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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산책자 Dec 27. 2022

베를린에서 외치는 Love myself

도시산책자의 영감

<도시산책자의 영감>은 제가 여행 속에서 보고 들으며 떠올린

생각과 영감 중 나누고 싶은 조각들을 골라 기록하는 시리즈입니다.


Hip, Art, Music, History and Love!


이 모든 게 공존하는 도시가 존재하냐고요? 그럼요. 바로 독일의 수도, 베를린이 그렇더라고요. 베를린은 그야말로 모든 게 다 있는 도시였어요. 누구든지 베를린에 방문하게 되어도 자신의 흥미를 자극할만한 요소 하나쯤은 꼭 있을 거라는 뜻이에요. 저의 경우 역사를 전공하는 학부생으로서 세계 2차 대전의 흔적과 아픔을 고스란히 품은 곳이라 방문할 장소가 너무도 많았던 곳. 커피를 좋아하는 한 젊은이(?)로서는 힙하고 유명한 카페가 넘쳐나 어디를 먼저 갈지 고민하게 한 유럽의 몇 안 되는 도시. 독일의 수도라는 상징성. 이외에도 음악, 미술, 책, 철학, 음식 등 여러분이 원하는 걸 원하는 만큼 찾을 수 있어요. 흐린 날씨 탓에 회색도시라 불리는 베를린인데, 속은 그 어디보다 다채로운 색의 문화와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차마 살 용기가 안났던 빈티지샵의 옷들

이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 그럴까요? 제 시선 속 베를린은 속도와 방향이 없는 도시였어요. 베를리너는 어떤 도시보다도 개성 넘쳤습니다.


베를린역에 내려 밖으로 나오자마자 본 게 '형광' 주황, 핑크, 초록으로 각자 염색하고 지나가던 무리였습니다. (정말.. 저희가 쓰는 그 형광펜 색이요.) 동독과 서독이 통일된 지 시간이 꽤 흘렀지만 아직도 그 사이 빈부격차는 남아있고, 경제를 이끄는 건 서독이에요. 제가 살던 슈투트가르트는 서독 중에서도 벤츠와 포르셰의 본사가 위치한 부유하고 큰 공업도시였어요.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이를 대변하듯 정돈되고 깔끔한 분위기를 냈습니다. 시민들은 베를린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수수한(?) 옷차림이었고요. 그래서 같은 독일이라는 게 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베를린에 도착하자마자 사방팔방에 펼쳐지는 패션쇼에 처음에는 몸 둘 바는 아니고, 눈둘 바를 몰랐습니다. 이후로는 점점 도시에 익숙해지며 3박 4일간 거리를 유심히 구경했는데 소위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옷, 헤어스타일, 액세서리를 걸친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보였습니다.


하지만 제게 중요한 건 '베를린에 신기하고 유별난 복장을 한 사람이 많대'가 아니었고요. 도시를 구성하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자신만의 속도와 방향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게 피부로 느껴진 순간이었어요.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뿐이니, 이들에게 남의 시선이 뭐가 중요했겠어요? 주체적인 삶에 대한 베를리너의 단단한 생각과 태도가 개성 넘치는 옷에서 나타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뒤로 제 눈에 보였던 건 어딘가 찢어져있거나 유별난 색과 신기한 옷감 소재가 아닌 그걸 걸치고 있는 사람,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처럼 되고 싶거나 입고 싶다는 게 아니라 '그래도 되는구나'라는 그 마음가짐을요.


빈티지샵 다니는 걸 좋아해 베를린에서도 3-4곳을 구경했는데요. 제가 장난으로도 입고 다닐 수 있을 만한 옷이 단 한 벌도 없더라고요. 위에 사진만 봐도 휘황찬란함이 전달되지 않나요! (그럼에도 손님이 바글바글했답니다.) 예상 가능하듯이 전 모든 가게를 빈손으로 나왔지만 이 생각은 들더라고요. 언젠가 이 옷들 중 하나를 입고 싶은 날이 와도 망설일 이유는 전혀 없겠다고. 베를린에 왔을 뿐인데 용기가 생겨나더라고요.


아름다웠던 밤의 베를린돔

이 도시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어딘가 숨통이 트였습니다. 모두의 자유로움을 대신해서 만끽하는 느낌이었어요. 주변은 어지러운데 내면에서는 역설적으로 편안함이 몰려왔습니다. 그렇게 회색빛 거리를 걷는데 Love myself라는 단어가 가슴 한편에서 계속 메아리쳤습니다. 스스로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것, 원하는걸 자기에게 선물해줄 수 있는 것, 모두 나 자신이라는 사실말입니다. 베를린은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용기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한 고민을 내어준 도시였습니다. 여행하며 혼자만의 생각에 푹 잠기거나 떠오른 적 없던 영감을 만나는 순간을 참 좋아하는데요. 베를린에서는 이 주제를 유독 생각하고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이 생각에 어울리는 배경음악을 꼭 넣고 싶은 생각에 상황과 딱 맞는 BTS의 Answer : LoveMyself를 골라 반복재생했던 기억도 생생해요.

전 아직까지 남 시선에 눈치 보느냐고 하고 싶은 걸 포기한 경험이 딱! 떠오르지는 않아요. 하지만 점점 제 손으로 내려야 하는 중대한 결정이 늘어날수록 머지않아 닥쳐올 거라 믿습니다. 아무리 마음을 먹어도 자신의 목소리만 듣고 앞으로 나아가는 건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사실 제게는 지금이 딱 그 순간인 것 같아요. 교환학생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 취업길에 서서 방황 중이거든요.)

그럼에도, 아니 그래서 저는 용기가 필요할 때면 베를린을 생각하려고 합니다. 이 도시에서 며칠 내내 마음속으로 외쳤던 Love myself 그리고 이를 보여줬던 베를리너들. 입고 싶은 거 입고, 먹고 싶은 거 먹고... 결국 내가 하고 싶은걸 해도 그 아무도 신경 쓰지 않으니까요. 그런 도시가 존재한다는 걸 제 눈으로 보았으니까요. 마음이 이끄는 일을 하고 싶은데 걸림돌이 되는 게 누군가의 시선이라면, 오직 그뿐이라면, 거리의 베를리너를 떠올릴 거예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옷차림이 아니라 그 속에 있는 마음가짐과 삶의 태도를요.


누군가에게는 개성. 누군가에게는 유별난 사람이 가득한 길거리. 후자의 경우 베를린만큼 정신없고 위험한 도시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곁들여 봅니다. 실제로 호불호가 극명한 도시라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저는 호 호 호! 목적지 없이 배회해도 좋아요. 일부러 길을 잃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 평범한 나 한 명 정도는 쳐다도 안볼테니 마음껏 언제든 방황해도 상관없을 것 같은 유일한 곳. 그래서 시간을 내어 언젠가 한 달, 두 달 머물러 살아가고픈 도시예요, 베를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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