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도영 Feb 21. 2023

소시오패스도 사랑을 할까?

Q에 대하여

인구 100만이 넘는 대도시 저녁 풍경은 항상 부산해 보입니다. 노상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불판 위에 삼겹살을 뒤집고 그 냄새가 골목 곳곳에 스며듭니다. 골목을 벗어나자 높게 뻗어있는 건물들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 횡단보도를 뛰쳐 지나가려다가 신호등이 빨간색을 띠자 일제히 그 발걸음을 추었습니다.

하루일과를 마친 사람들 표정은 가지각색입니다. 표정의 움직임에 시선을 뺏겨  더 자세하게 얼굴윤곽을 들여다봅니다. 동공의 깊이, 깊게 파인 주름, 코등과 입술, 볼 근육의 움직임으로 만들어진 각자의 표정에서 생동감이 흘러넘칩니다. 그렇다면  표정은 그 사람의 내면을 드러내줄까? 쎄요. 가 만난 사람들 중에는 를 향해 온화한 표정으로 인사를  건네지만, 사람을 살해한 후 시체를 유기한 노인도 있었고 누가 봐도 순수한  표정의  남자가 스토킹에 이어 살인까지 벌인 끔찍한 일도 있었습니다. 


부산하게 움직이던 대도시의 밤이 조금 더 진해진 시각, 이 지역에서 끔찍한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날 저녁 집 거실 TV화면에서는 사건이 벌어진 골목길 모습이 모자이크처리된 채로 비쳤습니다.  그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는 앵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죠. 원치 않는 랑을 강요하던 한 남자가 부녀자를 스토킹 하기 시작했고 본인의 입맛대로 상황이 돌아가지 않자 결국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남자는 도대체 왜 이런 짓을 벌였을까요. 그리고 사건 이후 그는 그날의 그 을 후회하며, 한 인간의 삶을 파괴한 자신의 행동 반성하며 지내고 있을까요?


Q: 너무 억울해요. 저 완전 꽃뱀한테 당한 거라니까요? 제가 왜 이곳에 들어와 있는 건지 이해가 가질 않아요.


교도소서 그 남자를 만나기 위해 심리치료실의 문을 열었습니다. 간단한 목례 후에 그와 저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마주 앉았습니다. 페이퍼 위에는  죄명, 나이, 가족관계, 초기상담목록, 상처부위나 문신여부 등의 신체적 특징, 그의 인적사항을 확인하고 리치료와 교육은 언제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켜야 할 사항들을 안내하고 심리치료단계를 구조화하는 동안에도 그는 자신이 무고를 당해 억울하게 구속이 됐다며 핏대를 세웠습니다. 

그가 핏대를 세우며 주장하는 내용은 다른 게 아니었습니다. 그저 자신에게 호감을 비치는 여성을 향해 구애를 했고 연인사이로 발전해서 성관계를 했는데, 다투는 과정에서 기분이 상한 여자친구가 홧김에 자신을 신고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지만 저는 사건내용을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범행당시 그는 혼자가 아니었고, 그의 왼쪽 가슴팍에 붙어있는 수용번호에는 공범부호가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동안 셀 수없이 많은 범죄인과 마주 앉아 서로의 눈을 바로 보며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들이 자신의 행위를 은폐하거나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경험했습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프로이트는 인간의 성격구조를 이드-에고-슈퍼에고 다음과 같은 3가지로 분류했습니다. 이드 id는 인간의 가장 쾌적인 요소를 추구하는 경향, 에고는 이러한 이드의 요구를 지연시키거나 다른 것으로 대처하여 현실적으로 해결하려 하는 경향, 슈퍼에고는 도덕과 이상을 따르는 도덕적인 원리에 의해 지배되는 향을 설명한 것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원리를 위협받는 상황이 올 때 마음의 평정이나 타협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방어기제입니다. 그는 피해 여성이 자신의 이드에 충동을 일으키는 원인을 제공했다며 그 탓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식으로 투사를 사용합니다. 또 현 상황 자체를 부정하거나 자신의 죄의 원인은 사회제도의 탓이라며 합리화하려고 시도하죠. 이는 인간의 성숙도와도 관련이 있는데, 앞서 언급한 방어기제는 가장 원시적인 수단이고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나: 그 행동에 대해서 더 할 말은 없으세요?

Q: 무슨 할 말이요? 법을 배웠다는 판사랑 검사가 무고한 사람을 이렇게 모함하고 말이야.


그는 갑자기 대화의 주제를 대한민국 형사체계의 대한 비판으로 돌렸습니다. 리를 저질러도 힘 있는 자들은 다 넘어가고 자신 같은 힘이 없는 사람들은 억울하게 엮여 들어온다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하지만 피해자에게 그 남자의 힘은 강력했고 재앙이나 다름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가 이런 비뚤어진 이상행동을 하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이제 이 사람과 저는 당분간 매일같이 만나서 대화를 나누게 될 것입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저는 그에게 건네었던 사전척도검사지와 상담 의견서를 가방에 집어넣었습니다. 정확한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스쳐 지나가듯 넘겨본 그의 심리검사지에 4번 척도 부분, 즉 반사회성이 높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까지 아직도 그녀를 잊지 못하겠다면서 서로 사랑하던 그때로 되돌리고 싶다고 얘기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이 상대방을 아끼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은 아닐 것입니다. 억압과 폭력으로 일방적인 관계, 자신의 이상기질을 무차별적으로 발현시키는 것이죠.


그 사람이 떠나고 저도 자리를 정리했습니다. 따뜻한 온기를 풍기던 라디에이터를 끄고 빠져나와있는 철제의자를 가지런히 책상밑으로 집어넣었습니다. 그가 쓰고 내팽개쳐놓은 볼펜과 종이컵, A4용지들을 쓸어 담듯 정리합니다. 다음날 제가 다시 이곳에 오게 될 때는 아마 따뜻한 온기는 없고 차갑게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만 들릴 것입니다.

그리고 제 첫 내담자였던 스토커와의 만남은, 그렇게 다음을 기약하며 끝이 났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에세이] Q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