맙다'라고 하는 법이 없었다. 드실 땐 맛있게 잘 먹어놓고선 돌아갈 때 '신선도가 떨어지네' 어쩌네 부정적인 평가부터 늘어놓는다. 각종 이벤트용 물품을 보면 꼭 '얼마 주고 했어?'부터 묻는다. 이는 "싸게라"(비싸다는 뜻의 사투리)를 말하기 위한 밑밥 깔기다.

엄마 입에서 바로 칭찬이 나오는 곳은 어마어마한 찐 맛집이다.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





우리 세자매는 엄마가 악평을 남길 때마다 핀잔을 준다. 그냥 기분좋게 잘 먹었다고 하면 안되냐고.


기껏 준비하는 동안 좋아할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던 우리들의 기분 역시 삽시간에 가라앉고 만다. 그래도 엄마는 여전하고, 각종 기념일,명절마다 반복된다.


어느 순간부턴 우리들도 면역이 생겨 "으유 또 그런다 강여사" 이러고 장난스레 웃어넘기기도 한다.



칭찬에 인색한 엄마는 정작 다른 사람들에게는 싫은 소리 못한다. 싫은 소리는 커녕 퍼주기 바빠 천사라고 불린다.


전에는 이것 또한 야속해서 따져들곤 했는데,

이제 어느정도 철이 들었는지

자식에게 부담 지우기 싫어서 맘 놓고 받지 못하는 엄마의 모습이 속상하다.



https://comic.naver.com/webtoon/list?titleId=679519


대학일기-231화 부산 호캉스(1)

2018년도에 올라온 대학일기 웹툰에서 엄마를 데리고 호캉스를 떠난 얘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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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이 장면을 보고 언젠가 꼭 엄마 호캉스 보내주리라 다짐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 과정이 무척 험난할 것임을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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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껏 좋아하시는 자까 작가의 어머님 모습이 부럽다.

우리 강여사는 분명 또 온갖 불평을 늘어놓을 게 뻔하다.





그리고 그 예감은 적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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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네고왕 딜이 떴다.

2박3일의 호캉스를 꿈꾸며 신나게 티켓 두장을 결제했다.


'6만원인데, 90% 세일인데! 이제 엄마 호캉스 보내줄 수 있겠다!'


내가 엄마를 물로 봤다.

엄마는 자식 돈 단 한푼도 쓰게 하고 싶지 않은가보다.

엄마는 총 세번이나 기껏 잡은 일정을 취소하게 만들었다.

난 환불 유효기간 마지막날까지 환불을 보류하다가, 결국 백기를 들고 환불 신청을 했다.

엄마는 시험이 코앞인 공시생 동생 두고 우리끼리만 가는 게 맘이 편하지 않다고 했다.

동생은 정작 "엄마 왜 내 핑계 대?"라고 했다.


이번주에 고향에 간다. 설 이후 처음 가는 거니 4개월만이다.

호캉스고 나발이고 엄마가 먼저 가고 싶다던 부산여행이고 다~ 취소되고, 순천만에서 데이트 할 예정이다.



그 때 엄마에게 묻고 싶다.

엄마에게서 우리들을 빼고 나면 무엇이 남느냐고.

그 대답을 어쩐지 안 들어도 알 것 같다. 작년 겨울, 내 인생에서 커리어를 빼고 나니 와르르 무너져내렸던 내 모습이 엄마 얼굴 위로 겹쳐 떠오른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너무 아프다.


불속성 효녀는 이걸 너무 늦게 깨달았고, 그동안 엄마가 이런 줄도 모르고 정작 내가 너무 힘들 때 엄마한테 기대지도 못하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장장 8년이란 시간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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