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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교 May 07. 2022

응원하는 사이

망설이고 머뭇거리고 의심하고 있다. 도전을 망설이고 시작을 머뭇거리고 가능성을 의심하는 중이다. 그러다 다독이고 다잡고 힘내보자고 마음먹는다. 의식적으로 ‘긍정’을 떠올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되뇐다. 나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수집하기 위해 책을 들춘다. 책을 고르고 읽는 일은 사람 간의 연결이 느슨해진 지난 3년 동안 찾아낸, 소극적인 충만의 방식이다. 하루걸러 하루, 또 하루걸러 하루, 비어가는 연료통에 연료를 채워 넣듯이, 긍정의 마음을 부지런히 저장하고 있다.      

 


언제인가부터 차곡차곡 쌓여있던 긍정적인 생각과 감정, 태도의 지층이 비바람에 씻기고 흘러내리고 날아 가버려서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미 지나버린 시간에 대한 후회,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 대한 불안, 타인을 향하는 시선, 이 모든 것들이 그 증거였다. 더는 안 되겠어, 두 손으로 긁어 모아봤지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건 어쩌지 못하겠더라.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나의 존재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나를 이루는 생각과 감정, 태도가 어떤 모양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거렸다. 때로는 무모할 정도로 내질렀던 패기,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 기운이 꺾였다가도 술 한잔이면 털어낼 수 있는 회복탄력성 같은, 내면 건강을 유지할 면역력이 떨어져 쉽게 흔들리곤 했다.      

 


번아웃과 코로나 후유증까지 더해져 나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던 어느 날, 적극적인 충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기차를 탔다. ‘응원하는 사이’를 만나러. 겁도 없이 일탈을 서슴지 않았던(지금은 엄두도 못 낼, 나의 흑역사를 모두 알고 있는) 그 시절을 함께 지나온 이들을 만나러. 일상생활을 하려면 진통제를 털어 넣어야 할 만큼 코로나 후유증으로 인한 두통이 괴롭혔지만, 기어이 기차를 탔다.      

 


특별하게 한 일은 없었다. 말했고 들었고 이따금 웃다가 울었다. 20대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하면 돌아갈래? 했더니, 둘은 싫다, 하나는 괜찮다고 했다. 방황하느라 힘들어서 안정을 찾은 지금이 좋아서 돌아가기 싫다고 했다. 돌아가도 괜찮지만, 지금이 나으니까 굳이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다. 어쨌든 지금이 좋다는 말. 그렇지만 흔들리고 있다고 고백했다. 우리는 또 한 번, 이 시절을 함께 지나는 중이다.



잘하고 있어.

네가 좋아하는 걸 하고 있잖아.

지금 네가 하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데.      


… 내가?      

 


우리는 듣기 좋은 말을 억지로 못했다. 더 나은 관계로 나아가는 데 필요하다면 언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 가려내려는 게 아니었다. 잘잘못을 따지려는 건 더욱 아니었다.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알아가는 관계의 조정 방식이었다. 20년 동안 꽤 여러 번, 조정의 과정을 겪었다. 그 덕분에 축하도 위로도 질투도 미움도 있는 그대로 전하고 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곡해하지 않는다. 가감하지도 않는다. 솟아난 감정을 그대로 인정하고 바라봤다. 그럴 수 있겠다, 받아들이는 거다. 그래서 진심이다. 말을 이루는 생각이 진심이고 말이 향하는 방향이 진심이고 풍기는 에너지가 진심이다. 진심을 나누는 관계. 우리의 관계를 친구라는 단어로는 온전하게 설명할 수 없겠다 싶다.      

 


좋은 일이 있을 때 ‘축하해’, ‘잘됐다!’ 축하하고 공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그 길을 축복하는 일. 누구보다 잘 되길 바라는 마음.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땐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주는 일. 충분히 아프고 나서 툭툭 털고 일어나면 누구보다 단단한 내면을 갖게 되길 바라는 마음. 어쩌면 기도하는 마음. 잘 되길, 평안하길, 무탈하길 기도하는 마음. 그런 마음을 주고받는 사이. 그런 마음을 나누는 관계.      

 


우리는 ‘응원하는 사이’다. 긍정적인 마음을 채워 넣어야 하는 적극적인 충만의 시간. 그런 시간이 필요할 때면 나는, 응원하는 사이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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