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리양 Mar 03. 2024

괜찮으냐고 물어보지 마

나에게 솔직하게 살기

나는 드라마나 넷플 시리즈가 방영중일 때 보지 않는다. 화제의 드라마라 할지라도 끝나길 기다린다. 드라마틱하게(특히 K드라마의 엔딩은 정말…!)한 회가 끝나면 그다음회가 너무나 궁금한데 일주일을 기다려야 하는 게 싫어서 한 번에 몇 편씩 몰아본다.


가끔가다 남편이 티브이 드라마를 추천받았다며 같이 보자 하기도 한다. 그럼 한 번에 두세 편씩 몰아본다. 그러다가 어느 날 ‘다음 에피소드는 월요일에 업로드됨’을 만난다. 본방 날짜를 따라잡은 거다. 그러면 난 눈은 튀어나올 듯 크게 뜨고, 턱은 아래로 삼십 센티는 내려가서 남편을 대역죄인 바라보듯 보며 말한다.

“아니,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나 기다리는 거 싫어하는 거 알면서. 이거 다 끝난 거 아니었어? “


생각해 보니 과자도 술도 음식도 비슷한 것 같다. 아껴두고 먹는 것보다 한 번에 다 먹어치운다. 먹을 때 먹고 안 먹을 때 안 먹는 것이 조금씩 먹는 것보다 성격에 맞다. 그래서 단식이 성격에 맞는가 보다. 매끼에 소식을 하는 것보다 ‘이팅 윈도우’에 먹을 만큼 먹고 단식할 때는 아예 안 먹는 것이 쉽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간식거리가 거의 없다. 있으면 다 먹어버리니 잘 안 산다. 정말 먹고 싶을 때에 사 와서 먹는다.




일상이 바쁠 때에는 드라마 볼 시간도 없고 아깝기도 해서 한동안은 ‘드라마는 러닝머신 위에서만 보기’ 룰을 정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로코가 아닌 이상 집중해서 보기가 힘들어서 요즘은 혼자 밥 먹을 때 잠깐씩 보기 시작했다. 정말 재미있는 드라마라서 볼 때도 있지만 내 감정의 히스토리를 돌아보면 일상이 힘들거나 불만이 있을 때 드라마를 몰아본다.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드라마로 도망치는 것 같다. 최악의 우울증을 겪었던 2020년 락다운 때에는 하루에 영화를 세 편씩 몰아보곤 했었다.


넷플릭스 홈에 ‘new’라는 빨간딱지가 붙는 드라마들은 새로운 에피소드가 추가되었다는 뜻으로 그런 건 절대 안 본다.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 ‘닥터슬럼프’라는 작품은 홈화면에 보인 지 꽤 된 것 같았지만 내 기억 속 닥터슬럼프는 만화였던지라 제목이 그다지 끌리지 않아 보지 않았다. 그러다가 요 며칠 마음이 울적해지면서 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틀 만에 깨달았다. 안. 끝. 났. 다…  


만화 닥터슬럼프를 본 적은 없다. 그래서 내용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 드라마는 정말로 제목 그대로 슬럼프를 겪는 의사들의 이야기다. 슬럼프라 하기엔 조금 더 깊은,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는, 직업이 의사인 두 젊은이의 이야기다. 이틀 동안 침대에서 닥터슬럼프를 몰아 보면서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우울해서 본다고 보는 게 우울한 사람들 이야기네. 이게 도움이 되나?’


스위트하고 유쾌한 박형식 배우를 보는 것 말고도 이틀 동안 침대를 지키며 내가 얻은 것이 있다면 우울을 대하는, 우울한 사람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다. 내가 우울증이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부모님에게 했을 때에도, 그리고 후에 누구네 딸이, 혹은 아들이 우울증 때문에 어떻다더라는 이야기를 하실 때에도 두 분에게 우울증은 ‘약해 빠져서 걸리는’ 이겨내야 하는 병증 같은 것이었다.


‘왜 다들 나아지라고만 해. 안 나아지면 안 돼? 나 그냥 우울하면 안 돼?’


큰 아이를 낳고 산후우울증이 깊어져 영국에서 약물치료와 상담을 받았다. 잠시 한국을 방문한 나는 내 우울증의 근원을 찾아 뿌리 뽑고 싶어서 거의 삼십 년 만에 처음으로 아빠와 친엄마에게 과거에 대해 물었었다. 하지만 아무도, 어떤 이야기도 해주지 않았다. 마치 모두가 내가 다 잊고 새로이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 같았고, 나는 그래야만 한다고 강요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괜찮지 않은데, 하나도 괜찮지 않은데도 괜찮아져야 한다고 폭력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영국으로 돌아오기 전, 지금은 돌아가신 엄마의 독일인 남편 잉골프 씨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배웅하며 말했다.


“그깟 과거 따윈 잊어버려. 너는 훨씬 멋진 사람이잖니. 과거가 네 발목을 붙잡게 하지 마라.”


하지만 그는 몰랐다. 그건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런 말은 나에게 조금의 위로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결국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고 영국으로 돌아온 후 우울증은 더 심해졌다. 아마도 또 한 번 거부당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그때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잘못된 위로와 응원이 가시보다 아플 수 있다는 것을.




닥터슬럼프에서 박신혜를 향한 가족과 박형식의 응원 그리고 박형식을 향한 박신혜의 위로와 노력에서 의미 있는 메시지를 발견한다. 안타깝고 도움을 주고 싶은 주변인의 마음으로 제시하는 해결책들은 때로는 아직 준비가 안 된 마음에 또 하나의 무거운 짐이 되어 가슴을 짓누른다. 가끔은 기다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본인이 아닌 이상 백 프로 공감할 수 없다. 세상 가장 어려운 입장인 것 안다. 신경은 쓰이지만 나서서 도울 수 없는 위치. 내버려 두고 있지만 방관하는 것은 또 아니라는 것은 알아주었으면 하는 위치. 그렇게 잘 알면서도 나 역시 딸이 우울해할 때 해결책을 제시하고 빨리 극복하도록 채근했다. 그래서 잘 안다. 이쪽도 저쪽도 참 어렵다는 걸.


이번주에는 남편도 나도 그리고 날씨도 우중충했다. 우리는 서로의 공간을 지켜주고 간간이 안부를 물으며 조심조심 살금살금 아슬아슬한 한 주를 보냈다. 버릇처럼 남편이 묻는다.

“괜찮아?”

“그 질문하지 마.”

“미안. 버릇이야. “


힘내기 싫을 때도 있으니 무조건 힘내라고 하지 말자.

안 괜찮은 거 뻔히 알면서 괜찮으냐고 묻지 말자.

그렇다고 나 방치하진 마. 서운하니까.

어쩌란 말이냐고?

아침에 모닝커피를 가져다 주고

말 없이 빨래를 걷어주고

브런치 먹으러 나가자고, 지금처럼 그렇게만 해주길.




작가의 이전글 what if...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