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누군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애써 삼켰거나, 지금은 곁에 없어서 전할 수 없었던 말이 있나요? 고인이 되어버린 사람에게 마지막 말을 전하지 못했던 경험, 헤어진 연인에게 하고 싶은 말을 보내지 못해 위안 삼아 메모장에라도 적어놓았던 경험, 가족이나 친구에게 말하지 못해서 일기장에라도 적어놓은 경험, 아마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걸 ‘부치지 못한 편지’라고 부릅니다. 수신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지만 실제로는 보내지 않는 편지이지요.
우연히 유튜브에서 <유퀴즈>에 나온 두봉 주교님 영상을 보았습니다. 거기서 두봉 님의 가족 사연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두봉 님의 아버지는 아들이 한국으로 오고 난 후부터 매주 프랑스에서 한국에 있는 아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약 33년 동안 꾸준히 말이죠. 그렇게 마지막 편지를 받은 건 86년 5월 9일,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3개월 전에 보낸 마지막 편지였습니다. 끝내 두봉 님은 아버지에게 마지막 답장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보낸 마지막 편지를 들고 나와 낭독하시는 두봉 주교님의 모습은 무척 슬퍼 보였습니다. 아마 하고 싶었던 말을 전하지 못했던 게 마음속 한으로 자리 잡혀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덧붙여 어머니가 돌아가신 일화도 말씀하셨습니다. 입원해계신 어머님을 자식들이 시간을 정해놓고 돌아가며 간호를 하는데 두봉 님은 자기가 한 시간 동안 보겠다며 시간 알람을 맞추고 간호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나이에 자기도 고단했던 탓이었을까요. 반 시간 만에 껌뻑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신 상태였습니다. 숨을 안 쉬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주교님은 그 시절을 회상하며 93세인 지금의 나이에도 그날이 후회가 된다며 눈물을 훔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하늘에 계신 부모님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시는데 눈물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정말 부치지 못한 편지였습니다. 그걸 보고 생각했습니다. ‘꼭 편지가 직접적으로 전달될 필요는 없겠구나. 수신자만 있다면 편지를 부치든, 부치지 않든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도 전달될 수가 있겠구나.’라며 말이죠.
꼭 우표를 붙여 보내는 것만이 편지가 아닙니다. 때로는 나의 마음속에 있던 말을 꺼내어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편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말은 분명 민들레 홀씨처럼 멀리멀리 날아가서 전달될 거라고 믿습니다.
누군가에게 보내고 싶은 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메모장이든 노트에든 편지를 써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은 하고 싶은 말을 마음에 담아두기만 하면 곪고 터져서 결국엔 마음의 병이 생기게 됩니다. 이렇게라도 가슴속에 있는 말을 내뱉고 글로 써 내려가다 보면 나의 마음속에 묵혀있던 감정들이 조금은 응어리가 풀리고, 한층 가벼워진 감정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비록 부치지 못하는 편지일지라도 그 편지는 분명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전달될 것입니다.