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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아찌 Jan 31. 2021

밀도 있는 삶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에 대한 고찰


딸이 어디서 사 왔는지 큼지막한 공갈빵을 가지고 왔다. 아주 오래전에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먹어본 적이 있어서 낯설지는 않았다. 꽤 바삭하고 맛있던 기억이 있었다. 순간 빵 이름의 유례가 궁금해졌다. 예전에 공갈빵은 중국 다롄의 빵 요리라고 한다. 꿀을 바른 안쪽이 텅 비게 부풀도록 구운 중국식 호떡으로, 겉으로 볼 때는 크지만 속은 비어 있기 때문에 ‘공갈빵’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인천 차이나타운 일대와 중구 신포동 일대의 전통시장, 부산 차이나타운에서 판매하는 공갈빵이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인천 차이나타운에 화교 가족이 4대째 운영하는 복래춘(1951년 개업)은 ‘공갈빵’이라는 이름을 처음 붙인 중국 전통 과자점으로 알려졌다. 3대 사장이 빵 속이 텅 비어 있어 ‘공갈친다’는 항의를 받았고, 그 뜻을 몰라 그냥 ‘공갈빵’이라고 이름 붙여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공갈빵 하나를 다 먹었음에도 작은 찐빵 하나를 먹은 것보다 못한 포만감이 이 빵의 특징이라 하겠다. 맛이 있음에도 공갈빵이라는 불명예를 얻은 까닭은 아무래도 빵의 밀도에 있을 것이다.

밀도(密度)란 무엇인가? 그 사전적 의미는 일정한 면적이나 공간 속에 포함된 물질이나 대상의 빽빽한 정도, 혹은 일정한 범위 안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 충실히 갖추어진 정도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삶에도 밀도가 있지 않을까? 모든 사람은 오래 사는 것을 부러워한다. 장수하기 위해 몸에 좋다는 건 아끼지 않고 먹는다. 그러나 오래 산다 하여 인생의 밀도가 높다고 하진 않을 것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산 사람은 무드셀라로 969세로 성경에 기록되어있다. 성경에서는 노아 홍수가 있기 전 그가 살던 시기에는 평균 수명이 900세가 넘었다고 한다. 그러나 무드셀라가 천년에 가깝도록 살면서 삶의 흔적은 크게 기록되어 있지 않다. 반면, 당시로는 평균수명에 훨씬 못 미쳐 살다 간 에녹이라는 사람은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기록하고 있다. 360년을 살았는데 그가 믿는 하나님과 300년을 동행하다 하늘에 불림을 받고 승천했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이 땅에서 장수하는 것이 복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당시 평균수명 900세에 삼분의 일 밖에 살지 못한 에녹은 젊은 나이에 요절한 지지리 복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를 그렇게 보지 않으며, 가장 의미 있고 행복하게 살다 간 사람으로 간주하고 있다. 예수는 서른셋에 인류를 위해 죽임을 당했고 인류 역사상 가장 영향력을 끼친 위대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으며, 굳이 종교지도자나 세계사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한국 근대사 인물만 보아도 인생이 양이 아니라 질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꽃다운 나이에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다 죽은 유관순이 그러하고, 도산 안창호의 밀도 있는 삶은 또 말해 무엇하겠는가!

사람의 평균수명이 80세라고 가정할 때 살면서 먹고 자고 배설하는 시간을 계산해보면 무려 30년은 족히 사용한다고 한다. 길지도 않은 인생의 시간을 생리적인 욕구를 위해 쓰는 셈이니 남은 시간이라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사용해야지 않을까? 그런 이유로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는 TV를 보지 않는다. 시간도 아까울 뿐만 아니라 내가 바보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 시간에 음악 감상을 하며 명상에 잠기거나 차라리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에 시간을 할애한다. 세상 돌아가는 건 알아야 않겠냐고들 하지만 그래도 알건 다 알게 된다. 아니 몰라도 상관은 없지 싶다.

각자 살아가는 방식에 따라 삶의 질량 즉, 밀도가 다를 것이다. 내 삶의 면적에 빽빽이 뭔가를 채워야 밀도가 높아지는 건 자명한 일일 것이다. 고로 삶의 본질에 충실해야만 한다. 나의 갈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한다. 누가 보든 안보든 누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내게 주어진 일과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굿굿이 걸어가야 한다. 그것이 삶의 본질이고 밀도 있는 삶이기에..

솔직히 고백하겠다. 나는 세 아이를 양육해야 할 책임이 있는 아빠로서, 또 한 명의 사업가로서 매일 실패를 경험한다. 그리고 나는 성공하든 실패하든 모든 현상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의견을 공유하면서 학습하며 살고 있다. 동기부여나 목표의식이 떨어진 것은 아닌지, 질보다는 양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진 않은지, 듬성듬성한 삶에서 밀도 있는 삶으로 변신하는 삶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하여, 나는 오늘도 밀도 있게 살아보리라 다짐해본다. 향후 내가 얼마나 더 살지 모르겠으나 오늘만 살고 죽더라도 후회 없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보았다. 삶의 가치는 분명 양이 아니라 질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그리고 적어도 나의 인생이 공갈 인생이라는 소리를 듣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앞으로 공갈빵은 먹지 않으려 한다. 공갈이라는 이름도 맘에 안 들기도 하거니와 공갈빵이 맛은 있기에 행여 공갈 인생도 나름 의미가 있는 건 아닌가라는 마음에 동요가 일까 봐서다.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조금 더 밀도 있는 삶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2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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