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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르티아 Jun 03. 2020

그들은 왜 우주로 향했는가

독서기록:「타이탄」

"마스 패스파인더, 드디어 화성에 착륙했습니다. 역사적 순간입니다!"


1997 7 4. 미국의 독립기념일이자, 화성탐사선 마스 패스파인더가 7개월 간의 비행을 마치고 화성에 착륙한 날이었다. 영상은 전 세계에 실시간 중계되었고, 장래희망에 어김없이 과학자를 써넣던 초등학교 3학년의 나도 꾀병으로 학교를 땡땡이치고 TV 앞에 앉아 있었다. TV 속에선 RC카를 쏙 빼닮은 탐사차량 소저너가 등에 얹은 태양전지를 뽐내며 붉고 황량한 대지 위를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었다. 광활한 우주에 대한 호기심과 경외감, 그리고 인류의 무한한 자유에 대한 자각이 어린 과학소년의 마음에 싹트기 시작한 여름날이었다.


너무 귀엽지 않은가?


그리고 20년이 넘게 흐른 2020,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 X 민간기업 최초로 유인우주선과 우주정거장 도킹에 성공하였다. 어릴 적 꿈처럼 과학자의 길을 걷고 있진 않지만 뉴스영상을 보는 내내 20여년 전 여름날의 추억과 설렘이 가슴 한 켠에서 되살아 났다.


이젠 어른이 되면서 점점 과학과 기술 뒤에 숨겨진 인간사에 더 관심이 가기 시작한 요즘. 우주를 넘어 우주를 탐하는 위대한 인물들의 스토리에 호기심에 동했고, 그래서 꺼내들었던 책이 바로 "타이탄"이었다.

한국판 타이틀「타이탄」(크리스찬 데이븐포트 저, 한정훈 역, 2019)


타이탄은 우주개발 하면 흔히 떠올리는 NASA 중심 패러다임에 정면으로 도전한 기업가들의 이야기를 다룬 논픽션이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일론 머스크, 제프 베조스가 주인공이다. 성향도 전략도 정반대인  재벌의 우주개발을 둘러싼 자강두천 스토리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우주판 '포드 vs 페라리' 할까. (폴 앨런과 리차드 브랜슨도 중요하게 등장하지만, 미국판 원제처럼 스토리는 두 인물에 주로 초점을 맞춰서 전개된다)



| 스토리 요약: 우주를 둘러싼 세계관 최강자들의 싸움

- 일론 머스크_ 속도, 임기응변, 정면돌파, 위험감수, 쇼맨십을 통한 팬덤 구축, 승부사적 기질

: 남아공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돌아온 후 기술과 미래에 매혹된 사업가다. 페이팔의 성공적 창업과 엑싯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그는 소행성 지구충돌로 인한 인류멸종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였고,  결과 화성을 백업용 행성으로 개발하여 인류를 '다중행성 거주종'으로 만드는 결론에 다다랐다. 학창시절엔 왕따와 학폭에 시달렸고, 일본 아니메 캐릭터를 티셔츠에 박고 다닐 정도로 오타쿠였다. 그래서일까, 우주를 향한 그의 행보는 어떤 상황에서도 해법을 찾아내고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집요함과 과감함이 돋보인다. 2003 자체제작한 로켓(아직 제대로 날지도 못하는!) 차에 끌고 시가지를 활보하여 정부행사에 참석하는 쇼맨십으로 대중들을 자기 편으로 만들고, 중요한 고객인 NASA 물론 미국 군산복합체까지 거침없이 싸움을 걸어대면서 신속하게 자원과 영토를 빼앗고 개척해 나간다.


- 제프 베조스_ 철저함, 점진주의, 에너지 보존, 비밀엄수, 기존 플레이어와의 동맹, 장기적 관점

: 1969년 닐 암스트롱이 달에 발을 내딛은 순간부터 우주에 매혹된 영특한 아이였다. SF소설과 스타트렉에  빠져 살았고, 고등학교를 수석 졸업하면서 졸업생 대표연설로 우주 식민지에 대한 비전을 발표하기도 했다. 아마존의 초기 성공으로 주목을 받던 1990년대 말부터 남몰래 우주기업 '블루 오리진' 창립하였고, 이미 2000년대  '재사용 로켓' 기술을 목표로 삼고 개발에 몰두했다. 경쟁자가 걸어대는 조롱과 언쟁에는 침묵하지만 에너지를 아끼면서 조용히 우군을 확보하고 영토를 넓혀나간다. 공해산업을 우주로 이전하여 지구를 국립공원으로 보존하는 계획을 갖고 있으며, 궁극적인 비전은 "우주에서  영속되는 존재를 창조하는 "이다. '한걸음씩 담대하게 Gradatim Ferociter' 모토로 한다.


서로 다른 성향을 가졌으나 같은 꿈을 갖고 각자의 길을 걸어온  인물은 마침내 일전을 벌이게 된다. NASA의 발사대 입찰, 재사용 로켓에 대한 특허권 분쟁, 거대한 독점기업 ULA와 블루 오리진의 동맹과 스페이스X의 소송전, 트위터에서의 독설과 조롱까지 수많은 전선에서 두 천재는 각자의 스타일로 싸움을 걸고 맞받아친다.

로켓 재착륙 성공 후 베조스는 자신의 로켓을 가상의 동물 유니콘이라 비웃었던 머스크에게 독설을 날렸고, 머스크는 그리 대단한 성공이 아니었다고 맞받아쳤다.

베조스는 느리지만 꾸준하게, 머스크는 많은 실패를 겪으면서 더 공격적으로 투자를 지속했다. 마침내 블루 오리진과 스페이스 X 모두 재착륙 로켓 프로젝트를 성공리에 달성했고,  천재의 경쟁 미국 오랜 잠에서 깨어나 다시   우주시대를 맞이하도록 이끌었다. 우주경제 규모는 10년만에 2배 이상 늘어났고, 구글과 애플도 우주개발에 뛰어들면서 각 대학의 우주공학 수강생들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2005년 198조 수준이던 우주시장 규모는 2018년 490조원까지 상승했다. (그림: 한국경제)

냉전 이후 오바마에 이르기까지 NASA 예산비중은 점차 줄고 우주에 대한 관심도 한때 잊혀진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개인들의 꿈은 잠들지 않았다. 왕성한 미국 자본주의와 시민들의 열광적인 지지 속에 두 거대재벌은 어느 국가도 꿈꾸지 못한 민간 주도의 장기적 우주 프로젝트를 실현시키고 미래를 향하는 길을 열어젖히고 있다.


"30 , PC 혁명은 수백만명에게 정보처리 능력을 주었고 무한한 잠재력의 문을 열었습니다. 20 , 인터넷의 등장과 스마트폰의 확산으로 수십억 인류가 지리적 한계와 전통적 거래방식의 한계를 뛰어넘을  있었습니다. 이제 지구 저궤도에 대한 접근성이 확장되면 그와 유사한 혁명을 불러일으킬 겁니다."

- 폴 앨런 Paul Allen



| 무엇이 그들을 우주로 이끌었나?_ 개인의 건설의지와 경쟁심


머스크와 베조스를 우주로 이끈 욕망은 단순히 돈으로 측량할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보다 근원적인 호기심과 열망, 인류적 차원의 문제에 대한 사명의식과 해결의지다. 단순히 돈만 좇았다면 훨씬 수익성이 높은 사업기회도 많았고 잘 되는 사업에 안주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두 천재들은 유년시절부터 지속된 근원적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인생에 걸쳐 벌어들인 돈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인간에게 내재된 탐구욕과 건설의지야말로 진정한 실체이며, 자본은  실현을 위한 가상의 '매개체' 불과하다는 점이 깊이 다가오는 대목이다.


"나는 매년  10 달러 정도의 아마존 주식을 팔아서 블루 오리진에 쏟아붓고 있습니다." (p442)

- 제프 베조스 Jeff Bezos


동시에  천재의 역량을 200% 이끌어낼  있었던 가장  동기는 경쟁의식이었다. 아마존과 테슬라도 기존 업체들과 경쟁하면서 성장했다. 미국의 달 착륙도 소련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비롯되었다. 뉴 스페이스 시대도 결국 위대한 두 개인들의 경쟁의식을 바탕으로 속도를 올려왔다. 책 속의 표현대로 "언제나 그랬듯, 최고의 로켓 연료는 경쟁 의식이었다."

베조스 vs 머스크.. 세계관최강자들의 싸움수준 ㄹㅇ 실화냐? 책을 다 읽고나니 절로 가슴이 웅장해진다..


| 무엇이 그들을 우주로 이끌었나?_ 자본, 팬덤, 니치


한편, 「타이탄」은 철저히 미국적 판타지에 충실한 논픽션이다. 위대한 개인들이 초인적 역량을 남김없이 발휘하여 목표를 달성하고, 그 과정에서 서로 자웅을 겨루는 스토리다. 어떤 집단의 대의나 이데올로기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개인의 무한한 자유와 모험, 경쟁, 목표달성  자체가 미국의 이데올로기다.


"(스페이스X 로켓 재착륙이 성공하자) 흥분의 도가니였다.. 스페이스X 직원들은 "USA! USA!" 연호했다. 다소 이상한 환호성이긴 했다. 이건 국가가 아닌 개인기업의 성취였으니 말이다."  (p398)

거대한 금융시장과 초저금리로 수월해진 자본조달, SNS를 통한 팬덤의 구축을 통해 슈퍼리치들은 과거 그 어느때보다 높은 영향력을 누리고 있다.

아무리 위대한 개인들이어도 스스로의 역량만으로 우주개발을 성공시키긴 어렵다. 과거에는 아무리 미국이라도 정부지원 없이 대규모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장기간 지속된 초저금리와 미국의 막강한 자본시장, 실리콘밸리 창업가들의 적극적인 시장참여로 민간의 자생력이 확보되었다. 신생기업들이 기술을 담보로 현금흐름을 확보하여 다시 재투자할  있는 활발한 자본 생태계가 확보되었던 것이다.


여기에 소셜 네트워크가 확산되면서 개인 기업가들이 스스로 스타가 되어 대중의 관심을 끌어모으고 사회적 영향력을 확보하는게 수월해졌다. 잡스가 특유의 카리스마와 매력으로 애플을 먹여살렸듯, 일론 머스크 개인에 대한 충성심 높은 팬덤이 테슬라의 급성장과 자본조달에 기여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자본과 팬덤의 힘이 커지면서 기업가들이 정부의 통제나 정치적 영향력에서 벗어나 혁신을 계속해나갈 수 있는 뒷배가 생겼다. 개인들이 자기 입맛에 맞는 대형 사업을 실제로 구현할  있는 가능성,  니치(=틈새) 크게 확대된 것이다. 그럼 왜 미국에서만 이런 니치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 사회 선택의 문제: 개인의 리스크 감수 vs 집단적 리스크 관리


인류의 우주 진출과 같은 거대한 사업에는 필연적으로 리스크가 수반된다. 세상에 등가교환의 법칙이라는게 있어서 위대한 성취에 대해 감수해야 할 리스크 총량이 정해져 있다고 치자. 그럼 리스크를 누가 어떻게 감수할 것인가? 이 질문에 사회가 대답하는 방식으로 우린 그 사회의 유형을 구분할 수 있다.


- A 사회: 뛰어난 개인들의 적극적 리스크 감수를 적극 장려한다. 심지어 죽음마저도 개인의 선택이자 숭고한 희생이다. 극한과 미지에 도전하는 자유를 찬양한다. 사회적 압력보다는 개인의 내적 동기가 중시된다.

- B 사회: 집단 차원에서 리스크를 감수하고 관리한다. 리스크를 감수할 희생자들이 사회적으로 결정된다. 집단 전체의 대의가 중시된다. 사회적 압력을 통해 분위기를 조성하고 독려하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A 사회는 필연적으로 혼란과 불평등이 많다. 개인이 온전히 리스크를 떠안는 한편 독점권도 폭넓게 인정되기 때문이다. 국가개입이 상대적으로 적어 갈등을 조율하는데 비용이 많이 든다. 반면 B 사회는 모든 문제를 국가가 책임지고 관리한다.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공통정서나 대의가 분명한 판단근거가 되어 사회적 갈등이 금방 해소된다. 답은 이미 나와있고, 이를 어떻게 구현하는가가 주된 관심사다.


통상 우주개발과 같은 장기적 사업을 추진하는데는 B 사회가 더 뛰어나다는 평가가 많다. 체제가 안정되어 있고 논쟁소지가 적으며, 개인들의 단기적 이익추구보다 집단적인 공익추구가 더 우선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B 사회도 리스크가 있다. '대의'라고 포장되는 집단의 의지는 결국 그 사회의 승리자 연합, 엘리트의 의지일 뿐이다. , 엘리트 간의 권력다툼에 멀쩡한 사업이 휘둘리기 쉽다. 정권이 바뀌면 사업이 엎어지고, 사업가와 기술자들도 정치를 알아야 일을 해나갈 수 있다. 모든 이슈에 정치적 판단과 국가적 의지가 개입되기에 정해진 답에서 어긋나는 개인은 일탈로 간주된다. 국가가 모든 문제를 책임지는 과정에서 개인들이 국가만 바라보게 되면서 통제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한편 민간이 자생력을 갖추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반면 A 사회는 개인들의 자유로운 사업과 연구를 위한 공간이 비교적 넓다. 국가 간섭이 적기에 창조적 개인의 재량권이 폭넓게 인정되고, 불법만 아니면 언제까지고 자기 분야를 개척해 나갈 수 있다. 소모적인 정치적 논쟁에서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기도 편하다. 정해진 답이 없고 모든 것이 협상 가능하기에 국가를 상대로 싸움을 걸더라도 무사할  있다.


스페이스X 연이은 발사실패에도 불구하고 사고원인만 밝혀내면 신속히 재발사를 허가하고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았던 DARPA, 기득권이 얽힌 소송전에서 시원하게 신생기업 스페이스X 손을 들어준 회계감사원의 사례야말로 A 유형의 사회에서만 가능한 케이스다. 리더가 전권을 쥐고 무모할 정도의 혁신과 시장개척에 나설  있게  결정적 요인은 바로 이러한 "제도적 숨구멍"이었던 것이다.



| 거인은 결국 개인들이다


어떤 사회가 더 우위에 있다고 말할 순 없다. 스페이스X의 우주비행사들이 우주를 유영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지상에서는 코로나로 수많은 개인들이 죽어가고, 인종간의 해묵은 증오와 분노는 불길이 되어 번져나가고 있다. 반면 비교적 권위주의를 유지하는 사회들은 집단적 노력을 통해 분위기를 다잡고 성공적인 방역성과를 거둬나가고 있다. 국가적 경쟁상황에서 어떤 사회가 반드시 우월하다고 말할  없는 이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있다. 미국식 자본주의가 개별 주주들의 단기 이익에 집착하느라 장기적 투자에는 미흡하다는 비판은  책으로 철저하게 기각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정권 향방에 휘둘리는 국가적 선택에 기대기보다 꿈을 가진 개인들에게 과감히 자율권을 주고 투자하는 사회가 훨씬 장기적인 사고를   있다. 수많은 내부적 모순에도 불구하고 미국식 자본주의가 끝끝내 경쟁체제들을 따돌리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역사가 개인의 자유를 확장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한다고 믿는다. 개인은 사회가 정해놓은 테두리를 언제나 벗어나고 사고를 치면서 마침내 사고의 지평도 넓혀간다. 그렇게 넓어진 지평으로 다른 개인들이 뒤따라 나가면서 다시 자유의 영토는 넓어져 간다.


그렇다면 어느 사회가, 진정 인류의 자유를 위해 지평을 넓혀나갈 수 있는가?


 책은  질문에 어느 정도 확고한 답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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