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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환 Dec 25. 2022

+2) 당연한 나의 유럽 메이트

30박 31일의 동유럽 여행을 나와 함께 떠나온 메이트를 소개한다. 유럽메이트 경이는 같은 대학동기로 부산의 광안리, 하얀 대문집에 살고 있다. 서울로 올라온 나와 부산-서울이라는 거리적 제약이 있는데도 졸업한 지 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내게 가장 애틋한 존재다. 살아가면서 피치 못하게 경험하게 될 시련은 되도록이면 소소하게 겪었으면 좋겠고, 좋은 날에는 그날의 주인공으로 어여쁜 공주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보다 한 살 어린 동생이라서 그런가. 아주 귀엽고 대견하고 뽀짝 해 죽겠다. 세상 사람들! 여기 내 친구 좀 봐보쇼! 겁나게 이뻐블제! 


핸드폰을 하다가 온 가족이 먹기 좋은 치즈케이크라는 광고를 보면 괜히 광안리 하얀 대문집으로 보내고 싶어 진다. 달달한 복숭아 떡을 보면 경이네 할머니도 잘 드실 수 있겠는데 싶어, 괜히 '이 집 광고 카피 잘하네' 하면서 만족스러운 소비자가 되었다며 택배를 보냈다. 경이네 어머님을 만난 공식적인 첫 만남에 "어디 한번 안아보자"하시면서 나와 와락 포옹을 했다. 그, 조금만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 사람이 나에게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를 대략적으로 알 수 있잖아? 하얀 대문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고 있었다. 아마 이 집의 둘째 딸의 친한 친구라서 그런 건지도 모르지만 내가 느낀 따스함에는 그런 이해관계가 존재하질 않았다. 경이가 집에 나를 어떻게 이야기를 한 건지 모르겠지만, 맘 편히 몰라도 될 것 같다. 


서울-부산의 거리와 시간이 부담이라 자주 집에 내려가지 않는 편이데, 본가에 내려가기 좋은 시기가 바로 연휴가 긴 명절이 적기다. 연휴가 시작되기 전날 퇴근 후 바로 부산으로 달린다. 도착지로는 광안리의 하얀 대문집이다. 그럼 경이의 방엔 내가 갈아입을 잠옷이 미리 세팅이 되어있고, 샤워 후에 단계별로 발라야 할 스킨케어들이 줄 서있다. 이렇게 내가 경이의 방을 차지하는 날이면 경이는 어머님과 함께 잠을 잔다. 꿀잠을 자고 일어나서는 바닷길을 따라 개운하게 모닝조깅을 다녀와서 우리의 광안리 방앗간인 에스프레소바에 가서 커피 한잔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게 왜 당연하게 된 일정인지는 모르겠는데, 이게 당연해져 버렸다.  


보통의 일정대로 방앗간을 다녀왔더니 경이는 이제부터 명절음식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 명절에 따로 음식을 하지 않는 우리 집이라, 남들이 말하는 명절스트레스를 나는 알지 못한다. 이런 우리 집과는 다르게 나름의 명절 스트레스를 가지고 있는 경이를 도와서 음식준비를 도와주게 되었는데 나는 그게 너무나 재미있었고, 경이는 너무나 편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명절연휴의 첫날엔 광안리 하얀 대문집에서 같이 명절음식을 하고서 우리 집으로 가는 게 익숙해졌다. "엄마, 내 경이네 집에서 명절음식 했디! 너무 재밌어!"하고 남의 집 부엌에서 애 둘이 사부작사부작 전 부쳤던 이야기를 떠들면 "그래, 음식 하는 거 잘 배워가지고 온나" 엄마는 음식 하는 방법을 많이 배워오라고 한다. 


명절 선물이 하얀 대문집으로 도착한 날이면 내게 신신당부를 한다. 명절마다 괜히 부담 가지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데, 이거 곧이다? 지금에야 우리가 서로의 인생에서 비슷한 타이밍을 살고 있어서 이렇게나 쿵짝이 잘 맞지, 조만간 서로 다른 타이밍을 향해 어긋날 거라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지금을 충분히 즐겨야겠다. 누구 한 명이 결혼을 하게 되면 더 이상 명절에 선물을 사들고 찾아뵈어서 함께 음식을 하지도 못하고 경이의 방을 내가 치지 할 수도 없다.



이 유럽여행의 시작은 경이의 방, 책상 앞에 붙어있는 프라하 엽서에서 시작됐다. 유치원생일 때 선물 받은 엽서 속의 프라하는 경이의 버킷리스트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물었다. "우리 퇴사하고 프라하 갈래? 12월 퇴사니까 크리스마스랑 새해랑 보내고 오면 되겠다." 버킷으로 붙여놓은 엽서가 정말로 이루어진다는 확신에 경이의 그 설렘으로 물드는 표정을 보면 참 재미있다. 경이가 행복해하는데, 그 모습을 보는 나도 덩달아 행복해진다. 


뭐든 아깝지가 않는 존재가 세상에 존재하더라. 아니지, 솔직하게 말하면 챙겨줬는데 거기에 더 얹어서 돌려주는 존재가 있더라. 허, 기기 찼다. 여기서 더 까놓고 말하면 나는 좀 계산적인 사람이라 내가 준 만큼 돌려주는지 아닌지를 따지게 되는데, 얘는 뭐 바보라고 칭하자. 이 바보랑 있으면 계산을 떠나서 정말 뭐든 아깝지가 않아 진다. 이 기분을 알게 해 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알게 모르게 경이를 따라 하고 새롭게 배워간다. 그럴 때마다 소란스럽게 경이에게 알린다. 그럼 경이는 따라쟁이라고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어화둥둥 판을 깔아준다. 나의 뮤즈가 되어 주어서 고마워. 


내 인생 첫 유럽을, 유럽에서 보내는 나의 32시간의 생일과 크리스마스를 경이와 함께라서 다행이다. 여행을 하면서 "둘이 잘 맞아서 좋아 보여요, 마음 맞는 친구랑 와서 부럽다."라는 말을 여행객들에게 여럿 들었다. 나도 진심으로 동감하고 있다. 혼자 하는 여행을 즐기지만, 애인과 해외여행을 안 가본 것도 아니지만 이번 의미가 특별한 유럽을 그 누구도 아닌 경이와 함께해서 안심이다. 언제든 뭐든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말만 해라. 그럼 내가 너에게 지금 하러 가자고 물어볼게. 



나는 전 모양을 만들어 채반에 올려놓으면 경이는 반죽을 묻혀 전을 부친다. 그러면서 우리 더 나이 들어서 결혼하고 애 낳고 중년이 되었을 때는 뭔가 김장철에 남편 흉보면서 김장하고 있을 것 같다며, 미래의 모습을 그리며 깔깔 웃었다. 우리의 타이밍이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잘 부탁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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