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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Feb 20. 2023

[에세이] Q에 대하여

범죄인의 심리를 분석하는 범죄심리상담가의 현장기록

이 글은 상담윤리와 보안유출방지사항을 이행하였으며, 글에 나오는 등장인물과 상당내용은 모두 각색되었으며 인물을 특정하지 않고 재구성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Q에 대하여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범죄인의 심리를 분석하는 범죄심리상담가의 현장기록.

내가 만났던 모든 Q에 대하여-


[들어가며]


새하얗게 페인트칠된 정사각형의 공간. 이곳 한가운데에 철제 간이의자가 2미터 간격을 두고 마주 보고 있습니다. 사람이 항상 상주하지는 않는 공간이라 그런지 문을 열자마자 약간의 한기가 느껴졌고 저는 곧바로 형광등의 전원을 눌렀습니다. 형광등 전원과 라디에이터 전원이 서로 이어져 있는지, 불이 켜지자 둔탁한 소리를 내며 라디에이터가 웅웅 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곧이어 숫자 4로 시작하는 노란색 명찰을 오른쪽 가슴에 수놓은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먼저 그 의자에 앉습니다. 이곳이 교도소라서 그런지 왠지 모르게 '투박하다.'라고 생각될 정도로 그의 몸체는 거칠게 느껴졌고 저는 다시 한번 제 허리벨트와 연결해 걸어놓은 무전기 전원이 들어와 있는지 확인합니다. 철제 의자를 뒤로 빼느라 쇠 끌리는 소리가 멈춘 자리에 저도 그 남자를 마주 보고 앉습니다. 우리의 대화가 끝날 때까지 그 남자와 저 외에는 그 누구도 이 공간에 발을 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그와 저는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한동안 서로의 눈을 마주 봤습니다.


Q: 제 이야기를 들으러 오셨다고요? 제가 또 다른 사람을 죽였다던가 하는, 그런 이야기가 듣고 싶으세요?


그도 이곳의 한기를 느꼈는지, 반쯤 내리고 있던 지퍼를 목젖까지 올리고는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습니다. 며칠 전 언론에서 그 사건의 현장검증 장면을 봤을 때,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저는 그의 행동을 꽤 흥미롭게 바라봤습니다. 과장된 몸짓, 발그레 상기된 볼과 격양된 말투, 반짝이는 언론의 카메라세례를 받으면서도 흐트러짐 없는 동공에는 빛이 날 정도였습니다. 마치 단상에 올라가 대중을 내려다보며 흝어보는 그 남자의 표정은 분명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때 뉴스언론을 통해서 봤던 눈빛으로, 그 남자는 제 얼굴을 이상하리만치 빤히 쳐다봤습니다. 그 남자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저는 준비해 온 서류봉투 속에서 몇 장의 페이퍼를 꺼내듭니다. 그가 작성했던 심리검사자료 MMPI(미네소타 다면적 인성검사) 결과지에는 꽤 의미 있는 점수들이 관찰됩니다. 특히 그의 심리적 4번 척도(반사회성)의 점수는 이미 정상범주를 한참 넘어섰습니다. 우울, 편집, 정신분열 척도 또한 세심한 동정관찰이 필요할 정도의 점수로 측정됐습니다. 무엇이 그의 내면을 이렇게 짙고 어둡게 만든 것일까요?


역사적으로 사회학자, 철학자, 심리학자, 인문학자들은 우리 '인간'에 대하여 궁금해했습니다. 인간은 왜 어떤 행위를 하게 되는지, 반대로 누군가는 왜 그 행위를 하지 않는지, 또 어떤 요인이 그들의 행위를 가중시키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기질 때문일까요? 아니면 살아가면서 경험한 환경적 요인 때문일까요? 19세기 의사이자 범죄학자였던 Lombroso는 두개골과 얼굴뼈의 모양, 이마의 크기, 치아등의 형태로 범죄인을 특정 짓는 골상학骨相學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관상은 과학이다.'라는 말을 직접 연구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 꽤 흥미롭게 느껴지지 않으신가요? 인류의 역사상 수없이 논의했던 우리 인간의 행동에 대한 결과와 그에 따른 책임은 상당히 복잡하게 얽혀있습니다. 도덕, 법, 규범, 교육, 문화, 사회, 정치 등등을 포함한 이 사회의 전반은 우리 인간 행동의 영향을 받으면서 발전하고 정립되어 왔죠. 현재 수면 위로 떠오른 소년범죄와 사형존폐여부도 이 모든 것과 서로 얽혀 풀어낼 수 없는 실타래처럼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한 채로 표류하고 있습니다. 소년법폐지와 사형제도의 존폐여부.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Q: 언론에 보도된 피해자들이 전부예요. 다른 사람들을 죽이진 않았습니다. 경찰조사와 검찰에서 얘기한 게 다예요. 어차피 사형일 텐데, 뭘 더 캐내려고 하는 거예요?

나: 아니요. 저는 당신을 조사하러 온 것이 아니에요. 저는 그저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어떤 이야기도 상관없어요. 당신이 살아왔던 환경이나 학창 시절의 기억. 부모님과의 관계, 취미나 좋아하는 영화배우는 누구인지와 같은 것들 말이에요.


남자는 한동안 자신의 손등을 빤히 쳐다보더니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습니다. 아마도 다른 사람이나 CCTV가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이겠죠. 능숙하게 주변을 살피던 남자는 이내 시선을 멈추고 저를 보며 믹스커피 한잔을 요구했습니다. 곧이어 커피포트에 물 끓이는 소리가 났고 살인과 사체유기에 대해 논하는 이 공간의 분위기와는 다른 달달한 커피 향이 이 공간을 가득 메웠습니다.


Q:.... 어떤 이야기를 해도, 상관없다는 말이죠...?


믹스커피가 든 종이컵에 입술을 떼고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무려 두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말이죠. 그는 무슨 이야기를 그토록 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그리고 또 저는 그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었을까요?


저는 살인, 시체유기, 납치, 조직폭력, 인신매매, 강간 등의 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마음을 마주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언론에 보도되어 여러분들도 익히 알고 있는 그 끔찍한 죄를 지은 상당수의 범죄인과 마주 앉아 그들을 분석하고 검사하고 상담하고 있는 것이죠. 법원은 그들에게 이수명령을 같이 선고하고 있습니다.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마약사범 재활 프로그램, 가정폭력, 스토킹, 아동학대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교육하고 상담합니다. 이 작업은 페이퍼 위에서만 벌어지는 작업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직접 그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말투, 걸음걸이, 평소의 습관, 행동관계등을 귀로 듣고 표정을 관찰해야지만 생생한 범죄의 심리와 이상행동에 대한 탐구가 가능한 것이겠죠.


 지금부터 저는 외면하고 싶지만 우리 사회의 분명히 존재하는 어두운 단상에 대해서 느꼈던 경험과 감정을 써 내려가려 합니다. 그럼 제가 있는 심리치료실로 들어오는 그들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시죠.


제가 만난 수많은 Q들은 저에게 어떤 말을 건네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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