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봄에 마음을 먹고서 계속 준비해왔던 공군 예비 장교 후보생 시험이 지난 4일에 면접을 끝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날 저녁 일기를 써 내려갔다.
‘준비하고 힘들인 것보다 간단하고 빠르게 끝이 났다. 마지막 문제에 답을 못한 것이 아쉽다. 엄마 아빠가 보고 싶다. 친구들이 보고 싶다. 내 선에서 해결되지 않는 일들의 연속이다.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마음 편히 일주일만 쉬고 싶다. 그립다.’
‘보고 싶다’는 글자를 써 내려가는데 갑자기 속에서 울컥했다. ‘어라?’ 싶었다. 원체도 눈물이 많은 사람이라 평소 같으면 아무렇지 않게 눈물 몇 방울 흘리고 말겠는데, 이번에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울음을 토해냈다고 하는 것이 좀 더 바람직한 표현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주체할 수 없는 울음이란 이런 것이겠구나 싶었다. 나조차 몰랐던 나의 힘듦이 여실히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나는 힘들었구나.
분명 필기시험이나 중간고사를 칠 때까지만 해도 큰 부담이 없었던 것 같은데 왜 이렇게 힘들었지? 왜 나는 구멍 뚫린 댐의 벽처럼 무너져서 울었을까? “너무 부담 가지고 있는 거 아니야?” 면접 준비에 한창이었을 때 들었던 애인의 말을 복기해보니 그 말이 정답이었다. 내가 너무 생각이 많아 스스로 부담을 등에 진 탓이었다.
‘이 시험이 끝나고 나면 또 다른 시험 준비해야해’
‘빨리해내야 해’
‘게으름 피우지 말자’
‘또 하루 날렸다, 이걸 언제 다 해’
‘내가 정말 잘 할 수 있을까?’
‘막상 붙었는데 이게 내 길이 아니면 어떡하지?’
‘떨어지면 어떡하지’
흔한 걱정들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 고민들, 그리고 잇따라 오는 겁이 내 안의 여유를 빨아들이고 몸집이 커져버려 부담이라는 이름으로 안을 꽉 채웠다. 여유라는 샘이 닳아버려서 병이 났음에도, 부담에 속이 빈 것이 가려진 채 방치해버려서 병이 커졌던 것 같다.
슬퍼졌다. 원래 이렇게 여유가 없던 사람은 아니었는데. 아니다, 원래도 이랬던가? 그러고 보니 난 늘 내 감정을저울질했다. ‘매일매일 공부만 뼈 빠져라 하는 것도아니면서 힘들어도 되나, 다른 애들은 쉽게 해내는 것 같은데 내가 엄살을 부리는 것은 아닌가?’ 라며 감정에 자격을매겨왔다. 이런 생각이 나를 갉아먹을 것을 알고서 그만두자, 끊어내자 다짐했는데도 좀처럼 쉽지가 않았다. 생각을 끊어내는 것마저 ‘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이 들기도 해서 더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다시 생각은 제자리로 돌아와 다시 나를 괴롭혔다. 원래, 보통의 일상을 살아가던 나는 이렇지 않았는데. 나 되게 잘 웃고 잘 지내지 않았나? 갑자기 왜 이러는 걸까?
침착하게 나를 살펴보고자 되돌아봐도 실력이나 학점, 집안 사정이나 코로나를 비롯한 이런저런 상황을 재 보니 나는 더 물러날 곳이 없다고 느꼈다. 벼랑 끝의 복학생. 뭐라도 이뤄내야 한다는 생각이 밀려들어 와 결론으로 자리했고, 결국 내 감정의 태도를 정비할 여유도 없었던 것이겠지. 그래서 쉴 때도 마냥 편하지가 않았고 결국은 나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했다.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은 괜찮다며 좀 더 천천히 해도 된다고 나를 살폈고, 그 말이 옳다고 이해도 했다. 그런데도 난 뭐가 그리 급하고 절박해 나를 몰아세웠을까? 나는 이 병을 어떤 약으로 고칠 수 있을까? 어떤 약이 조급한 마음으로 진 이 무거운 부담을 버리게 할 수 있을까? 늘 꼬리에 꼬리를 물어 늘어졌던 내 생각을 끊어내고 부담과 겁 없이 살아낼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까?
늘 내 글의 끝에는 어떤 식으로든 나름의 해결책을 제안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는데 이번 만큼은 어떠한 결론도 쉽게 내리지 못하겠다. 평생을 반복하여 찾아온 어려운 문제다. 분명 앞으로도 사는 동안 꾸준히 나를 찾아오겠지. 이 생각을 하면 남은 내 삶이 아득해진다.
그러나 곧 나는 의외의 곳에서 결론을 찾게 된다. 지난 11월 20일에 발매된 방탄소년단의 컴백앨범, ‘BE’. 너무 좋아하는 가수의 컴백앨범인데도, 현실에 쫓겨 노래 하나 듣는 것 조차 집중하지를 못하다가 면접이 끝이 나고서야 가사를 보며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일기를 쓰다 잔뜩 울어버려 부은 눈으로 멍하니 핸드폰 화면 속의 가사를 읽어 내려갔다. 그러다 만난 ‘병’이라는 곡의 노랫말은 꼭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Sick & tired But I don’t wanna mess up Cause life goes on
…
자 일어나 one more time 다시 아침이야 오늘을 나야 해 가보자고 one more night 이 끝에 뭐가 있을지 몰라 영원한 밤은 없어
…
Everyday 나를 위로해 다 똑같은 사람이야 ain’t so special Ay man keep one, two step 차분하게 모두 치료해보자고 나의 병
그렇다. 당장 이 반복되는 고민의 굴레를 영원히 없애 줄 묘책은 없을지라도, 그저 차분하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수밖에 없다. 삶은 계속 이어져야 하므로 언제까지나 울고 있을 수는 없기에. 나의 아픔을 마주하고서 실컷 울고 나거든, 나도 모르게 힘들여 고생했던 나를 위로하는 것. 좀 더 여유 있어도 괜찮아. 다시금 깨닫고 살아가다가 힘에 부치는 날이 오거든 다시 나를 다독여주는 것. 이것을 나의 약으로 삼고 그저 다시 일어나서 나아가는 수밖에는 없는 거지. 그 앞에 무엇이 있는지 몰라도 말이다.
사는 내내 나는 같은 병을 치료하고, 재발하고 또다시 아파하며 눈물 흘릴지라도, 나를 향한 위로를 약 삼아 당장 하나의 고비를 넘길 힘을 내본다면 아주 조금씩 성장해 있지 않을까. 아파하는 내 모습이 일순 부끄럽고 한심해 보여도 결국 그 모든 시간도 나였음을 알아차리고 응원해주는 단단한 사람이 되어있지 않을까. 먼 미래가 아득할지라도 그렇게 당장의 하루하루를 살아가면 결국 우리는 숱한 과거를 지나 현재를 살고 있게 될 것이다.
슬픔과 아픔은 영원하지 않다. 눈물 흘리고 정체되어있는 지금도 결국은 지나간다. 늘 나아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가지고 움직이자. 여유 있게 두려움 없이 살아가려 노력해보자. 해결책이라 하기에는 막연하고 무책임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것이 삶이라면, 결국 일어나 살아내야 하는 것을. 다시금 일어날 수 있도록 큰 힘과 지표가 되어준 방탄소년단에게 새삼스러운 감사를 표하며 글을 맺겠다. 모두의 건강을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