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L 프로게이머인 faker 선수와 deft 선수가 데뷔 1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e-sports에 관심이 없으신 분들은 이를 잘 모르실 겁니다. 현재, 두 선수는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며 e-sports의 상징이죠. 이와 같은 이야기를 잘 모르시더라도 두 선수는 뉴스나 예능 프로그램에 제법 출연했기에 지나가듯 한 번씩은 봤거나 들었을 거라 짐작해 봅니다.
e-sports의 종주국
e-sports의 종주국은 대한민국이라고 합니다. 아마 제 또래에 남자라면 과거 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를 하는 것이, 보는 것이 취미인 사람들이 대다수였을 겁니다. 저도 우연히 경인방송에서 하던 스타 대회를 보고는 하는 것뿐만 아니라 보는 것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테란의 황제, slayers_boxer 임요환 선수를 알고 나서는 푹 빠지게 되었죠. 그는 우리들에게 우상이었습니다. 그가 하는 플레이에 웃고, 울고, 화내고, 즐거워했죠. 인기도 워낙 대단해서 최정상 인기 아이돌 수준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아이돌들이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지만 당시에는 아시아에서 인지도가 높은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임요환 선수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었죠. 미국에서 인종차별받던 한인 학생이 임요환 선수로 인해 당당하게 자신은 한국인이라고 자랑한다는 사연도 있었습니다.
야구의 도시에서
대다수 남자들이 스포츠를 좋아하지요. 그리고 제가 나고 자란 곳에는 야구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도시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구단에, 선수에 관심을 가지고 응원하게 되지요. 그러다 시즌이 지날수록 점점 응원은커녕 관심도 없어졌습니다.
요즘은 꼴찌의 상징이 다른 팀이지만 어릴 적에는 제가 응원하는 팀이 매번 꼴찌였습니다. 가을 야구는 과거와 상상의 산물이었죠. 물론 우승한 적도 있지만 21세기 이전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영웅적인 투수로 우승하는 구단이었기에 그 영웅이 사라지면 승리는 어려운 팀이었죠. 그래도 투수진은 막강했습니다. 타율이 안타까운 수준이었을 뿐이었죠.
그래서 매번 꼴찌라서 팬심이 없어진 건 아닙니다. 그건 의외로 마음을 붙잡습니다. 그리고 마운드에서 절대 무너지지 않는 에이스들의 뒷모습은 정말 멋있습니다. '저런 남자가 되어야지'라고 생각이 들 정도죠.
소위 정 떨어지는 곳은 다른 곳입니다. 선수들 소식을 스포츠면뿐만 아니라 시사면에서도 봐야 했거든요. 한 건이 두 건이 되고, 주기적으로 기사가 나더니, 음주 운전, 추행, 폭행, 욕설, 잊을만하면, 잊힐 때가 되면 소식이 들려옵니다.
뭐, 유명인이다 보니 좋은 않은 일에, 사람에 부딪칠 때도 많을 테고, 20대에 성공해서 그럴 수도 있다고 하지만, 한 두 번도 아니고, 한 두 명도 아니고, 자숙 기간이 끝나면 무용담처럼 자랑하는 모습에, 팬들을 징징대는 귀찮은 존재처럼 말하니 점점 마음의 허용치가 넘어서더군요.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사람들을 내가 왜 마음을 줘가며 응원해야 하지?’라고요.
e-sports는 나의 취미
그 후로 다른 스포츠 종목들들을 봤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관심이 줄어들었습니다. 올림픽 혹은 월드컵 정도만 볼 뿐이었죠. 지금은 그런 세계적인 대회가 있을 때마다 벌써 4년이 지났나 하는 감흥 정도입니다. 그렇게 제가 보는 스포츠는 e-sports만 남게 되었죠.
제가 대학생쯤 e-soprts가 제대로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10만이 넘는 관중과 국내 대기업 스폰서, 1억 대의 연봉과 상금, 게임 전문 채널과 각종 직업들이 한국 사회에서 인정받게 되었죠.
그래서 당시 매주 금요일 저녁은 게임 전문 채널인 OGN에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전 도시의 대학생이 많은 술집이면 TV도 OGN에 고정되어 있었죠. 보통은 야구를 보여주었겠지만 당시에는 스타였습니다. 그 스타리그 때문에 술이 안 팔린다며 TV를 끈 호프 집 사장님도 기억이 나네요. 모두 술은 안 마시고 tv만 보며 소리를 지르기만 할 뿐이었으니까요.
사라져 가는 스타크래프트
온라인 세상은 오프라인 세상보다 빠르게 변하는 것 같습니다. 야구와 축구는 100년을 넘기며 지속되었으나 스타는 10년을 넘기는 정도였습니다. 대학생이 직장인으로, 20대가 30대가 되면서 관중은 줄어들었습니다. 저도 너무 바빠 tv를 볼 시간이 제대로 없었죠. 늦게 까지 공부를, 일을 해야 했고, 라이브를 챙겨 볼 수가 없었습니다.
새로운 10대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여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습니다. 화려한 그래픽과 재밌는 게임성을 가진 신작 게임들은 계속 나오고, 스타의 인기는 예전만 못 해졌습니다. 그 후, 보는 e-sports에서 스타를 대신하거나 같이 할 게임들이 등장했지만 스타의 인기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프로게이머들의 승부조작 사건이 일어나면서 급속도로 망가져 갔습니다. 떠나가는 관중에 스폰서들이 같이 떠나고, 구단이 없어지고 대회가 없어졌습니다. 회사 동료와 상사들이 이번 스타리그가 마지막이라고 전해주었을 때, 모두 뭔가 서운하고 허전해하며, 스타리그를 보던 과거를 이야기하며 추억을 나누었습니다. 세월의 흐름을 또 다른 곳에서 느끼게 되었죠.
새로운 종목, Legue of Legends(LOL 혹은 롤)
그러다 회사 현장에서 일하는 20대 초반 직원들에게 LOL(롤)이라는 게임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대학생 때 비슷한 장르의 카오스라는 게임을 했기에 저에겐 큰 신선함은 없었습니다. 요즘에는 이런 게임이 인기가 있구나 하고 넘겼죠. 딱히 할 시간도 마땅치 않구요.
그런데 LOL의 인기는 점점 올라갔고, 이내 오프라인 대회가 열리고, 작은 프로 구단이 생기고, TV에서 중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대학가 술집에서 혹은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 자취방에서 우연히 보곤 했죠. 정말 어쩌다 우연히 faker 선수가 데뷔하는 경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저녁에 볼 게 없어서 습관처럼 보던 게임 방송을 봤을 뿐이었죠. 그렇게 그 경기를 시작으로 faker의 경기를 챙겨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늘 그의 승리를 응원하게 되었습니다.
프로게이머 경력 10년 ~ing
데뷔 10년이 되었으니 그를 응원한 것도 어느덧 10년이 되었군요.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10년이라고 하니 꽤 긴 시간이네요. 더욱이 고등학생 때 데뷔해서 군대 가기 전에 은퇴하는 짧은 선수 생명을 가지는 프로게이머로서는 긴 시간입니다.
그래서 우승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시기도 지나고 슬럼프도 있었지만 계속 응원할 수 있었던 것은 신기에 가까운 플레이를 하며, 패기 넘치는 선수에서, 한 사람으로서, 한 선수로서 단단해져 가며 성숙해져 가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종목 프로 선수들은 어린 나이에 억대 연봉으로 들떠서 시사면에 등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faker 선수는 e-sports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기에, 그러한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시장 전체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겁니다. '역시 어린 나이에 성공하면 그렇지'라는 말들이 나돌았겠죠. 하지만 faker 선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같은 해 데뷔한 동갑내기 deft 선수도 마찬가지죠. 이 두 선수는 흔한 욕설 한 번 하지 않으며, 후배들에게 모범이자 목표가 되었습니다. 언제나 우승컵을 목표로 세계에서 최고의 프로게이머가 되기 위해 한결같이 노력하고 고뇌하는 모습들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그들을 응원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두 선수 모두 응원하게 되었네요.
e-sports가 sports인 이유
팬에게 감동하다
deft 선수가 작년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고민했습니다. 군대 갈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가장 큰 세계 대회인 worlds(롤드컵)의 성적에 따라 진로를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deft 선수의 팬들은 마지막일 수도 있는 그의 플레이를 응원했습니다.
특히 중국에서 2년 동안 활동하고 우승한 경력이 있기에 많은 중국 팬들이 현장을 찾아 열성적으로 응원하며, 그의 승리에 웃고 울었습니다. 현재의 유니폼뿐만 아니라 과거의 유니폼도 입고 말이죠. 그때부터 한결같이 팬이었다는 것을 말하듯이요. 그런 감동적인 팬들의 모습에 deft선수를 응원하는 팬이 더욱 늘어났습니다. 심지어 타 팀 팬들도 자신들의 팀과 함께 DRX를 응원했습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선수는 팬의 응원으로 먹고산다는 말 때문일까요? 결론은 소년만화처럼 faker 선수가 속한 팀인 T1을 결승전에서 이기고 우승하였습니다. 솔직히 deft 선수가 속한 팀인 DRX가 우승할 거라고 예측한 사람은 팬들도 몇 없을 겁니다. 국내 리그에서 그리 좋은 성적이 아니었습니다. 겨우 worlds에 턱걸이로 출전 자격을 얻었죠. 반대로 T1은 모든 대회에서 결승에 오르는 성적을 가지고 있었고, 대회 내내 엄청난 경기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DRX가 4강만 들어도 정말 잘했다는 말을 하였죠. 하지만 인터뷰에서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중꺾마)를 남기며 한 경기 한 경기, 팀이 진화하여 위로 올라갔습니다. 기자의 좋은 포장이 있었지만 deft 선수의 인터뷰의 요지가 잘 전달되었습니다. 그 후로 대유행어가 되어 각종 분야에서 쓰이며 도배되었지요. 제가 두 선수보다 나이 많은 형이지만 여러모로 많은 것들을 배웁니다. 그러니 10년째 응원하고 있지요.
우리 팀, 우리혁
'faker가 아니지만 deft가 우승해서 그나마 다행이다. faker는 이미 worlds 3번이나 우승했잖아'라고 생각했지만 며칠 동안 씁쓸함 가지 않더군요. 오랜만에 worlds 결승 진출이기도 했고, 4번째 우승으로 다시 새로운 역사를 쓰기를 바랐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역시 난 slayers_boxer 임요환 선수가 SKT를 창단했을 때부터, faker가 데뷔할 때부터 팬이구나'라고 느꼈습니다. (faker 선수는 SKT LOL 게임단 창단 멤버로서 현재는 팀 이름이 T1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임요환 선수도 현재 T1소속입니다. 2편에서 관련 이야기를 전합니다.)
한 발, 한 발, 소중한 승리
이번 시즌은 어렵다는 경제 전망으로 메인 스폰서들이 지출을 줄였습니다. 선수들의 연봉이 국내 스포츠 최고 수준(야구, 축구 혹은 그 이상, faker 선수는 국내 스포츠 최고 연봉)이고, 감독, 코치, 스탭에 3군까지,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아주 많은 운영비가 들어갑니다. 그래서 2군 선수들을 승격시켜 1군에 데뷔한 팀들이 두 팀 있습니다.
역시나 고인물들인 선배 선수들에게 지기만 할 뿐이었죠. T1 상대로는 보는 이들이 안쓰러울 정도로 지기도 했죠. 프로의 세계에서 상대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은 상대를 무시하는 행위이기에 올바르다고 생각하지만 선수들 마음이 꺾이는 것이 아닌가 생각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패배들 속에서 실력이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는 게 보이더니 결국 첫 승을 하였습니다. 그때 선수들이 너무나 좋아해 발을 구르던 모습이, 울던 모습이 흐뭇하고 감동적이었습니다. 프로라고 하지만 아직 20살도 되지 않는 고등학생들이 10살도 안 된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으로 승리를 만끽하던 모습이 너무 좋았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타 팀 팬들도 축하하고 좋아했죠.
한 발, 한 발 의미 없는 것은 없고, 하나의 승리도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선배 선수들도 잊지 않았으면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이렇게 e-sports에는 경쟁뿐만 아니라 노력, 열망, 순수한 기쁨과 감동이 함께합니다.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이 있습니다. 이러니 사람들은 게임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보는 것에도 희로애락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요? 응원하는 팀이 나의 팀이기에, 우리의 팀이기에 이기면 기쁘고, 지면 짜증 나고, 우승하면 하루 종일 그냥 미소 짓게 되고, 그러지 못하면 우울한 마음이 드는 것이 아닐까요?
그것이 스포츠 아닐까요?
앞으로 10년 더 현역이기를
10년, 앞서 말했듯이 프로게이머에게는 긴 시간입니다. 그래서 임요환 선수처럼 '나이가 들면 은퇴하겠지'라고 마냥 생각했는데 10년이 지났어도 승률이 90%가 넘는 그가 가진 실력을 봐서는 은퇴는 아직 먼 이야기 같습니다. 물론 군대가 있기에 그리 긴 시간은 아니겠지만 올해 아시안 게임도 있고, 혹시 아나요, 제대 후에 복귀가 faker라면 가능할 지도.
10년 동안 국제 대회(worlds 3회, MSI 2회) 5회 우승, 국내 대회 LCK 10회 우승을 이루었습니다. 어마어마한 성과죠. 그뿐만 아니라 프로다운 모습으로 후배들의 모범이자 목표가 되어 faker라는 이름의 무게는 프로게이머의 무게이자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팬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죠. 제 인생의 많은 기쁨 중에 15회는 그의 우승이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나의 기쁨을, 환희를 늘려주시길. 우리혁 믿는다!
2편은 산업으로서 e-sports에 대해 조금 알고 있는 정도로만 이야기하려 합니다.
해야 하는 것들이 있고, 근심이 있는 일이 있어 글이 오랜만이네요. 계획은 이 글을 일요일에 올릴 생각이었습니다. 그날이 LCK 결승이 있었거든요. 이 날 LCK 11번째 우승을 하면 보여드리려고 했습니다. 기분이 아주 좋을 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준우승하고 말았네요. 그래서 늦어졌어요. 생각만 하면 짜증이!!
관계자들이 faker 소속팀인 T1인 압도적인 승리를 예상했지만 개인적으로 상대팀인 젠지 선수들의 경기 전날, 인터뷰를 보고는 이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좋아하는 선수들이고, 관계자들은 작년보다 못할 거라 했지만 개인적으로 올해 팀이 최고의 조합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플레이오프 전과 달리 마음 가짐이 다르더라구요. 그 과정을 거치며 실력뿐 아니라 마음이 단단해진 거 같았습니다.
게임은 심리, 멘탈이 정말 중요한 스포츠입니다. 그리고 결승은 당일에 끝나기에 그날의 상태가 정말 중요하지요. 평소의 실력이 앞선다고 해도 결과는 달라집니다. T1에는 faker 선수가 국내 프로게이머 최고령이지만 나머지 선수들은 데뷔 3년 차 정도라, 개인적으로 팀 자체가 마음가짐이 덜 여물었다는 느낌이 조금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예상했기에 이번에 좀 혼나면 국제대회에 우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작년에는 준우승만 했거든요.
그래서 예상했기에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안 괜찮더라구요. 선수들은 괜찮다고 하는데, 전 안 괜찮아요. 작년 worlds에서 준우승하고 손을 떨며 우는 T1의 keria 선수가 생각나 더 안 괜찮더라구요. 오랫동안 달려온 목표를 눈앞에서 놓쳐 허무함에 눈물이 났다는 말이 너무나 와닿았어요. 이 정도 규모는 아니지만 저도 그런 경험이 있어서 깊이 공감할 수 있었어요. 그런 건 우승하면 싹 나아지는데 말이죠.
그래서 '우리가 더 잘한다'가 아니라 '우리가 이길 수 있다'라는 마음으로, 도전자의 마음으로, 챔피언이 되었을 때는 챔피언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가지고 승리하고 우승하길. 다시 절대 지지는 않는 SKT(T1)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