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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온써니 Nov 07. 2023

독서치료 모임 후 단상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지점

* 30여 년을 기자 생활을 하고 은퇴하신 분이 계셨다. 기자로 활동하시면서 대통령만 빼고 미화원부터 장관까지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고 하셨다. 그 결과 일의 종류에 상관없이 남들이 보기에 단순노동 같아 보여도 한 가지 일을 이삼십 년 이상 한 사람들은 그 사람만의 아우라가 있고 그 분야의 노하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셨다고 하셨다. 책을 좋아하는 내가 도서관에서 일을 해도 책과 관련 없는 하기 싫은 일이 훨씬 더 많이 하게 된다. 그래도 어차피 돈 때문에 일을 해야 한다면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사랑하기에 그나마 낫다는 생각은 든다. 

 

보람과 재미를 느낄 때도 있지만 정말 돈만 아니면 당장 때려치우고 싶을 때도 많은데 기자로 퇴직하신 분의 말씀을 듣고 일 자체에서 의미를 못 느끼는 순간에도 내가 같은 일을 오래 버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 생각으로 힘들 때마다 스스로를 다독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혹시 퇴직 후 특별히 남는 게 없다고 느껴지더라도 낙담하지 말고 한 분야에서 오랜 시간을 버틴 나 자신에게 칭찬해 주어야겠다. 나의 인생의 의미는 팩트보다는 나만의 해석이니까

 

* 도서관 모임에 나오시는 분들은 대체로 경제적으로 안정된 분들이 많다. 남들이 보면 무슨 걱정이 있겠냐 싶은 분들이 대다수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남몰래 느끼는 공허감, 외로움, 고통들을 하나씩 꺼내놓으신다. 모임 중에 특별한 해결 방안이 나오지 않더라도 나만 외롭고 공허한 게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는다. 걱정은 없지만 열정이 없어 무기력하다고 말씀하셨다가 한참 후에 다른 말씀 하시면서 하루하루 감사하는 마음으로 행복하다는 모순된 말씀을 하시는 분도 계시는 데 어쩌면 이것이 우리의 마음인 것 같다. 어느 날은 정말 살만하게 느껴지다가도 이유 없이 갑자기 무너지기도 한다는 것을. 어떤 날은 희한하게도 동시에 두 가지 마음이 들기도 하는 것이 인간의 간사한 마음이다. 

 

그런 복잡한 심경을 매일 보는 가족이나 지인보다 오히려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더욱 솔직히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줄줄이 이어지는 솔직한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묻어두었던 나의 이야기도 스르르 꺼내게 되고 진행자이니 나도 말씀을 들으며 말하며 위로와 힘을 얻는다. 하지만 시간제한이 있는지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를 어디서 어떻게 끊어야 하는 자기가 제일 큰 고민이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살았는지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 애썼는지 나의 은밀하고 솔직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이 부족했는지 새삼 느껴지는 순간이다. 

 

모임이 끝나고 한결 편안하고 밝은 얼굴로 나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우리는 진실한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지점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아무리 사는 게 녹녹지 않더라도 누군가와의 맞잡은 손이 삶의 이유가 되고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시간을 통해서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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