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력 시리즈 4편 - 공부역량 6요소(3)
4. 자기 공부 계획력
네 번째 요소부터는 앞에 “자기 공부”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한다.
이전까지 내용은 그냥 공부 그 자체였다면, 지금부터는 공부자아에 의한 자신만의 공부를 의미한다는 말이다. 학원에 다니는 경우에는 공부 계획을 스스로 세울 필요가 없다. 남이 세워주기 때문이다. ‘학원 숙제’가 그것이다. 관리형 학원이 대세가 된 이후, 학원 숙제는 점차 많아졌고, 자기 공부 시간을 잠식할 수준에 이르렀다. 학원 숙제가 너무 많아서 역설적이게도 자기 공부할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학생들은 안타까운 감정을 갖기 보다는 너무 지쳐서 넋두리 하듯 하소연을 할 뿐이다. 엄마들은 다소 안타까워 한다. 이렇게 공부하는 게 최선은 아닐 것이라고 예감한 뒤, 성적표를 받고 자신들의 예상이 결국 맞았음을 확인한다. 하지만 다음 달이 되면 결국 다시 학원에 가서 결제를 하고 만다. 집에서 뒹굴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차라리 학원 숙제에 치이더라도 뭔가 공부하고 있는 뒷모습, 밤 늦게까지 켜져 있는 아이들 방의 새어나오는 불빛에 차라리 안도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튀어나오는 말이 결국 “자기주도학습”이다.
좋은 말이다. 하지만 두루뭉술하다. 자기 공부 계획력은 실행이나 평가를 제외하고 순수하게 자기 공부를 인식하고, 스스로 공부의 목표를 세운 뒤,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수단을 선택하거나 계획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수민이는 누가봐도 성실하기 짝이 없는 학생이었다.
학원 숙제를 다 못해갈 까봐 수업 시간에도 문제를 풀고, 엘리베이터에서 단어를 외울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도통 국어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을 보고 자신이 이과 성향의 학생이라서 그런 것 같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시험지를 가져와서 하나하나 분석을 하며 내가 놀란 것은 지필고사 객관식에서는 만점을 맞고 있었기 때문이다. 감점은 모조리 서술형 평가 때문이었다. 주어진 제시문을 요약하라는 문제에서 연달아 감점을 당하고 있었고, 그 감점들이 모여 국어 성적은 4~5등급을 오가고 있었다. 그래서 중간고사 이후 국어학원을 하나 더 다니게 되었고, 그 결과 수학 공부할 시간마저 빼앗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내가 물었다. “수민아, 그럼 이번 기말고사 때 똑같이 요약형 서술형 문제가 나올텐데 어떻게 대비를 하고 있니?” 수민이는 한동안 답을 하지 못했다.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특별히 대비하고 있는 것은 없어요.” 국어 학원을 2개나 다니고 있는데, 그곳에서는 무엇을 배우는지 물어보았다. 주로 문학과 문법부분을 다루는 데, 자신의 학교에서 특이하게 출제되는 요약형 문제에 대해서는 방법을 배운 적도, 비슷한 예상문제를 풀어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심지어 그 국어학원에는 자신과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도 많다고 했다. 너무 황당했지만 그만큼 순진하고 어리숙한게 학생들인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고, 결국 요약형 서술형 문제를 풀어내는 연습을 집중적으로 하지 않으면 성적이 전혀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수민이는 처음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면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 해결책을 고민해 보겠다고 말했다.
수민이는 누구를 위한 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일까?
또 무엇을, 왜 공부하고 있었던 것이며, 학원 하나로 부족해 국어 학원을 2개나 다니려고 한 것일까? 수민이는 자기 공부 계획 능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우선 ‘자기 공부’의 개념이 형성되지 못하면 그것을 계획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자기 공부는 곧 객관적 지식 자체에 집중하기 보다는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반성적 사고의 결과물이다. 나를 위한, 나에 의한, 나의 공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공부의 주체가 학원이나 부모가 아닌 ‘나’로 바뀌게 되는 것은 0과 1의 차이만큼이나 엄청난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놀랍게도 자기 공부에 대한 자각은 바로 공부 목표를 수립하려는 욕구와 그것을 이루기 위한 방법을 찾는 문제해결적 사고로 이어지게 된다. 개인마다 그 속도와 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자신의 것이라는 인식은 이토록 학생들로 하여금 공부에 대한 적극적 생각과 고민을 이끌어 낸다.
이후로 그러한 공부 목표 및 입시와 성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의 세밀함과 효율성 면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되지만 근본적으로 자기 공부 계획력을 가지고 있는 학생이라면 자신만의 공부법을 찾아내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
5. 자기공부 실행력
자기공부 실행력은 단순히 약속을 지킨다는 개념으로 공부의 책임을 다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보다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로 공부를 대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그냥 공부가 아니라 자기 공부이기 때문이다. 나를 위해, 내가 세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공부를 실행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 수준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공부력을 한껏 끌어내야 하며, 심지어는 한계에 부딪히는 경험을 하기 시작한다. 평소 자신의 집중력과 통제력, 그리고 이해력을 총동원해도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를 만나게 될 수도 있고, 물리적으로 동원 가능한 모든 시간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목표를 이루기에는 공부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 때 능동적인 학생들은 공부 계획을 다시 재수정하면서 목표 달성을 위한 전략을 정밀하게 바꾸기도 한다. 공부 책임감이 부족한 학생들이 상황에 치이고, 자기 통제력이 부족해 아예 공부 계획 자체를 변경시켜버리는 다운 그레이드가 아니라 자신의 공부 계획이 목표했던 성취를 이루는 데 부족했다는 것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눈물을 흘릴 각오를 하는 것이다. 보통 이 단계에서 학생들은 실제로 눈물을 흘리거나 코피를 쏟는 경험을 하면서, 주변의 평가 보다는 자신의 목표 그 자체 때문에 좌절과 성취를 맛보는 수준으로 도약한다.
국가대표 운동선수들의 경우, 모두 하나같이 우수한 신체적 역량을 지녔고 치열한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0.01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달라진다. 이 때 많은 사람들은 그 차이의 원인을 육체적 역량이 아닌 정신력에서 찾기도 한다.
이미 여러번의 세계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던 명실공히 빙속여제 이상화 선수는 방송에서 벤쿠버 올림픽 이후 자신에게 찾아왔던 슬럼프를 극복한 비결을 털어놓았다. 세계 정상이라는 큰 부담감 때문에 2등 성적도 스스로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던 이상화 선수는 오히려 반짝 금메달이라는 평가를 받기 싫어서 다시 4년간 최선을 다해 연습했다고 했다. “슬럼프는 오히려 내면적인 꾀병이라고 생각하며, 조금 만 더 노력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는 이상화 선수의 태도는 최고 수준의 자기공부 실행력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필연적으로 자기공부 실행력이 높아짐에 따라 나타나는 특징이 하나 있는 데, 그것은 바로 ‘질문’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자기공부를 계획하는 데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목표를 달성하려는 의지가 강해질수록 자신의 실행방식이 과연 올바른지, 또 공부계획의 양과 밀도는 충분한지, 자신이 빠트리고 있는 부분이나 더 점검해봐야할 부분은 없는 지 오히려 선생님에게 질문해 오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런 특징을 보이는 학생들에게 성적이 어느 정도인지 굳이 물을 필요는 없다. 대부분의 상위권 학생들이 거의 예외없이 보이는 특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