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할 걸 그랬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
집은 쉼의 공간이다. 고갈된 에너지를 채우고 삐걱거렸던 마음을 기름칠하고 조이는 곳이다. 어떤 방해 없이 온전히 몸과 마음을 충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힘들었던 어제를 뒤로하고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고 다시 내일을 꿈꿀 수 있다.
코로나 19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지극히 개인적인 이 공간의 의미는 더욱 특별해졌다. 집을 꾸미는 데 시간과 비용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많아졌단다. 관련 업계도 예상하지 못한 호황에 어리둥절할 정도라니 말이다. 한 방송사에선 집 정리를 콘셉트로 한 TV 프로그램 ‘신박한 정리’를 선보였다. ‘나만의 공간인 집의 물건을 정리하고, 공간에 행복을 더하는 노하우를 나눈다’는 게 기획 의도. 지난 6월 29일 첫 방송에서 같은 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고, 매주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갈아치우는 중이다.
느지막이 아이를 재우고 이리저리 TV 채널을 돌리다가 화면에 눈길이 머물렀다. 전문가의 손길이 닿기 전 의뢰인의 집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거실 절반은 아이의 장난감이 차지하고, 제 자리를 찾지 못한 잡동사니가 시선 닿는 곳곳에 흩어져 있고, 부부에게 허락된 공간은 소파나 방 한편 정도. 우리 집을 보는 것 같았다.
‘미니멀 라이프’가 트렌드라지만, 아이 키우는 집은 이를 실천하기 쉽지 않다. ‘육아는 장비빨(육아용품을 활용하면 육아가 한결 수월하고 편리해진다는 뜻)’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엄마들 사이에서 입소문 난 육아 아이템은 다 이유가 있었다. 아이가 자랄 때마다 발달 시기에 맞는 교구와 동화책까지 더해지니, 집은 점점 채워지기만 했다. 우리 부부에게 집 정리는 늘 숙제였다.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곳이라야 할 집이 왜 불편하기만 할까. 퇴근 후 어지러운 거실 모습에 왜 화가 날까. 아이를 키우는 집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여겼는데, 정말 방법이 없는 걸까.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TV 프로그램에서 그 답을 찾았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
‘공간은 사람을 닮는다’는 말이 있다. 정돈 안 된 집은 쓸데없는 감정과 스트레스를 떨쳐내지 못하는 내 모습과 닮아 있었다. 정리할 시간이 없어서, 어디서부터 치워야 할지 막막해서,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그동안 나는 그것들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미루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는 동안 내 마음은 더 복잡해졌고, 나만의 공간도 잃어버렸다. “비우면 삶이 단순해져요. 나한테 필요하고 소중한 것만 남기면, 그것을 더 소중하게 간직할 수 있어요.” ‘신박한 정리’에서 미니멀리스트로 등장하는 신애라의 이야기가 내내 맴돌았다.
“우리, 집 정리 좀 해볼까?”
남편에게 아이의 놀이 공간으로 내어줬던 거실을 우리의 공간으로 다시 바꿔보자고 제안했다. 속에 담아뒀던 말을 꺼내기만 했을 뿐인데 왠지 모르게 생기가 돌았다. 인테리어 잡지에나 등장할 법한 근사한 집이 눈 앞에 펼쳐지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쓰일 데 없는 물건을 걷어내고,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것들도 틈틈이 비워내려고 한다. 비워진 그곳에서 무엇을 할까, 또 무엇으로 채워 나갈까, 고민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우선, 볕이 잘 드는 창가에 테이블을 하나 놓을 거다. 이곳을 ‘나만의 아지트’로 삼으려고 한다. 때로는 카페가 되고, 어떤 날은 맥줏집이, 또 어느 날은 글을 쓰는 작업실이 될 테지. 내게 허락될 이 공간이 이토록 기대될 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비울 걸 그랬다.
*이 글은 조선뉴스프레스 온라인 매체 '마음건강 길(mindgil.com)'에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