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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냥깜냥 Dec 18. 2020

차분하게 모두 치료해보자고 나의 병

written by 강 세화

올해 봄에 마음을 먹고서 계속 준비해왔던 공군 예비 장교 후보생 시험이 지난 4일에 면접을 끝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날 저녁 일기를 써 내려갔다.


‘준비하고 힘들인 것보다 간단하고 빠르게 끝이 났다. 마지막 문제에 답을 못한 것이 아쉽다. 엄마 아빠가 보고 싶다. 친구들이 보고 싶다. 내 선에서 해결되지 않는 일들의 연속이다.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마음 편히 일주일만 쉬고 싶다. 그립다.’


‘보고 싶다’는 글자를 써 내려가는데 갑자기 속에서 울컥했다. ‘어라?’ 싶었다. 원체도 눈물이 많은 사람이라 평소 같으면 아무렇지 않게 눈물 몇 방울 흘리고 말겠는데, 이번에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울음을 토해냈다고 하는 것이 좀 더 바람직한 표현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주체할 수 없는 울음이란 이런 것이겠구나 싶었다. 나조차 몰랐던 나의 힘듦이 여실히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나는 힘들었구나.



분명 필기시험이나 중간고사를 칠 때까지만 해도 큰 부담이 없었던 것 같은데 왜 이렇게 힘들었지? 왜 나는 구멍 뚫린 댐의 벽처럼 무너져서 울었을까? “너무 부담 가지고 있는 거 아니야?” 면접 준비에 한창이었을 때 들었던 애인의 말을 복기해보니 그 말이 정답이었다. 내가 너무 생각이 많아 스스로 부담을 등에 진 탓이었다.


‘이 시험이 끝나고 나면 또 다른 시험 준비해야해’
‘빨리해내야 해’
‘게으름 피우지 말자’
‘또 하루 날렸다, 이걸 언제 다 해’
‘내가 정말 잘 할 수 있을까?’
‘막상 붙었는데 이게 내 길이 아니면 어떡하지?’
‘떨어지면 어떡하지’


흔한 걱정들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 고민들, 그리고 잇따라 오는 겁이 내 안의 여유를 빨아들이고 몸집이 커져버려 부담이라는 이름으로 안을 꽉 채웠다. 여유라는 샘이 닳아버려서 병이 났음에도, 부담에 속이 빈 것이 가려진 채 방치해버려서 병이 커졌던 것 같다.



슬퍼졌다. 원래 이렇게 여유가 없던 사람은 아니었는데. 아니다, 원래도 이랬던가? 그러고 보니 난 늘 내 감정을 저울질했다. ‘매일매일 공부만 뼈 빠져라 하는 것도 아니면서 힘들어도 되나, 다른 애들은 쉽게 해내는 것 같은데 내가 엄살을 부리는 것은 아닌가?’ 라며 감정에 자격을 매겨왔다. 이런 생각이 나를 갉아먹을 것을 알고서 그만두자, 끊어내자 다짐했는데도 좀처럼 쉽지가 않았다. 생각을 끊어내는 것마저 ‘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이 들기도 해서 더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다시 생각은 제자리로 돌아와 다시 나를 괴롭혔다. 원래, 보통의 일상을 살아가던 나는 이렇지 않았는데. 나 되게 잘 웃고 잘 지내지 않았나? 갑자기 왜 이러는 걸까?

침착하게 나를 살펴보고자 되돌아봐도 실력이나 학점, 집안 사정이나 코로나를 비롯한 이런저런 상황을 재 보니 나는 더 물러날 곳이 없다고 느꼈다. 벼랑 끝의 복학생. 뭐라도 이뤄내야 한다는 생각이 밀려들어 와 결론으로 자리했고, 결국 내 감정의 태도를 정비할 여유도 없었던 것이겠지. 그래서 쉴 때도 마냥 편하지가 않았고 결국은 나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했다.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은 괜찮다며 좀 더 천천히 해도 된다고 나를 살폈고, 그 말이 옳다고 이해도 했다. 그런데도 난 뭐가 그리 급하고 절박해 나를 몰아세웠을까? 나는 이 병을 어떤 약으로 고칠 수 있을까? 어떤 약이 조급한 마음으로 진 이 무거운 부담을 버리게 할 수 있을까? 늘 꼬리에 꼬리를 물어 늘어졌던 내 생각을 끊어내고 부담과 겁 없이 살아낼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까?

 늘 내 글의 끝에는 어떤 식으로든 나름의 해결책을 제안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는데 이번 만큼은 어떠한 결론도 쉽게 내리지 못하겠다. 평생을 반복하여 찾아온 어려운 문제다. 분명 앞으로도 사는 동안 꾸준히 나를 찾아오겠지. 이 생각을 하면 남은 내 삶이 아득해진다.



그러나 곧 나는 의외의 곳에서 결론을 찾게 된다. 지난 11월 20일에 발매된 방탄소년단의 컴백앨범, ‘BE’. 너무 좋아하는 가수의 컴백앨범인데도, 현실에 쫓겨 노래 하나 듣는 것 조차 집중하지를 못하다가  면접이 끝이 나고서야 가사를 보며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일기를 쓰다 잔뜩 울어버려 부은 눈으로 멍하니 핸드폰 화면 속의 가사를 읽어 내려갔다. 그러다 만난 ‘병’이라는 곡의 노랫말은 꼭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Sick & tired
But I don’t wanna mess up
Cause life goes on



자 일어나 one more time
다시 아침이야 오늘을 나야 해
가보자고 one more night
이 끝에 뭐가 있을지 몰라
영원한 밤은 없어



Everyday 나를 위로해 다 똑같은 사람이야
ain’t so special
Ay man keep one, two step
차분하게 모두 치료해보자고 나의 병



그렇다. 당장 이 반복되는 고민의 굴레를 영원히 없애 줄 묘책은 없을지라도, 그저 차분하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수밖에 없다. 삶은 계속 이어져야 하므로 언제까지나 울고 있을 수는 없기에. 나의 아픔을 마주하고서 실컷 울고 나거든, 나도 모르게 힘들여 고생했던 나를 위로하는 것. 좀 더 여유 있어도 괜찮아. 다시금 깨닫고 살아가다가 힘에 부치는 날이 오거든 다시 나를 다독여주는 것. 이것을 나의 약으로 삼고 그저 다시 일어나서 나아가는 수밖에는 없는 거지. 그 앞에 무엇이 있는지 몰라도 말이다.

사는 내내 나는 같은 병을 치료하고, 재발하고 또다시 아파하며 눈물 흘릴지라도, 나를 향한 위로를 약 삼아 당장 하나의 고비를 넘길 힘을 내본다면 아주 조금씩 성장해 있지 않을까. 아파하는 내 모습이 일순 부끄럽고 한심해 보여도 결국 그 모든 시간도 나였음을 알아차리고 응원해주는 단단한 사람이 되어있지 않을까. 먼 미래가 아득할지라도 그렇게 당장의 하루하루를 살아가면 결국 우리는 숱한 과거를 지나 현재를 살고 있게 될 것이다.



슬픔과 아픔은 영원하지 않다. 눈물 흘리고 정체되어있는 지금도 결국은 지나간다. 늘 나아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가지고 움직이자. 여유 있게 두려움 없이 살아가려 노력해보자. 해결책이라 하기에는 막연하고 무책임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것이 삶이라면, 결국 일어나 살아내야 하는 것을. 다시금 일어날 수 있도록 큰 힘과 지표가 되어준 방탄소년단에게 새삼스러운 감사를 표하며 글을 맺겠다. 모두의 건강을 기원하며.



____ 강세화 glorysehw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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