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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희 Apr 20. 2024

부자 친구를 만나서 부러우면 지는 걸까?

집들이 다녀와서


진짜 좋은 집에 초대를 받았다고 하니, 다른 친구가 하는 말

"부러우면 지는 거다!"

부럽다는 느낌은 긍정적 감정일까? 아니면 부정적 감정일까?

내가 원래 그런 감정을 잘 못 느끼는 사람이었는데, 코칭을 배우고 감정을 배우면서의 부작용 중 하나가 부정적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엔 부러우면서 유쾌하지 않은 기분도 느껴봤다. 내가 못 가진 것을 남이 가졌을 때 느끼는 씁쓸하고 묘한 기분.


그런데 우리는 이런 감정의 발생을 이기고 지는 승부의 세계로 밀어 넣고 원천 봉쇄해 버린다.

부러워하지 말라고.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지지 않기 위해서 부러워하면 안 된다는 당위성이 만들어진다. 왠지 그럴듯하다.


장기하의 노래 "난 하나도 부럽지가 않아!"가 대중의 사랑을 받은 것을 보면 부럽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에 대한 부러움이 있는 것 같다. 결국 남 부럽지 않은 사람을 사람들은 부러워한다.


부럽다의 사전적 의미는 "남의 좋은 일이나 물건을 보고 자기도 그런 일을 이루거나 그런 물건을 가졌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네이버를 찾아보니, 이 단어는 ‘불’과 ‘업’으로 이루어진 파생어인데 ‘-업-’은 ‘믿다/미덥다’와 같이 일부 동사에 붙어 형용사를 만드는 파생어이다. 그러나 ‘부럽다’에서 ‘-업-’을 제외한 어간 구성 요소인 ‘불-’은 정작 어떤 요소인지 파악하기 어렵다고 한다. 미덥다는 믿다는 것에 기원한다면 부럽다는 불다? 불만하다? 어떤 유래가 있었던 것인지 궁금해진다.)


그런데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이 꼭 부정적인 것일까?

심리학적으로 보자면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채우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 성장의 원동력이 된다.

심리학자 아들러는 우리가 보다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은 열등감에서 기인한다고 이야기한다. 열등감은 내가 원하는 수준에 못 미친다는 느낌이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삶의 주목적이 다른데, 우월성을 추구하는 부류가 그중 한 축을 이룬다. 이들이 움직이는 주된 원동력은 열등감이다. 나 또한 이런 부류로 진단되었다. 내가 회계사가 되고 나서, 40대에 박사학위를 받은 것도, 지금 또 코칭을 배운다고 애쓰는 것도 모두 내 부족함을 채우기 위함이다. 내 친구 김박사가 부러웠고, 지금은 코칭을 아주 잘하는 마스터 코치님들이 부럽다. 난 맨날 지는 건가?

아들러는 열등감과 열등의식(열등감 콤플렉스)은 다르다고 이야기했는데,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 것이 부러움의 감정을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아들러는 열등의식은 열등감이 적절하게 극복되지 않은 병리적 상태라고 이야기한다. 즉,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을 보고 내가 그와 비슷해지기 위해 성장하기 시작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열등감에 대한 태도가 무기력으로 나타나거나, 세상에 대한 원망 등으로 발현되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결국 부러움이 문제가 아니라 부러움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문제인 것이다. 부러워서 나를 발전시키는 경우가 있고, 부럽지만 나는 결코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고 실망하고 슬퍼하며 포기하는 태도를 취할 때가 있다. 당연히 후자일 경우 기분이 불쾌하다. 남이 부러울 때, 내가 그렇게 돼야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이고 싶다는 불가능을 꿈꿀 때, 그래서 그 꿈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그 마음이 가장 아프고 씁쓸할 것 같다. 


멋진 친구의 집을 둘러보며 "와~ 부럽다~"라는 내 마음의 감정은 어느 쪽이었을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일단 나도 집이 있고, 내 집에 만족하기 때문에 집 자체가 부럽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그 집에 멋지지 않았다는 건 아니지만, 막 부럽다는 느낌은 없었다는 뜻이다. 그럼 뭐가 부러웠을까? 친구들이 부럽다고 그 친구를 칭찬해 주며, "너 너무 행복하겠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일까? '나도 행복한데.. ' 인정받고 싶었던 걸까?


그 친구 남편이 전문 투자자이다. 그래서 아마도 투자로 번 돈이 클 것으로 우리는 추정했다. 아, 나도 투자를 잘하고 싶은데.. 시드 머니도 더 키우고 싶은데.. 아직은 내 실력에 맞는 자금만 운영하고 있지만, 나도 언젠가는 투자 능력을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게 부러웠나? 그런데 이 감정은 그리 씁쓸한 맛은 아니다. 오히려 동기를 부여해 주는 담백한 맛이다.


그럼 내 씁쓸함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바로 "크고 멋진 집"은 "행복함"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고, "너는 행복하겠다!!"라고 단정 지어버리는 그 말이었나? 그 친구가 그 집을 가졌기에 인생의 모든 면이 행복해졌을까? 그건 아닐 수도 있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생각났다. 착하구나~라는 말을 많이 들으며 자란 내 동생은 그것이 자신의 행동을 제약했다고 회고한다. 마찬가지로 "넌 행복한 아이야~"라고 남이 계속 말해버리면, 내가 우울하고 힘들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들 수도 있지 않을까? 그 친구에게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난 세상 1위의 부자에게도 힘든 마음이 들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좀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그런데 진짜 그런 이유였을까? 갑자기 "샘난다"는 단어가 떠올랐다. 샘난다의 사전적 의미는 다른 사람이 가진 것 또는 처지를 지나치게 부러워하며 그것을 갖기를 바라다로 나와있다. 부러운데, 과하게 부러워하면 샘나는 것이다. 샘나는 건 확실히 부정적 의미를 내포한다.

종이 한 장 차이 같다. 중립적 부러움과 조금 과한 부러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내 감정에 샘난다는 이름이 찰떡처럼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가 샘이 났었구나. 

인정하니까 마음이 후련했다.


집에 돌아와 "내 집이 최고지", "그런데 여기랑 저기를 좀 더 치우고 정리해 봐야겠군"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부엌 수납장 하나를 싹 정리했다. 

그리곤 장기하 노래를 틀었다.


아 부러우니까 자랑을 하고


자랑을 하니까 부러워지고


부러우니까 자랑을 하고


자랑을 하니까 부러워지고


부러워지고


부러워지고 부러우니까


자랑을 하고 자랑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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