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형 엄마의 F딸 육아일기"란 책을 써볼까 했더니..
차를 타고 가며 내가 딸에게 말했다.
나) 내가 에세이를 써볼까 해, 제목은 "T형 엄마의 F딸 육아일기".
딸) 그런 책을 누가 읽어?
나) 나 같은 T형 엄마들?
딸) 나 같은 F형 딸들은 안 읽을 듯
나) 그래? 읽으면서, 아 우리 엄마만 그러는 건 아니구나.. 아, 이런 성격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라고 이해가 되면 엄마랑 소통할 때 도움이 되지 않을까?
딸) 음.. 그럴 것 같기도 하고..
T형 엄마와 F형 딸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써보면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을 것 같다.
태어나보니 엄마가 수학과 출신의 극 T형의 회계사라면?
이 세상 사람들이 다 나 같은 줄 알고 살던 한 여자가 자신과 너무나 다른 성향의 딸 둘을 키우게 된다면?
객관적으로 둘 다 쉽지 않은 상황일 것이다.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바탕으로 모녀가 서로를 이해하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물론 아직도 서로 완벽하게 소통하지는 못하지만, 갈등 상황을 매번 숙고하며 조금씩 소통의 기술을 연마해 나가는 모습을 리얼하게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생각, 내 경험, 내 감정을 적는 글을 써야 한다.
블로그에 세금이나 회계, 투자나 가계부 쓰기 등 정보성 글들을 꾸준히 써왔다.
처음에는 정말 나 자신의 기록이었다.
내 강점 중 하나가 "정보 수집"이다. 뭔가 새로운 정보는 내 것으로 잘 기록해 두고 싶은 욕망이 많다.
그러다 보니 "기록하기"와 "정리하기"는 나의 오래된 습관이다.
책을 읽어도 정리해서 기록해두고 싶고, 세금 이슈에 대해 공부하고 나면 역시 정리해서 기록하고 싶어 진다.
특히 세금 관련 이슈는 돌아서면 잊어버리기 쉬워서, 내가 나중에 참고하려는 목적으로 적기 시작했다.
이런 정보성 글을 쓸 때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정확성"이다.
믿을만한 출처를 확인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검증하는 단계가 중요하다.
틀린 정보를 기록하지 않는 것이 관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사견이 들어가는 일은 많지 않다.
글의 80%가 사실이고 20% 미만이 나의 견해나 해석이다.
하지만 앞으로 쓰고자 하는 글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이런 글을 에세이라고 하는 것 같다.
내가 쓴 최초의 에세이는 회계사 합격수기가 아닐까 싶다.
엄마가 어딘가 잡지에 실린 나의 합격수기를 보관하고 계시다가 나에게 보여준 적이 있다.
내가 봐도 재밌었다. 내 이야기라 재밌었을 수도 있다.
'그 시절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또는 이 생각을 이때부터도 하고 있었다니, 참 신기하네'
그 이후에 다시 일기 같은 글을 쓴 것은 첫 아이를 낳고 난 후였다.
당시 100일간 글을 쓰면 책으로 만들어주는 서비스가 있었다.
지금 검색해서 찾아보니 "체리북"이란 서비스다.
이름이 우리 딸 이름이랑 비슷해서 더 인상적이었다.
당시 나는 코카콜라보틀링이란 외국계 회사에서 내부감사인으로 일하는 워킹맘이자,
주중엔 아이를 인천 시댁에 맡기고 주말에만 가서 보는 주말 엄마였다.
말이 워킹맘이지, 사실 평일엔 거의 싱글처럼 마음 편히 일했고,
주말만 시댁 가서 아이와 놀아주다 오는 그런 엄마였다.
아이를 임신했다고 하니 시어머님이 먼저 아이를 봐주시겠다고 하셨고,
나는 그게 그렇게 고마운 일인지도 잘 몰랐다.
또한 아이는 어떻게 느낄지 그런 고민도 안 했다.
그냥 그렇게 주말 엄마로 지냈다.
주말에 아이를 보는 시간은 소중했고, 일요일 밤 아이에게 손을 흔들고 나올 때면 허전했다.
아이는 할머니 등에 업혀서 울지도 않고 손을 흔들어 주었지만,
뭔가 눈을 마주치지 않음으로 서운한 감정을 회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내가 느낀 감정 역시 미안한 감정이었는지, 아쉬운 감정이었는지 정확히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주중에도 뭔가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고,
월요일 아침 일찍 회사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아이에게 글을 썼다.
마침 책까지 만들어준다고 하니, 더 열심히 썼다.
내가 쓴 첫 번째 책이 약속대로 도착했다.
나는 아이가 글을 읽기 시작한 이후 그 책을 선물로 주었다.
빨간색의 자그마한 책은 내가 딸 한 명의 독자만을 위해 쓴 책이었다.
그때는 "글쓰기"를 잘하는 것이 어떤 건지 알지도 못했고, 고민도 안 했다.
지금은 어떻게 해야 많은 사람들이 재밌게 읽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다양한 글 쓰기 책들을 읽어 봤지만, 아직은 글을 잘 쓴다는 것이 뭔지 모르겠다.
"힘 있는 글쓰기"라는 책에서 저자 피터엘보는 자신만의 목소리가 담긴 글을 쓰라고 한다.
그러기 위해 엉망이더라도 내 생각을 마구 쏟아내는 글들을 많이 써봐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독자를 의식하지 않은 날 것의 글들을 많이 써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내가 브런치 글들을 많이 알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드는 것도 아마 이런 이유인가 보다.
아직은 내 글이 날것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독자를 의식하면서도, 독자를 배려할 역량은 안 되는 상태.
공개하기는 하지만, 아직 공개하기는 자신 없는 상태.
그런데 내 고등학교 친구가 내 브런치 글을 다 읽었단다.
그리고 내게 이런 카톡을 보내왔다.
와, 재미, 잘 읽힘, 배움, 생각하게 하는 글이라니!!
용기가 생겼다.
아마 저 카톡이 없었으면, 매주 한편씩 쓰자는 나와의 약속을 못 지켰을 것이다.
지난주도 이미 약속을 어겼으니까..
여기까지 쓰고 나서 한동안 멈추었다.
다시 읽어보니, 이 글을 어찌 마무리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
한 글에서는 한 가지 이야기만 하라고 했던 것 같은데 지금 내 글은 그렇지 못했다.
왜 이 글을 쓰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친구의 카톡)와
내가 쓰고 싶은 책의 주제, 그리고 내가 과거에 썼던 에세이에 대한 이야기까지,
세 가지 이야기가 한 글에 담겼다.
그냥 이런 글이라도 많이 써보는 게 좋다는 이야기를 믿고 이 상태로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그냥 이렇게 끝!
(이 글을 재료로 다음엔 더 멋진 글을 써낼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