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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교 Jul 02. 2022

여행의 기억

얼마 전 저녁. 아이를 재우고 남편과 나란히 앉아 드라마를 몰아보고 있었다. 하루 중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 저녁 10시 거실에는 드라마 주인공들이 주고받는 대사만 나직이 떠다녔다. 막힌 공간, 낮은 조도, 적당히 아늑한 소파, 자막 없이는 대사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작은 TV 소리는 종종 무중력 상태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몸은 한없이 무거운데, 마음은 아이가 불어놓은 풍선마냥 동동 흘러간다. 공기의 흐름 따라 아주 천천히 이리저리 흔들리다 보면 아마도 온종일 내 마음을 무겁게 했을, 날 서 있던 감정이 분리돼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그러면 까무룩 잠이 들곤 한다. 이날도 늘 그랬던 흐름대로 나를 맡겼다. 그 틈을 남편이 끼어들었다.     

 


“J 말이야. 곧 들어온다고 연락 왔었어.”

“벌써 2년이 지났나? 시간 정말 빠르네.”

“‘너희가 놀러 와서 비행기 놓치고 하루 더 자고 가야 발령 나온 거 같을 텐데’ 하더라.”

“아, 그랬지…. 상해에서 비행기를 놓쳤었지. 까마득하다 그때가.”     

 


2015년 우리는 상해로 여행을 갔다. 결혼한 지 5개월 만에 해외여행을 감행했다. 첫 해외여행이자 신혼여행의 여운이 ‘지금 아니면 언제 가겠느냐’며 속삭였다. 마음먹었을 때 가지 않으면 다음은 없다고. 사실, 믿을 구석이 있었다. 상해에서 근무하던 남편 친구 찬스. 초대받기를 여러 번, 거절도 여러 번…. 고마운 만큼 캐리어 가득 한국 식재료를 채우고 상해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곳에서 친구 부부를 만났다.

 


낮에는 여행자의 본분에 충실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와 그 주변 거리, 유럽 어디쯤 있을 법한 건물이 줄지어 서 있는 신천지, 중국식 정원 예원, 와이탄의 야경까지. 미리 짜놓은 여행 일정대로 ‘차근차근’ 움직였다. 정말이지 차근차근 걸음을 옮겼다. 여차하면 코를 베일 것만 같았다. 발길 닿는 대로 여행을 즐기기에 나는 배포가 크지 않았다. 해외여행 경험이 많지 않아 그런 것뿐이라고 스스로 위로해가며 수시로 구글 검색에 구글 지도를 확인했다. (고맙다, 구글) 



택시로 이동할 때는 더 긴장했다. 어딘지도 모를 곳에 툭 떨어뜨려 놓고 차비만 받아 가버리면 낭패가 아닌가. 중국어 초급 회화 강좌를 들은 적 있는 남편은 구글로 검색한 단어를 나열해 소통을 시도했고, 운전기사들은 대체로 이해해줬다. 아마도 이해하려고 무척 노력했을지도 모른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싶으면 남편은 재빨리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낯선 곳을 탐험하느라 있는 대로 긴장한 우리는 저녁이 돼서야 한숨을 돌렸다. 퇴근한 친구 부부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중국어로 능숙하게 음식을 주문하고 농담까지 구사하는 그들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곳에서의 여러 밤. 나는 한국에서 마시던 맥주 칭다오와는 급(?)이 다른 칭다오 레드 골드 라거에 빠지고, 훠궈의 오묘한 매운맛에 홀리고, 양고기꼬치의 풍미에 놀라고, 이 음식들을 앞에 두고 이어갔던 우리들의 이야기에 물들었다. 그곳에서의 밤이 내내 끝나지 않았으면 바랐다. 

 


간절함은 불가능해 보이던 일도 가능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어쩌면 우리가 마주한 어떤 결과는 어떤 우연과 어떤 순간, 또 어떤 노력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걸지도 모른다. 간절함이 자신도 모르게 어떤 결과를 향해 움직이고 행동하게 이끈 걸 수도 있다. 예측 가능한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때때로 간절함의 비현실성을 깨닫지만, 비현실적이라서 더욱 앞뒤 재지 않고 간절하게 바라곤 했다. 가령 늦으려야 늦을 수 없는 시간에 짐을 챙겨 숙소를 나섰는데, 눈앞에서 비행기를 놓치고 다음 비행기가 다음날에야 뜰 예정이라서 어쩔 수 없이 하루 더 여행지에 머물러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처럼 말이다. 

 


술김에 내지른 간절한 바람은 현실이 됐다. 모든 일이 이렇게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사실은 두려웠다. 비현실적인 바람이 마치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아주 자연스럽게 짜잔, 그 모습을 드러낼 줄이야. 



한국으로 돌아오는 아침. 남편 친구는 공항에 데려다주겠다고 했지만, 사양했다. 여행 기간 내내 긴장을 늦추지 않은 덕분인지 별다른 문제 없이 지냈고 우리의 여행이 무사히 집에 도착하는 것으로 마무리될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고작 30분 거리의 공항에 가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지겠어.’ 그때 알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여행자를 태운 택시 운전기사는 ‘고작’ 30분 거리도 1시간 이상으로 늘릴 수 있는 도로 위의 무법자라는 사실을. 닫혀버린 게이트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민망하고 미안한 마음을 무릅쓰고 남편 친구에게 전화를 거는 것뿐이었다. 



그날 밤 우리는 상해의 코리아타운으로 불리는 곳에서 돼지고기를 굽고 소맥을 마셨다. ‘이래서 여행이 재미있는 거야. 그 운전기사 덕분에 하루 더 함께 지내고 좋잖아!’ 서로 다독이면서. 그곳에서의 하룻밤이 더해졌다. 

 


그렇게 상해 여행의 잊을 수 없는 추억을 공유한 남편의 친구가 홍콩 주재원 생활을 마무리하고 곧 돌아온다고 했다. 홍콩에 나가 있는 동안 꼭 한번 놀러 오라며 떠난 게 수년 전이었다. 여행의 묘미가 무엇인지 톡톡히 배운 여정이었기에, 덕분에 곱절로 즐거웠기에 못 이기는 척 이번에는 아이와 함께 놀러 가겠노라, 했지만 상황이 도와주질 않았다. 2019년 6월 홍콩 거리는 중국 공산당의 통제 정책에 반발한 시민들로 가득했다. 시위대와 이를 진압하려는 경찰들이 충돌했고, 연이어 코로나19가 발생했다. 여행은커녕 집 밖 출입도 삼가면서 보낸 시간. 남편의 친구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채비 중이었다.      

 


그래, 맞아. 우리 여행을 다녀왔었지.      

 


한동안 여행의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애써 떠올리려고도 하지 않았다. 언제 떠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현실에서 즐거웠던 여행의 추억을 곱씹는 건 고문을 자처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상해 여행을 기억하자 웃음이 났다. 누군가가 다시 돌아가서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어떻겠냐, 묻는다면 제때 돌아오고 싶다고 말하겠지만, 비현실적인 바람이 너무나도 어처구니없이 이뤄졌던 그때가 그립기도 하다. 떠오를까, 그리워할까, 체념해버릴까, 꺼내길 애써 억눌렀던 여행의 기억은 다시 내키는 대로 떠나고 싶다는 바람을 불러왔다. 



저녁이면 소진 상태로 거실 공기 속을 둥둥 떠다니는 내게, 그동안 많이 지친 나에게, 여행이라는 일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나는 지금 이렇게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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