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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환 Dec 29. 2022

+3 해외여행 기념품, 그건 사랑이더라.

여행을 좋아하는 중학교 친구는 여행을 다녀와서 언제나 내게 기념품을 선물해 줬다. 고맙다고 말은 했지만 사실, 별 감흥 없이 주길래 받은 게 끝이었다. 진짜 뭐 많았는데, 간식들은 먹어 해치웠고 립밤이나 핸드크림 스킨케어제품. 팔찌 같은 악세사리들과 동전지갑과 인테리어 소품들이었는데 거의 다 버렸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미안.


내가 여행을 오니까 알았다. 긴 여행기간 동안 바리바리 싸 온 28인치 캐리어에 점점 늘어나는 짐과 수화물 무게를 생각하기에도 벅찬데 거기에 한국에 돌아가면 선물할 기념품들을 이고 지고 메고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트램을 타고 다니다 보니 진짜, 해외여행 기념품 그거 사랑이더라.


일단 중학교 친구에게 선물할 좋은 선물을 골라야 했다. 지금까지 받은 게 많아서 이번이 한 번에 몰아서 보답할 기회다. 그리고 여행을 떠나기 며칠을 남겨두고 별 날도 아닌데 정말 갑작스레 내게 장갑을 선물해준 옆 동네 친구에게도 좋은 선물, 나의 여행이 끝나 회포를 풀 날을 기다리고 있는 친구들에게도 좋은 선물. 어느 친구는 여행지에서만 구할 수 있는 기념품을, 어느 친구는 그 여행지에서 유명한 제품을, 어느 친구는 나의 마음을 선물하고 싶었다.


친구들것도 친구들 건데 그럼 가족들 건 뭘 사가지고 가야 하나. 흠, 이렇게 보면 우리 집 무뚝뚝하다고 서운해만 했던 내가 좀 그렇다. 나 역시도 가족들이 뭘 좋아하는지 어떤 취향인지를 전혀 알지 못한다. 쇼핑이 고민될 땐 쇼핑 요정인 경이에게 물어보면 찰떡인 선물리스트를 딱딱 집어준다. 키홀더나 키링 같은 걸 고민하다가 이런저런 제품을 찍어서 가족 단톡방에 올려서 원하는 디자인을 물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으로는 "내 건 필요 없고 엄마꺼나 좋은 거 사온나, 형아랑 뿜빠이해서 줌" 오케이 그렇다면 내가 부담 없이 골라본다.


12월이 생인일 첫째와 둘째와 나. 생전 안 챙기던 생일들인데, 이번에는 뭔가 나 혼자 땡자땡자 놀러 온 여행이 미안해서 미리 생일 선물들을 택배로 보내놨다. 기념품과 생일선물 같이 퉁치기로 하자. 그러니 걸리는 마음 없이 엄마 꺼에 몰빵 한다. 괜찮은 크로스 백을 골라서 보냈더니 엄마는 등으로 매는 가방이 좋다고 했다. 내 눈에도 크로스백이 이쁜데, 둘째 눈에도 크로스백이 이쁜지, "엄마는 책가방 같은 게 좋은가" 하길래 나도 "그러게 엄마는 책가방이 좋은가?" 아쉬움을 비쳤다. 그렇지만 엄마는 책가방. 주인공이 갖고 싶다는 게 최고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등에 매는 가방 사 오라는 우리 엄마를 경이가 되게 부러워했다. 경이의 어머님은 아무것도 사 오지 말라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은근한 기대가 부담이라고 했다. 그렇게 뭘 사드리면 일 년은 농안에 묵혀놓고 쓴다고 해서 복장이 터진다는데, 흠. 우리 엄마는 사주면 금방금방 잃어버려서 자식 속을 뒤집어 놓는 걸?


그렇게 30박 31일 중 여행 7일 차에 선물꾸러미를 품에 안고 국경을 넘어 다니길 시작했다. 엄마 선물을 3등분에서 첫째와 둘째에게 청구했더니, 거기에 여행 가서 맛있는 거 사 먹으라며 용돈을 더 얹어서 보내줬다. 어잇, 나 택스리펀 금액 삥땅치고 청구했는데 찔려서 어떡하지? 내가 기똥찬 기념품들 찾아가지고 돌아간다.


한 번은 피렌체 크리스마스 마켓에 팔고 있는 겁나게 뜨신 군밤모자를 사놓고 "군밤이 군밤이~ 탈부착 마스크도 있는데 갖고 싶지 않을까? 갖고 싶을 거 같은데?" 군밤모자 PR 영상을 보냈는데, 이쁘다며 그렇게 쓰고 다니란다. 군밤모자, 어쩌다 내께 됐었나. 한국은 폭설에 한파라는데 서울 가서 유용하게 쓰게 되겠네.


여행을 와서 가족들에게 지원을 받고 친구들에게 응원을 받은 것처럼, 경이도 나와 같았다. 3대가 함께 살고 있는 경이네는, 할머니가 옛날 할머니라서 남자 손주들에게만 용돈을 주었다고 했다. 용돈을 주시던 가장 큰 금액이 5만 원이었는데 경이가 유럽여행을 떠날 때 할머니께서 10만 원을 용돈으로 쥐어주셨다고 했다. 아이언맨에서 3000만큼 사랑한다는 말처럼, 옛날 할머니가 경이에게 할 수 있는 표현의 끝이지 않았을까. 거기에 손발이 차고 추위를 잘 타는 경이를 위해서 어머님께서는 요즘 디자인의 바라클라바를 손수 떠주셨다. 눈물을 광광 흘릴 만큼의 용돈까지.  


여행을 와서 내 주위의 사람들을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의심할 필요 없는 무조건적인 내편과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관계들. 나 역시도 의심할 필요 없는 무조건적인 편이 되어 주었나, 당연한 사람이었던가. 거리는 멀어졌지만 마음의 거리가 한층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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