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하경제의 일시적 붕괴와 양극화의 시대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얼마 전 5차 재난지원금 지급이 국회에서 의결되었다.
https://newsis.com/view/?id=NISX20210724_0001524706&cID=10401&pID=10400
5차 재난지원금이라지만, 보다 오피셜하게는 '21년 제2차 추경'이라고 하는게 맞다. 추경은 추가경정예산의 줄임말로, 쉽게 말해 매년 정기적으로 정부와 국회가 정하는 예산범위를 초과하는 일시적 재정지출이란 뜻이다.
나랏빚이 1,300조원을 넘니 마니 하는 상황에서, 재정중독이라는 비판까지 무릅쓰고 정부가 추경을 결정할 수 있었던 자신감의 근거는 바로 '세수'였다. 세금이 예상보다도 너무나 잘 들어오니 이를 다시 민간경제에 환류시켜서 국민 살림살이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도록 하겠다는 말이다.
실제로 올해 1~5월까지의 세수는 전년대비 44조원이 넘게 증가하였다. 법인세, 양도세, 부가세 등등 세목을 가리지 않고 늘어났고, 기저효과를 감안하더라도 32조 가까운 세수가 코로나 이후에 오히려 늘어났다.
https://news.joins.com/article/24101677
생각해 보면 조금 이상하다. 경제가 그렇게 어려웠는데 세수는 왜 늘었을까? 기저효과가 있었다고 해도, 올해 초에도 코로나 3차유행이 있었던걸 생각하면 이렇게까지 세금이 많이 걷힐 이유가 있었을까?
이런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경제를 두 가지 영역으로 나눠보자. 즉 모든 거래가 정부에 보고되고 세금도 정확히 걷히는 '제도권 경제'와 소위 지하경제로 불리는 '비제도권 경제'로 사회를 갈라보는 것이다.
우선 코로나가 제도권 경제에 미친 영향을 한번 생각해보자. 물론 초반의 큰 충격은 있었지만, 코로나 이전부터 자본력과 온라인 시스템을 갖춰온 대기업~중견기업 사업장들에게 코로나는 밀려드는 비대면 주문에 적응하면서 빠르게 현금흐름을 회복시킬 기회였다. 오히려 제도권 경제에 오래 전부터 편입된 덕택에 각종 면세혜택이나 한시 보조금 등등 정부의 적극적 부양책 대상이 될 가능성도 높아, 경기회복의 수혜도 가장 먼저 누릴 수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 모든 게 비제도권 경제에는 반대로 작용한다.
비제도권 경제는 노출 가능성이 높은 온라인 주문이나 카드결제 시스템을 도입하는 대신 현금 위주의 상거래 관행을 유지하면서 지역과 인맥에 의존해서 장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로 오프라인 현금흐름이 뚝 끊겨버리면 어떻게 될까?
비대면 경제로 이행할 준비도 처지도 마땅치 않고, 정부와도 그리 친하지 않은 이들에게 현금자산을 구할 길이 어딨겠는가. 문닫고 가진 밑천 까먹으면서 존버하는 수밖에. 그 밑천마저 바닥나면 망하는거고.
지하경제 의존도가 높은 비제도권 사업자들은 현금 부족으로 망해가고, 남은 파이는 상위 제도권 사업장에게 집중되는 생태계 재편의 현장. 이것이 간략하게 살펴본 코로나 양극화의 시나리오다. 기존에 유지되어 오던 제도권-비제도권 경제 간의 균형이 일시적으로 와해되고 제도권 쪽으로 경제의 무게추가 급격히 기울어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국가의 세금은 대부분 제도권 사업자들의 매출에서 비롯된다.
특히 한국은 근로소득세부터 부가가치세까지 상위 대기업~중견기업 종사자 및 사업자의 납부세액이 세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나라다. 결국 코로나는 국가의 적극적 현금 지원 → 제도권 사업자들의 회복 및 매출 증가 → 제도권 사업자들이 내는 세수 증가 → 국가로의 현금 회수라는 순환고리를 보다 확고히 구축한 계기가 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가설에 따르면, 코로나를 겪으며 한국의 지하경제는 통념과 달리 급격한 위축을 겪었을 가능성이 높다. 보유한 현금 자본력을 제도권 경제에 슈킹당하면서(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세금이라는 형태로 국가에 환수되고) 말이다. 실제로 그러했는지는 데이터를 좀더 면밀히 살펴봐야겠지만.
어떻게 보면 이런 전방위적인 비대면 전환의 물결에서 살아남기 위한 지하경제의 진화형태가 바로 비트코인이나 온라인 도박사이트, 혹은 아프리카나 트위치 그외 노출도가 높은 지하 사이트들로의 여캠, BJ 유입 증가 등이라고 생각한다. 아프리카TV 주가가 연일 최고치를 돌파하는 것도 이러한 지하경제 위축 → 플랫폼 등 제도권 경제로의 자본과 인재 풀 흡수 현상의 연장선상이 아닐지, 짐작해볼 수 있는 것이다.
확실한 데이터도 부실하고 약간은 음모론적인 가설이지만, 어쨌든 이번 '세수 풍년' 사태는 코로나로 인한 K-양극화가 실질적으로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 확고한 수치로 증명된 사례가 아니었나 싶다. 이러한 비제도권 경제의 위축과 맞물려 앞으로 '전국민' 재난소득, '전국민' 사회보험과 같은 정부의 전방위적인 국민 데이터 확보와 제도권 편입 압력도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사실 보편이나 선별이냐의 논쟁은 어찌 보면 지엽적인 논쟁이고, 더 중요한 논점은 혜택을 전제로 한 국가 통제력의 극적 확장을 어디까지 허용할 지가 아니었을지. 이 이야기는 다음에 더 깊게 다뤄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