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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환 Dec 04. 2021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

좌우명 : 세상은 지옥이며 인생은 혼자고 공짜는 없다.

겨울철 때가 되면 제주도에 살고 있는 삼촌에게서 전화가 온다. "귤 보낼 줄게. 저번에 주소로 보내면 되나?" 자주 뵙지도 못하고 내가 먼저 전화하는 일도 없는데도 조카라서 그런지 매년 겨울마다 따뜻하게 택배를 부쳐주신다. 사실 이때까지 이렇게 매번 챙겨주는 복을 복에 겨운 줄도 모르고 마음을 다해 고마워한 적이 없었다.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올해서부터, 지금부터는 막 가족이 보고 싶어 진다. 아무이유없이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 곁에 있고싶다.


12월 1일 첫 출근을 했다. 11월 30일에 마지막 근무를 하고 새롭게 이직을 했는데 출근한 지 3일 차밖에 안된 지금에서는 사실 어색하고 낯설다. 괜히 이직을 했나? 회의감이 들기도 하고 잘못된 선택을 한 건가? 싶어서 침울해지던 참이었다. 퇴사한다고 했을때 붙잡았을때 못이기는 척 붙어있어야 했나. 인생은 존버라던데.


코로나에 걸리고 치료받고 퇴원하기까지는 괜찮았다. 문제는 사회로 다시 복귀를 준비하면서부터 생겼다. 사람들이 나를 찝찝해했다. 복귀하고서는 나를 '코로나'라고 불렀다. 발작 버튼이 생긴 것 같다. 이해할 수 없는 시말서를 써야 했고 연봉 동결을 통보받았다. 그래서 더럽고 치사해서 그만두기로 했다.


예전 같지 않은 몸으로 어딜 여행을 가고 싶지도 않았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이전처럼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고 주말에 하고 싶은걸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그런 일상적인 게 필요했다. 일하는 건 지금까지 해 왔던 경험들이 있어서 솔직히 어렵고 힘들다고 하는건 하나도 없다. 그냥 낯설고 새로운 환경이 어렵다. 지금까지를 돌이켜보면 새로운 직장의 사람들과 어울리는데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점점 전의 환자분들이 그립고 익숙하고 편한 사이의 동기 들기 보고 싶어 진다. 이제는 모두 전 직장을 떠나 뿔뿔이 흩어져 근무하고 있는데 주기적으로 다 같이 일했던 그때가 그립다면서 추억의 단체사진을 뿌리곤 한다. 머리가 큰 중간 연차가 되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이제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인지, 그것도 아니면 세상에 흥미를 잃고 점점 냉소적인 인간이 되어가는 증거인지. 점점 관계가 단절되고 나다니는 반경이 좁아지는 기분이다.


퇴사 전 연차를 소진하던 그 열흘간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동네 시장에서 만 원짜리 모둠회를 사와다가 어묵탕을 끓여서 혼술도 해보고 해가 가장 많이 드는 낮시간, 창가 앞 소파에서 책을 읽었다. 혼자서도 잘 챙겨 먹으려고 냉장고에 식재료로 가득 채워놨다. 요즘엔 요리를 하면서 기분전환이 되는 것 같다. 마트와 시장을 쏘다니면서 장을 보고 집에 와서 정리를 하고 요리를 하고 다시 정리를 하면 하루가 끝난다.


가장 많은 상처를 받았던 전 직장이었는데도 여태컷 가장 즐겁게 일했던 곳이기도 했다. 나를 엄청 좋아해 주시는 환자분들이 있었고 내가 엄청 좋아하는 환자분들도 있었다. 쌍방이었다. 얼마나 짝짜꿍이 맞았냐면 일하는 게 힘들지 않을 정도였다. 보람찼고 만족스러웠는데 새로운 직장에서는 아직 누가 누군지를 못 알아봐서 환자를 찾아 나선다. 첫날에는 집에 돌아오니 정말 물먹은 솜뭉치처럼 몸이 무거워 움직일 수가 없었고 둘째 날에는 그럭저럭 적응이 되고 있구나 싶었고 셋째 날에는 내일이 주말이라 다행이라 여기며 버텼다.


오랜만에 따뜻한 삼촌과의 전화를 시작으로 숙모랑, 엄마랑, 우리 집 둘째랑 연달아 통화를 했다. 그러고 나니 온기를 필요로 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청첩장을 받으러 간 동기모임에서 각자의 근황을 주고받다가 최신 내 근황을 알렸더니 한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왜 안 하고 있었냐고 물었다. 그 질문을 받고 마땅한 대답이 안 떠올랐다. 이거를 어디서 어디까지 말해야 하는 걸까? 내 일이고 누구도 대신 해 주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으로 "말이 안 나오더라" 한마디밖에 못했다.


명절이라고 본가에 내려가지도 않고 한 달에 한 번씩 집에 가야 한다는 집안의 룰같은 것도 없다. 작년에는 두 번인가 부산에 내려갔었던 것 같다. 지금은 집에 가고 싶다. 가족들이랑도 시간을 보내고 싶고 오랜만에 친한 친구들도 모두 만나고 싶다. 가장 먼저는 엄마한테 가서 어리광을 부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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