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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르티아 Mar 21. 2022

정치의 본질은 독재다.

| 정치책 읽기 - "독재자의 핸드북"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지 어느새 한달. 초반 예측과 달리 젤렌스키를 중심으로 뭉친 우크라이나 군대는 분전하고 있고, 러시아 군대는 개념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점점 더 진창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계속되는 러시아의 졸전에 푸틴 정신이상설까지 돌고 있는 지금, 나는 다른 각도에서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왜 독재자들은 부패하고 무능함에도 그토록 오랫동안 집권할 수 있는걸까?


정치학자 부에노 데 메스키타는 답한다. 그들은 그저 정치의 기본원칙을 충실히 따랐을 뿐이라고. 우리는 개별 사례에 천착해서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지만, 통치의 대전제는 언제나 동일하다.


"정치의 원동력은 공익이 아니라 통치자의 사적인 이해관계다"



권력을 잡은 지도자의 정치적인 생존은 소규모의 지지자 집단에 달려 있다. 국민만을 위하고 공공복지와 공익을 위해 힘쓰는 정치인은 존경은 받겠지만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 자신에게 충성하는 이들의 부와 명예를 충족시켜 주는 이들이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한다. 결국 독재정이든 민주정이든, 지도자들이 정치적으로 살아남으려면 다섯가지 기본 원칙을 따라야 한다.


원칙 1. 승리 연합을 최소 규모로 유지하라.

원칙 2. 대체 가능 집단은 최대 규모로 유지하라.

원칙 3. 수입의 흐름을 통제하라.

원칙 4.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핵심 집단에 보상하라.

원칙 5. 국민을 잘살게 해주겠다고 지지자의 주머니를 털지 마라.


권력자의 관점에서 국민들은 대체가능 집단, 유력집단, 승리연합으로 분류된다. 대체가능 집단은 명목상 투표권을 가진 모든 대중을, 실제 선출인단은 중국 공산당원이나 중동의 귀족계층처럼 실질적인 영향력을 가진 유력 집단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승리 연합은 후보자를 선출하고 그 과정을 관리할 수 있는 소수 핵심 집단을 뜻한다.


저자는 각국의 정치가부터 CEO에 이르는 풍부한 사례를 통해 인간사의 모든 곳에 정치가 존재하고, 정치의 본질은 결국 독재라고 주장한다.


- 핵심집단의 머릿수를 줄이고 자원독점을 강화하기 위해 전쟁을 개시하는 지도자

- 일부러 자연재해와 경제적 궁핍을 방치하여 대중을 빈곤하게 만드는 독재자

- 소수 친인척과 이사회 멤버들만 챙기며 대다수 소액주주를 착취하는 CEO

- 선거규칙과 산업구조를 유리하게 조작하여 소수 지지층만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지자체장


이들 모두가 바로 공통된 원칙을 따르는 '독재자’들이다. 권력자는 돈줄을 움켜 쥐고 소수의 승리 연합을 배불려 독재체제를 구축한다. 동시에 잠재적 지지집단을 크게 만들어서 핵심 집단에게 처신을 잘못하면 누구든 저들 중 하나로 대체할 수 있다고 인식시킨다. 다수 대중이나 소액 주주들을 뜯어내어 지지층과 핵심 간부들을 먹여살리되 버릇이 없어질 정도까지 키우진 않도록 유념한다. 


저자는 여기서 한번 더, 독재자의 위 철칙이 민주정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강조한다. 민주국가 지도자들도 선거구 획정에 심혈을 기울이고(원칙 1), 대체 노동자들을 받아들이는 이민에 우호적이고(원칙 2), 세법을 점점 더 복잡하게 만들어 정보접근성을 낮추고(원칙 3), 소수 집단을 위한 특혜적 복지제도를 만들고(원칙 4), 소수 기업에 대한 법인세 인하를 추진한다(원칙 5). 저자는 독재자와 민주주의자의 차이는 절대불변이 아님을 강조하며, 결국 모든 정치적 결정과 정책들은 순수한 공익이 아니라 지도자와 다양한 집단간의 권력구도가 작용하는 정치적 셈법의 프레임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냉혹하고, 지나치게 날 것의 관점이다. 하지만 이런 관점에서 보면, "대체 왜 권력자들이 저런 짓을 하는 걸까?"에 대한 많은 고민들이 해소된다. 국가가 빈곤한데도 전쟁을 일으키거나, 검증된 건 없지만 상징성이 있는 청년들을 '발탁'이라는 이름으로 중책에 앉히거나, 반발을 무릅쓰고 수도를 옮기거나 하는 일들까지, '소규모 핵심 지지층에 대한 당근과 채찍, 잠재적 지지층의 확보와 수입 통제'라는 관점에서 보면 해석되는 일들이 많다는 걸 책을 읽으며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저자는 독재나 민주정이나 차이가 없다는 허무주의자, 반민주주의자인가? 저자는 민주국가 지도자들은 독재정에 비해 훨씬 대규모 연합에 권력을 의존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독재정은 극소수의 승리연합과 비교적 적은 수의 선출인단에게 의존한다. 반면, 민주정은 비교적 많은 여당 당원과 열린 지지자들을 기반으로 통치한다. 대체가능 집단, 유력 집단, 핵심 집단의 상대적 크기가 정치 형태를 구분하는 독립변수다. 따라서 각 집단의 상대적 규모를 바꾸면 정치를 혁신하고 공동체의 경쟁력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다는게 저자의 주장이다.


"언론, 출판, 집회의 자유 같은 중대한 자유를 제공하는 데는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다. 그런데도 독재자들은 이런 자유를 마치 전염병이라도 되는 듯이 피한다... 대규모 연합에 의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이 자유를 피할 수 없다. 대다수 사람에게 원하는 대로 말하고 읽고 쓰는 한편 함께 모여 자유롭게 의논하고 토론할 권리를 보장하지 않으면 승리연합을 형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규모 측근 연합에 의존하는 집권자는 부패와 족벌주의를 통해 연합 구성원을 부자로 만들어 쉽게 만족시킬 수 있다. 연합 구성원들이 부를 잃을 위험성을 무릅쓰고 현 집권자에게 효과적인 공공정책에 돈을 투자하라고 요구할 리는 만무하다. -p203"


독재국가들의 유아사망률은 극도로 높다. 독재자들이 특별히 아기를 싫어해서가 아니다. 아동보건과 같은 보편적이고 장기적인 공공투자가 소규모 연합의 승리와 존속에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독재국가의 자원과 자본은 소수 승리연합의 단기적 보상에 집중된다. 반면, 민주국가의 시민들은 특정한 지도자가 되었을 때 자신들에게 주어질 개인적 보상이 크지 않다. 그렇기에 오히려 그 돈을 교육, 보건, 과학기술 같은 장기적인 공공투자에 쓰는데 호의적이다. 


독재국가와 민주정의 이러한 차이는 전쟁의 양상도 바꾼다. 독재국가에서는 한 줌의 권력자가 별다른 원칙 없이 영토, 노예, 보물을 좇아 쉽게 전쟁이 일으키고 또 패배에 연연하지 않는다. 반면 민주국가 지도자들은 전쟁의 패배가 바로 실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전쟁에 더욱 신중하고, 만약 전쟁을 시작한다면 총력을 다해 승리하도록 애쓰며 자국 병사를 헛되이 소모하지 않기 위해 애쓴다. 바로 이것이 역사가 다윗인 민주국가가 골리앗인 독재국가를 물리치는 사례로 가득한 이유다. 지금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개인적으로는 인류 역사가 명확히 진보하고 있고, 더 많은 개인들의 자유와 안정을 보장하는 길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개인과 가정이 씨족과 국가, 타 종족으로부터 상시적인 위협과 폭력에 시달리던 근대 이전 사회와 비교해, 지금 우리 대부분은 특정 정치권력의 흥망과 관계 없이 질적으로 다른 삶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독재자의 핸드북은 권력자가 한 국가의 자원과 생산력을 독점하는 것이 독재정치에 얼마나 필수적인가를 말한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국가의 자원이 다양하고 독점되기 어려우며 다양한 산업군이 존재하고 장보가 투명하게 교류되며 대외무역과 교류가 성장에 핵심적인 나라라면 독재정치가 유지되기 어렵다는 뜻이 된다. 이를 위해선 끊임없이 소수 승리연합을 지향하는 권력자들에게 다수 개인들이 연합하여 맞서고, 소수가 아닌 다수의 권력 참여, 자유와 인권, 견제와 균형, 개방된 정보의 힘을 통해 사회의 자원을 투명하게 관리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다수 대중의 선한 의지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선한 의지는 정치로서 구현된다. 그리고 정치판은 이상보다는 물리적 법칙과 전략이 지배하는 전쟁터이다. '독재자의 핸드북'은 그런 점에서 좀더 나은 세상이 가능하다고 믿는 이들, 국가뿐만 아니라 직장과 심지어 가정 내에서까지 동일하게 적용되는 정치의 원리를 배우고 싶은 이들이라면 반드시 권하고 싶은 책이다.  



주요대목


p14 우리는 각각의 사례를 보면서 그들은 우리와 다르다고, 비정상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같이 정치의 논리, 지배와 통치의 규칙에 의해 조종된다.


p29 이상적인 세계는 어떠해야 하는가와 같은 문제들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초점은 그게 아니다... 이는 우리의 신념에 따라 세상을 개선할 방법은 찾고자 하는 바람이 없어서가 아니다. 먼저 세상의 원리를 이해해야 세상이 개선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정치판에서 사람들이 왜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는지를 밝혀야만 그들이 자신에게 이득이 되면서도 더 훌륭한 일을 하도록 이끌 방법을 찾을 수 있다.


p384 세상을 개선하는 임무는 난제임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이미 개선되었어야 마땅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감수하는 비참한 현실은 이미 극복되었어야 마땅하다. 주주들은 무일푼이 되었는데, CEO들은 부자가 되는 현상은 사라졌어야 마땅하다.


p385 모든 사람에게 멋진 세상을 만들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바가 똑같은 것도 아니다. 정치계의 세 차원인 대체 가능 집단, 유력 집단, 핵심 집단에게 무엇이 유익할지 생각해보라. 지도자와 핵심 지지자들에게 유익한 것이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유익할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하다. 만일 모든 사람들의 욕구가 동일하다면 세상은 불행해질 것이다. 따라서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때조차 정치적 현실이라는 구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해결책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해결책은 변화를 실행할 모든 사람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희망사항은 해결책이 아니다. 또한 완벽한 해결책은 우리의 목표가 아닐 뿐더러 선의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를 목표로 삼아서도 안 된다. 통치방식이 조금만 개선되어도 수백만명의 국민이나 주주들의 복지가 크게 향상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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