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도영 Feb 22. 2023

잔인한 용기

Q에 대하여

자, 지금부터 눈을 감고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이 알고 있는 장소에서 따뜻한 온수물로 샤워를 마치고 와인 한잔을 마시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장작이 타는 소리와 동시에 오래된 LP판에서 들리는 적당한 볼륨의 재즈음악을 들을 때 밀려드는 안도감과 편안함. 저 거기에 제가 좋아하는 스포츠 경가 중계는 모습을요. 이승에천국 경험할 수 있다면  바로 그곳이 천국 아닐까요. 이처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쉼'이라는 행위는 분명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이번에는 상황은 그대로 두고 의식만 조금 돌려보겠습니다. 변에 아무도 없을 때, 대화를 나눌 사람 한 명 없고 '이곳에 나 혼자뿐이구나'라는 상황인 것이죠. 어느덧 노래는 끝이 났고 장작도 다 타버렸습니다. 왠지 모를 공허함과 불안, 그리고 외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이와 같이 편안함과 외로움은 앞서 설명한 비슷한 상황에서 느낄 수 있는, 서로 닮아 보이지만 분명히 다른 감정입니다. 관계에서 오는 불편함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이 보장받을 때, 우리는 평온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 시간이 꽤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거나 이 시간이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때, 혹은 아예 혼자 있는 시간을 버티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 외로움에 사무쳐서 말니다.

제가 오늘 만났던 사람도 생애동안 긴 외로움을 안고 살던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세상으로부터 자신이 소외됐다고 생각했고 가족에게조차 버림받았다고 느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외로움은 피해망상, 분노, 편집증을 동반하며 서서히 그를 잠식해 갔습니다.


우리가 처음 마주 보고 앉았을 때, 그는 제 눈을 한시도 마주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간단한 질문에도 한참 뜸을 들이거나 한숨을 내쉬었죠. 아주 조금 심도 깊은 내심을 물어볼 땐 "왜 그런 걸 물어보세요?"라면서 애꿎은 메모장에 볼펜을 찍어 누르는 행위 반복했습니다. 적대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를 유지하려는 그에게 저는 몇 장의 과제 지를 건넸습니다. 


Q: 여기다 뭘 쓰라는 거예요? 반성문이라도 쓸까요?

나: 성장과정에서 힘들었던 사건이나 경험, 그리고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며 견뎌냈는지를 써보는 건 어떨까요?


그는 과제 지를 받아 들더니 빨간색 사인펜을 집어 들고는 답변란을 제외한 여백 부분을 붉게 색칠했습니다. 저는 그의 행동에 어떤 언급도 없이 가만히 그가 색칠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주었습니다. 그러자 저의 무반응에 그가 오히려 반응하기 시작합니다. 그가 드디어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20분가량 자신의 성장과정에서의 분노를 쓰던 그가, 펜을 내려놓고 과제 지를 저에게 건넸습니다. 그러고는 자신이 적은 글을 읽는 저의 모습을 빤히 쳐다봤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은 순탄치 않아 보였습니다. 가난과 가정의 해체, 그리고 아버지의 폭력. 이러한 가정환경에서 학업은 그에게 중요한 요소는 아니었습니다. 사춘기시절 학창 시절에서의 일탈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한다지만, 돌아갈 곳이 있는 친구들은 결국 방황을 멈추고 가정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소년에게는 돌아갈 곳이 없었. 자신을 지지해 주거나 안아줄 만한 구성원과 공간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루, 또 이어지는 하루, 소년은 노숙을 하거나 청소년쉼터에서 지내며 위태로운 삶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다 이성을 만나 교제하게 됐고 아이가 생겼지만, 소년은 자신의 아이를 건강하게 부양할 의지가 없었습니다.


오스트리아 심리학자 아들러는 인간의 생활양식의 근본을 결정짓는 건 '열등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인간은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영향을 받고 현재의 자신보다 더 나은 완전성을 위해 노력하는 존재이고 이 '열등감'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심리적 건강과 자기완성을 이룬다고 말이죠. 반면 이 '열등감'을 적절히 해소하지 못한다면 신경증에 삐질 수도 있습니다. 


나; 학업을 중단했을 때, 그때의 감정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고 싶어요. 학교친구들과 갑자기 떨어져 지내야 되고 갑작스럽게 생활반경이 변했을 텐데요. 현재 연락하는 지인이 한 명도 없다고 하셨는데, 그때의 변화와 관련이 있을까요?

Q:아니요. 그렇진 않았어요. 어차피 친구들은 학교 끝나고 나서 만나면 되는 거고. 그때는 별 다른 게 없었어요. 멀어진 건 성인이 되고 나서니까.

나: 성인이 되고 나서 어떤 환경적 변화가

Q: 네. 친구들은 대학에 진학했고, 결혼하는 친구도 있었어요. 처음엔 그래도 가끔씩은 만났는데... 저는 저는 중졸에 직업도 없었고, 모임에 나가기가 꺼려지더라고요. 친구들 sns에 올라오는 사진들은 신혼여행도 가고 대학 캠퍼스 생활도 하고, 전 원룸에서 혼자 아기 키우면서 번듯한 직장도 없으니깐 그냥 다 싫더라고요. 모임 나가면 괜히 날 선 말들만 오가고, 자기들끼리 속닥되는데 절 무시하고 욕하는 게 분명했죠. 나쁜 놈들. 지들이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다고.


그에겐 보상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를 가졌을 때 가족들의 축하와 관심, 이혼 후 혼자 양육을 할 때 가족들의 도움과 지지가 있었다면 그의 삶이 벼랑 끝에 몰리진 않았을 것입니다. 처음 심리상담실에 들어왔던 냉소적인 모습과는 반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는 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 공간과 상담사의 말과 행동, 모습이 본인의 시야로 들어와 익숙해졌고 편안해진 탓이겠지요. 어떤 부분에 대해서 말할 때는 눈시울도 조금 붉어진 걸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열등감'이라는 놈이 참 지독한 게 적절히 해소되지 않으면 평생을 쫓아다니면서 이토록 사람의 생애를 괴롭 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 둘 때쯤 열등감 덩어리를 안고 살아갑니다. 열등감을 지니게 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진 않습니다. 그것을 적절한 방법으로 대체하거나 해소해서 극복해 나간다면 우리는 더 건강한 삶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겠죠.


그 남자와의 대화에서 그가 해소하지 못한 부분을 찾아내어 건강하게 해소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것이 심리상담사인 저의 역할일 것입니다. 그것이 직업문제라면 직업훈련과 연결을 해준다던가, 가족 구성의 문제라면 가족상담이나 집단을 구성해 치료를 시행할 수도 있겠죠. 제가 강력 범죄인의 심리치료를 하는 이유는 그들의 공격성을 해소하고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게끔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그들의 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사람을 읽어야, 그 심연의 어두움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죠.


남자가 떠나고 저는 그의 사건기록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그의 죄명은 '아동학대치사'.

사건내용은 끔찍했습니다. 신체 곳곳에 다발성 골절, 두개골 함몰, 압박으로 인한 내장 출혈 등등...

어느덧 수년의 시간이 흘러 그의 출소일이 이제 1년도 채 남지 않았네요.

통상적으로 우리는 다시 삶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격려의 말을 건네곤 합니다. 목적 있는 삶은 우리를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게 해 주고 그 목적을 달성하려면 세상의 지지와 강력한 동기가 필요할 때도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는 그에게 상담이 끝날 때까지도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 '포기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라는 등의 말은 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그에게 필요한 것이 용기와 격려인지, 아니면 영원한 사회로부터의 격리인지, 제 마음은 끝까지 그에게 필요한 것이 용기와 격려라는 것을 선택하지 못해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시오패스도 사랑을 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